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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오라비행 Aug 03. 2019

살았다_3

토요윤 또는 채소김


 1년 반의 휴학 기간을 끝내고 복학을 했다. 기숙사로 돌아왔다. 기숙사는 살던 곳이라기보다 존버한 곳이다. 내게 있어 ‘산다’는 것의 의미에는 자유의 개념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학교는 특수목적대학교라는 명목으로 기숙사를 2년 간의 의무교육 기관화하였다. 이로써 기숙사는 숙식비 무료라는 메리트를 준 반면, 내 생활 거의 모든 영역에서의 자유를 침범했다. 일괄적으로 주어지는 먹거리와 통금 시간, 연결감 없는 학우와의 공간 공유, 뜬금없는 의무교육 이수 등. 그럼에도 다행히 남은 고마운 기억은 기숙사에서 우연히 마주친 나를 환대해주었던 두 사람이다. 어느새 친밀해진 우리는 ‘덤’ ‘앤’ ‘더머’로 함께 했다. 꼬질한 얼굴로 새벽 아침부터 기숙사와 기숙사 사이에서 만나 같이 학교를 둘러싼 논밭 길을 한창 달리고, 더 꼬질 해진 몸으로 아침밥을 먹으며 시작했던 하루하루들. 서로의 못난 점을 못났다고 놀리는데 그렇게 놀리는 게 행복해서 매번 붙어 다녔던,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던 두 사람. 그때의 활력과 유쾌함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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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버의 1년이 지나고 여름 방학이 되었다. 학교에 남아 일도 하고 내 시간도 보낼 겸 학교 근처에 자취방을 구했다. 학교 근처 대부분의 원룸 시세는 300/30이었다. 당시 나는 300이라는 보증금이 없었다. 저렴한 곳을 찾고 찾다가 10/15였던가 하는 아주 저렴한 방을 찾았다. 넓었다. 전에 살던 사람들이 놓고 간 책상, 라면용 냄비, 각종 그릇과 컵 등 덕분에 살림 물품에 큰돈이 들어가지 않았다. 한편 방문을 열면 꽃무늬 커튼이 살랑살랑 나를 반기길래 잽싸게 암막 커튼으로 바꿨다. 방 창문 너머에는 논두렁이 있었다. 이사한 첫날 밤부터 떠나는 날까지 추운 날 빼고는 매일같이 울어대던 청개구리 소리가 여전히 귀에 맴돈다. 에어컨은 전자레인지 모양으로 붙박이 형식으로 달려있는 구식 모델이었다. 전원도 선풍기에 달린 스위치처럼 돌리는 식이었다. 이사를 마친 후 에어컨을 켜려고 했는데, 분명 바람이 나와야 할 거 같은 환풍 부분이 테이프로 막혀 있었다. 덕분에 몹시도 더운 여름을 두 번 났다. 그 덕에 전기세도 아낄 수 있었다. 그곳에 머문 1년 동안 세 명의 지인들이 각각 시기를 달리 해 머물다 갔다. 방학 동안 애인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임용 고시 준비를 위해, 학교에 남고 싶어서 등. 그때는 내 삶만 급급해 지냈던 거 같다. 이제야 그들의 당시 삶을 상상하게 되는 건 나의 옹졸함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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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졸업 학년을 앞두고 학기가 애매하게 반 학기 남았다. 이를 조금 재밌게 보내고픈 마음에 학점교류를 하러 서울로 갔다. 호주에서의 삶을 떠올리며 아현역 인근 셰어하우스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여행자로서의 공간 셰어와 생활자로서의 공간 셰어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당시의 그 공간에 대한 기억은 따뜻하면서도 적적하게 남아있다. 아현역에서 아현 시장 쪽으로 10분 정도 걸으면 나오는 곳, 이층 집이었다. 1층은 주방과 거실, 공동 화장실이 있었다. 2층은 독방과 3인실 두 개, 복도, 각 방의 화장실로 나뉘었다. 동거인들은 나를 포함해 총 9명이었다. 대학생 셋, 직장인 여섯이 함께 지냈다. 각자의 삶을 위해 하루하루 바쁘게 지냈다. 나는 학점교류를 위해 주 3일 정도는 서울대입구 역까지 갔고, 3일 정도는 카페 알바를 하러 혜화 역으로 향했다. 그리고 저녁이면 춤을 배우러 신촌 역 인근 재즈댄스학원으로 향했다. 세상 근면 성실했던 6개월이다. 그리고 겨울이 왔다. 유난히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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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산골짜기 학교로 돌아왔다. 대학교에서의 마지막 한 해였다. 워너비였던 빌라에 운 좋게 들어갔다. 빌라 이름은 ‘둥지’. 300/30이었던 그 공간은 아주 넉넉했다. 엘리베이터가 있어서 짐을 나르기 편리했다. 적당한 주방 공간에 이어, 책상과 침대 사이의 널찍한 공간이 있었다. 아침마다 베란다 창문으로 내렸던 쨍한 햇빛은 나를 기분 좋게 일으켰다. 빌라를 조금 나서면 철조망 집에 사는 진돗개 가족이 있었다. 당시 4월 즈음이었나, 새끼들이 태어나 발발거리며 돌아다녔다. 쪼꼬미들을 구경하고픈 마음에 발걸음을 자주 멈췄던 그곳이다. 임고생이라는 신분을 달고 집-도서관-학생회관-도서관-집의 단순한 일상을 살았던 1년이다. 가끔, 그립다. 단순한 삶에 활력을 주었던 발발이들과 아침의 채광, 공부를 끝내고 달빛 아래로 함께 거닐었던 길, 감정의 너울질을 경험했던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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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라 x비행 #aoraxbiheng #수면의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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