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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endtic Hannahism Oct 12. 2023

그들은 미안해하지 않는다.

죄책감을 인지하는 것에 대한 단상

나에게 피해를 준 이들은 그것으로 인하여 미안한 마음이 있을까?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상처를 준 이가 

본인의 행동으로 양심의 고통을 받고 죄책감을 느껴 자신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빠져 힘들어하길 바란다.

비록 그렇지 않을 것을 알더라도 응당 그래야 한다고, 그것이 사람의 도리라고 믿는다.


내가 20살이 되면서부터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나도 그러하지만,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상당히 관대하며 오히려 정당화하는 것에 광속으로 반응한다.

타인이 자신에게 가하는 말과 행동에는 최대한의 방어와 비난을 쏟아 내면서도

자신이 타인에게 주는 것에는 상대의 반응이 아무렇지 않고 상처받지 않은 듯 

좀 괜찮아 보이면 바로 망각을 선택한다.


오히려 애초에 그게 뭐 대수인가 하고 미안한 마음조차 갖지 않는 이들도 있다.

그러다 내가 상처받았노라 하고 이야기하면 사과에 ‘네가 상처를 받았다면,’이라는 전제를 깔고 시작한다.

상처를 받지 않았다면 미안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오래 생각을 해왔어서 상대가 상처를 받았고 안 받았고를 떠나,

내가 잘못한 것이라 생각하면 상대가 기억하지 못해도 진심으로 사과하려고 노력했다.

내 양심을 예리하게 갈아 두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도 사람이라 자기 합리화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적이 많았다.


또한 누군가가 상처 주는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한다고 해서 기분이 나쁠지언정 상처를 받지 않겠다 

선언을 한 이유에는 비단 과잉반응을 억제하려고 하는 것 외에도 가해자라고 여겨지는 이들은 

사실 자신이 가해를 한다는 자각, 의식이 없으며 있다 한들 별 문제로 삼지 않는다. 

심지어는 자신이 옳다 여기기도 한다는 것들이 있었다. 표지의 그림과 같이 악타이온이 알지 못하고 한 행동에 대하여 아르테미스가 돌이킬 수 없는 저주를 내린 것은 사정을 듣지 않고 한 잘못된 행동이다. 

악타이온은 상당히 억울했겠지만 아르테미스는 자신이 옳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들이 자각하지 못하는 잘못된 행동에 대하여, 그들이 준 상처는 수취인 불명으로 반송하여 

상처의 효력을 허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매일 같이 이 사실을 되뇌곤 했다.


타인의 시선에 많은 신경을 쓰는 사람을 보면 조언하기를 ‘타인은 남에게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네가 뭘 입어도, 네가 뭘 먹어도, 네가 혼자 있어도 사람들은 관심이 없어.”라고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말라며 조언을 하기도 한다. 이 말은 자신이 타인에게 던지는 행동이나 말을 타인이 어떻게 받으며 신경을 쓰는지 괴로워하는지 슬퍼하는지 일말의 관심도 없다는 뜻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상처를 주려고 하는 사람들은 자책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유통기한이 하루 반나절을 가지 못한다. 만약 죄책감을 심히 느낀다면 그것은 누군가에게 들켜 큰 비난을 받을 처지에 놓여 있을 때나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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