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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혜정 Sep 22. 2022

1. 물안개와 바이올린

언니의 바이올린




오후 4시가 넘어서야 우리는 숙소에 도착했다. 부슬부슬 내리던 비는 멈추고 정원의 잔디는 초록빛으로 깨끗했다. 단양의 남한강을 아담하게 내려다보는 언덕 위의 집. 하룻밤의 고향에 온 듯 편안함을 느꼈다. 입실을 하자마자 나는 침대에 벌렁 누웠고 언니는 악기 케이스를 열고 바이올린을 꺼냈다.


-언니야, 오랜만에 만났으니 풍악을 울려라~

-무슨 곡 할까?


마침 창 밖에서 두툼한 강은  물안개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구름이 내려앉은 모습 같기도 했다.


 ‘물망초 꿈꾸는 강가를 돌아~’


내가 먼저 흥얼거리기 시작하자 언니는 연주를 하며 내 노래를 따라왔다. 오랜만에 불러보니 가사가 물안개 속으로 희미해졌다. 멜로디만 흥얼거리자 언니의 바이올린 선율이 한 발 앞서 날아가기 시작했다. ‘님이 오시는지’ 한 곡을 마무리하고 우리는 창가로 가서 물안개를 바라보았다. 말이 필요 없는 풍경이었다. 강물은 흐르고 제자리의 짙은 산을 배경으로 물안개는 꿈처럼 하얗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 년만에 만났다. 창가에서 옆에 서있는 언니를 보았다. 염색을 했다더니 흰머리는 눈에 띄지 않았고 파마머리가 가을 단풍의 색깔로 동글동글 말려 있었다. 오십 대 중반만큼의 나잇살도 보였다. 내 마음의 눈에는 언니가 살아온 세월이 저장되어 있고 그 안에는 바이올린이 겹쳐져 있다. 문득 언니를 나의 문장 속에  담고 싶어졌다.


한 집에서 태어나 이십 년을 함께 살았던 자매는 짧은 휴가를 뒤로 하고 이제 자연스럽게 헤어진다. 각자의 가정과 생활 속으로 돌아간다. 언니는 남쪽의 바닷가 도시로 내려갔고 나는 바다를 건너 싱가포르로 돌아왔다. 물안개 핀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언니에 대한 기억이 피어오를 것만 같았다. 내 귀에 남아 있는 바이올린 소리를 따라서 과거로 향한다. 거기에는 언니 그리고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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