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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endtic Hannahism Sep 15. 2023

근래의 일상에 대하여

철학도 아니고 그저 일상에 대한 생각 

이유는 있다. 갑자기 이유 없이 기분이 좋거나 한 것은 아니고 분명히 이유가 있어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깊은 공감이 흐르는 진료, 드디어 끝난 재택의 기간, 햇빛의 은혜, 상냥한 말들 그리고 자신의 가치 발견이 그러하다.


지난달에는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 일하고 자고 책만 읽고 매주 수요일마다 가는 철학수업이 아니면 밖에 나오는 일이 손에 꼽았다. 그렇다 보니 그늘진 곳에서 드는 생각은 어둡고 차가운 것뿐이며 그런 것에서는 거절만 따라오고 있었다. 왜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가 하고 생각을 했다. 이따금씩 떠오르는 기억들이 현실을 깨닫게 하면 기억을 불러온 것들에 대하여 감정적 반응을 할 기력조차 없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저 좋겠다. 그 정도의 괴로움에 슬플 수 있다면 나도 그 정도만 슬펐으면 좋겠다 생각한 적이 있었다. 마치 내 집은 다 불타서 재가 되었고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고 이제 나는 하늘을 보며 무엇을 빌어 먹고살아야 하나 걱정을 하려는 순간에 어느 이가 ‘내 비닐하우스가 다 타버려 그동안 농사지어진 것이 다 망했습니다.’라며 같이 울어달라 하는 것 같아서 얼떨결에 같이 울고 있는 모양새였다. 


나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다지 이로운 것이 없거나 굄 얻기에 부족할 따름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좋은 것만 보이려 하지 않기에 내 생각을 솔직하게 적어 내려가는 편이다. 이것은 자기 비하도 아니고 그저 적는 글이다. 그렇기에 나는 온전히 욕심으로 내려놓지 못하는 것들을 꺼린다. 그런데 지난 한 달간 내가 그러고 있음을 깨달았다. 링거를 맞듯이 연명적 최소한의 소통을 하고 있었으면서(그 부분에 항상 감사해야 할 분들이 계시다.) 내가 더 이상 진료받지 않아도 된다고 믿고 싶었다. 이미 수년을 정신분석이라든지 여러 진료로 시간을 보내왔고 그 종교인들에게 빌미제공을 하고 싶지 않았기에 그저 내가 의지로 버티려고 부단히 노력을 하였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도저히 버티기가 어려워 의원에 찾아갔을 때 만난 선생님의 상냥함에 감사했다. 하지만 초진은 정말 힘들었고 초진 보는 날은 온갖 악재가 겹쳐 많이 울었다. 그리고 또 한 번 느낀 것은 내 PTSD의 나음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이었다. 언제나 이 거대한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으려나 한숨이 가득할 때 선생님께서 '우리 힘들어도 한번 해봅시다.'라고 하셨다. 순한 약부터 시작하고 재택이 끝나면서 걷기 시작하고 곱게 꾸미고 집을 나서는 일이 즐겁고 선크림을 잔뜩 바르고 나서지만 조금 선선해진 온도 가운데 비추는 햇빛의 은혜가 좋았다. 직장에 박사님이 계시고 대화할 선생님이 계셔서 인사할 이가 있어서 좋았다. 요 근래 알게 된 사람은 고된 일상에서 욕심부리지 않고 포기할 줄 알고 자신을 보살펴 주는 삶을 살아온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게 참 좋았다. 끝없는 야망이 미덕이 되는 세상에 나같이 평생소원이 누룽지인 사람에게는 참 지혜로워 보였다. 영화 한 편 볼 수 있고 아 오늘 피자 한판 먹고 싶네 할 때 먹을 수 있는 만큼 벌 수 있다면 충분하지 않은가.. 싶었다.  


하루는 전철에서 책을 읽다가 졸았는데 옆자리 사람이 어디서 내리냐 하기에 못 알아듣고 ‘네?’ 했는데 ‘한대에서 내리세요?’ 하기에 잠에서 덜 깨서 ‘한대요? 한대?’ ‘한대?’ 바보같이 한대만 반복해서 이야기했고 그 학생은 한대역에서 내렸다. 한대가 어디여… 하고 단톡에 한대가 어디냐고 물으니 아이들은 ‘한대가 시려고요?’라고 말했고 나는 한대가 어딘지 모르는 데 자꾸 한대 가냐고 물으니 당황스러웠다. ‘아 밖에 나오니까 이런 재미있는 일도 생기는구나.’ 그런데 얼마나 그 남학생은 당황했을 까? 미안하네. 이제야 한양대가 한대라고 불리는 줄 알았다. 왕십리에 있는 한양대만 알아서 고잔 쪽에 가면서 한대라 하니 못 알아 들었다.. 미안해…


아무튼 요 근래에 상냥한 관심과 돕는 손길에 감사했고 밖에 나와서 있으면서 업무를 시간 내에 일을 마쳐야 하는 게임같이 해내는 것이 내 효능감을 느끼게 하였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힘들어도 방청소를 열심히 하고 책 읽고 루틴이 깨지지 않고 나 스스로를 잘 단정히 두는 것을 보면서 내가 가진 것이 나쁘지 않구나. 내가 거친 피부가 아니고 머리카락이 부드럽고 향이 나고 각질 관리도 잘 되어있고 손톱이나 발톱도 잘 되어있고 방바닥 걸을 때 밟히는 것 없이 깨끗하고 하수구 수챗구멍이 청결하고 집안 공기가 나쁘지 않구나. 내가 집안을 잘 돌보고 있구나. 그리고 더불어 배우는 데에도 게을리하지 않는구나 내가 자랑을 하고 높게 여기려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바닥에 누이고 흙먼지에 뒹구는 돌처럼 여기지 않으려고 내가 괜찮게 봐도 되는 것은 긍정으로 옮기고 아니다 여기는 것은 아닌 쪽으로 옮겨서 나누어 살펴보았다. 


오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살펴보니 많은 부분에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많았다. 직관적으로 사유할 줄 아는 것도 관점을 다양하게 볼 줄 아는 것도 주요한 능력이 되어있었고 내가 틀릴 수도 있으며 타인이 내게 하는 말에 대하여 과연 그러한지 생각해 보고 맞다면 인정할 줄도 아는 것이 소중한 가치로 자리 잡은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이전과 같이 자아 없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불쾌함에 저항할 줄 아는 것은 여러 유태인이 쓴 글에서 배웠다. 이러한 것이 산파술로 나온 것이 아니라 배움으로 수용해서 얻음을 알고 있다. 그러니 배우기를 꺼리지 아니하고 즐거워하는 사람인 것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이러한 발견과 생활 패턴의 변화, 소중한 관심 그리고 의학의 도움이 나에게 생기를 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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