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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건 감정이다

J에 대하여

흑갈색 장발에 가로로 길게 찢어진 눈을 하고 건들거리는 걸음거리로 교실에 들어오는 J를 처음 봤을 때 나는 ‘아, 고놈 고집 한 번 세게 생겼네’라고 생각했다. 아이는 학기 시작 전 친 시험 결과에 따라 본인이 내 반, 즉 소위 ‘영어 보강반’으로 배정되었다는 것을 곧 알고 나서 눈에 띄게 좌절했다. 저음의 목소리로 으아아, 하고 소리를 토해낸뒤 한동안 책상에 머리를 박고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J가 우는건가? 싶어서 약간 초조해졌다. 흐느끼는 십대 남자아이를 달래본 적이 없던 것이었다. 다행히 아이는 곧 시뻘개진 얼굴을 책상에서 들어 올렸다.


J가 그토록 좌절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나중에 그에 대해 알게된 사실은 J는 소위 ‘가오에 살고 가오에 죽는‘ 스타일이란 것이었다. 그는 학교에서 아무나 참가할 수 없는 스포츠 팀에 참가하고, 인근 학교에 예쁘다고 소문난 여자 친구도 있으며, 윗 학년 형들과도 친한 학생이었다. 수업을 할 때면 본인은 반의 다른 학생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려고 했다. 반에 어떻게든 섞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온몸의 언어로 표현했다. 개인 과제는 성실하게 했지만 토론에는 심드렁하게 참여했고 다른 학생들이 내 질문에 어처구니 없는 답변을 하면 경멸의 눈빛을 쏘아댔다. 나는 그의 상처 받은(?) 마음을 존중했다. 본인의 실력이 어떻든 마음은 상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J는 실제로 그 반에서는 가장 잘하는 친구들 중 하나였다.


그러던 어느 날 J가 속한 우리 학교 스포츠 팀과 다른 학교와의 학기 첫 경기가 있었다. 그 다음 날 출근해서 전해들은 소식은 우리 학교가 졌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체육 선생님에게 아이들이 게임을 지고 많이 좌절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특히 J가 많이 속상해했다고 했다. 운동화를 벗어 던지곤 몇 번이나 “쉣!”하며 울었다고 했다. 체육 선생님은 패배로 인해 아이들의 분위기가 많이 다운되었다고 걱정하는 눈치였다. 나는 체육 선생님에게 이야기했다. "첫 경기일 뿐인데 다음 번에 더 잘하면 되죠!" 체육 선생님은 한숨을 쉬며 내게 말했다. "요즘 애들이 그렇지가 않아요, 쌤."


아니나 다를까, 경기 후 수업 시간에 만난 J는 그야말로 막나갔다. 수업의 대부분을 머리를 책상에 박고 있거나, 허공을 바라보거나, 내가 묻는 질문에 반 아이들과 동참하여 대답하지 않았다. 마치 될대로 되라 하는 듯 했다. 나는 그에게 경고를 주면서도 "첫 경기였을 뿐인데 뭐, 괜찮아. 다음에 더 잘 할거야!" 하며 가볍게 넘어가려 했다. 하지만 그의 수업 태도는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다 그 일이 일어났다. 내가 J에게 그의 사상 첫 한국어 페널티를 주는 일. 우리 학교에는 국제학교 특성상 하나의 특별한 규칙이 있는데, 그건 학교 내에서는 오직 영어만 써야 한다는 규칙이다. 그래서 한국어를 하다가 걸린 학생들은 따로 모아져서 수업을 마치고 가벼운 페널티를 받게 된다. 그리고 어찌보면 당연하게도 이 페널티를 받는 학생들의 대부분이 영어 보강반 학생들이다. 이들은 영어를 잘 못하기 때문에 본인들끼리 한국어를 사용하다가 자주 걸리곤 한다. J는 한 번도 이 처벌을 받은 적이 없었다. 나에게 걸리기 전까지는.


J의 스포츠팀이 패배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수업을 하는데 J가 저음의 목소리로 옆자리 친구에게 한국어로 장난치는 소리가 귀에 꽂혀왔다. 가뜩이나 그의 수업 태도가 점점 더 신경에 거슬려오는 중이었다. 나는 수업을 중단하고 그에게 말했다. 그의 한국어 사용을 내가 들었음을 고지하며 수업을 마치고 다른 학생들과 처벌을 받을 것을 이야기했다. 그는 당황한 듯했다. 실소를 지으며 본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단호한 표정으로 그에게 같은 말을 한 번 더 되풀이했다. 내 나름 ‘개인적인 감정은 없어. 룰은 룰이야.’라는 메세지를 전하고자 함이었다.


하지만 그날 J가 내게서 받은 메세지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음이 곧 명확해졌다. 그는 나의 페널티를 온전히 개인적으로 느낀 듯했다. ‘나는 널 처절하게 망신시켜서 네가 지금까지 학교에서 만들어온 사회적 지위와 이미지를 파괴해 버릴거야‘ 쯤의 메세지로 이해한 듯 했다.


그날부터 J는 내게 전과 차원이 다른 불복종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건 나에 대한 개인적인 반항이었다. 보란 듯이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수업 내내 옆자리 학생에게 귓속말을 했고, 나를 시험하는 듯이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나가서 오랜 시간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다녀올 때마다 친구에게 눈짓을 보내며 낄낄대는 것도 빼먹지 않았다. 내가 수업 중에 지시를 내릴 때면 궁시렁 거리며 불공평하다고 불평하는 것은 기본이었고 어떨 때는 쌍시옷이 들어간 욕도 들려왔다.


나는 J의 이런 행동 하나하나가 거슬렸다. 보강반 수업이 있는 날이면 그 전날부터 양쪽 관자놀이에 거대한 자석들이 척척 붙어 서로를 끌어당기는 것처럼 머리가 지끈거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가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학교에 오래 계셨던 체육 선생님에게 나중에 전해들은 바로는 J는 원래 몇 년간 전반적인 학교에서의 태도가 좋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스포츠팀에 합류하게 되면서 눈에 띄게 달라졌다고 했다. 팀에 잔류하려면 일정 성적을 유지해야했기 때문에 J의 학업에도 큰 진전이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그가 진심으로 임하는 스포츠 경기에서 패배하고 가장 연약할 때 나는 그에게 한국어 페널티를 줌으로써 그의 소중한 ‘가오’를 뭉개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그는 평소 본인이 그토록 거리를 두고자 했던 ‘보강반 아이들’과 한 그룹으로 묶이게 된 것이었다. 어찌보면 그에게 있어 나는 최대 빌런인 셈이었다.


시간이 좀 흐르고 J의 불복종을 이해하게 되자 아이의 감정을 조금 살폈다면 좋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초보 선생님으로서 내가 얻은 깨달음 중 하나였다. 그 뒤로부터 나는 J에게 일관된 다정함을 보였다. 그가 나의 욕을 하건말건, 친구들에게 나를 조롱하건말건, 나를 비웃건말건, 내가 그에게 일관되게 보인 태도는 단 하나, 다정함이었다. 그렇다고 그의 모든 행동을 묵인한 건 아니었다. 여전히 그의 소극적인 공격들에 걸려 넘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이런 메세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네가 속상한거 알아. 선생님은 할 일을 한 것 뿐이야.’


현재 J는 어떠한가? 그가 나의 일관된 다정함에 담긴 진심을 깨닫고 드라마틱하게 변했다고 적고 싶지만 K-십대는 그리 녹록치 않다. 그는 전과 별반 다를바 없다. 다만 한 가지 달라진 점은 있다. 그건 바로 나와 눈이 마주치고 내가 그에게 미소를 지을 때면 황급히 눈을 돌리거나 얼굴을 감싼다는 것. 나는 한 명의 hopeless optimist로서 J에게 기분 좋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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