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rendtic Hannahism Nov 19. 2023

새싹은 언 땅에서 나지 않는다.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의지'가 이루어지기 위하여


겨울이 다가오고 일조량이 줄어들었다.

가을의 새파랗던 하늘과 그래도 닿으면 따듯하던 햇빛은 줄고

겨울의 매서운 바람이 불고 해가 안 보이는 날이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내 마음은 햇빛을 보지 못한 식물처럼 풀이 죽어 기운이 없다.

창문을 자주 열지 못해 공기가 탁해서 그런가 하여

숯을 사서 방 곳곳에 두었지만 꺼져가는 불씨와 

같은 힘은 다시 커지지 않는다.


이불속을 또 하나의 보호막처럼 에워싸고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들지만 

발을 이불 밖으로 내밀면 꼭 다리가 잘릴 것 같아서 무섭다.


일은 곧 잘 가서 업무를 한다.

그리고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오늘은 꼭 할 일을 해야지 하고 

싸구려 모포를 두른 듯이 추위를 피하며 결심을 한다.

그러나 집에 도착해서는 겨우 허물을 벗고 

그저 할당량을 채우듯 잠을 잔다.


내가 해야 하는 것이 많은 데.

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걸까.

몇 주 전만 해도 이러지 않았는 데

부지런히 방 정리도 하고 글 쓰고 책 읽고 했었는데 

지금의 나는 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건가 하고 생각했다.


동기 부여가 된다는 영상이 도움이 될까 싶어 보면 

그들의 말은 과격하고 나를 힐난하듯 하여 아프기만 할 뿐 

끝까지 보기도 어렵다.


좋겠다.


나는 바뀌겠다! 하고 결심해도 힘이 생기지 않는데.

의지가 바닥난 상태에서 한없이 하찮아진 나를 보고서

너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가치한 존재라고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지만 

모두가 이야기하는 가운데 서있는 기분이었다.


마음이 곤란하여 오랜만에 P전문의 선생님과 대화를 하였다.

사실 깊은 이야기 보다 그냥 내 속에 있던 속상했던 것을

결코 감정 쓰레기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렇게 어렵고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하고 솔직히 털어놓으면 진지하게 들어주신다.


그분이 말씀하신 것 중에 가장 내 마음을 움직였던 것은

*좀 섭섭하긴 했겠네요..

*네 신경 안 쓰려고 하신 건 잘하셨지만, 그래도 신경이 안 쓰일 수는 없었겠네요

*그래도 덜 불안하려면, 다음 걸음을 걸어야죠

*겨울에는 원래 더 무기력해지잖아요. 일조량이 줄어드는 것도 원인이지만 추운 것도 문제죠

*청소도... 너무 깔끔하게 다 하려고 하지 말고요

딱 지금 눈에 너무 거슬리는 것만

*방 따땃하게 하고요

*잘하셨어요 ^^


잘하였다. 는 말이 스스로 무가치하다 여기는 자신에게 

부어주는 녹이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무언가를 잘하였다는 말이 나도 잘한 것이 있나.


나는 자연스러운 사고 회로가 못한 사람, 해내지 못한 사람, 이룬 게 없는 사람, 숨는 사람, 칭찬받을 일 없는 사람, 꾸중들을 사람으로 되어 있는데 잘했다는 말이 왜 그리도 고맙게 들렸는지 모르겠다.


무슨 업적이나 정말 내가 못나서가 아니라 

내가 느끼는 나에 대한 가치 평가가 너무 낮아서 진심이 담긴 잘했다는 말이

다된 건전지 하나를 바꾼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는 생각을 조금씩 바꾸어서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니구나. 

원래 겨울이라 무기력한 거였구나.

추우면 움츠려 들게 되니 난방을 틀고 조금조금 방정리를 해보자.

글도 써보고 하면서 하나 둘 하다 보니 아주 아무것도 안 하던 날 보단 조금 감정이 나아 짐을 느꼈다.


쇼펜하우어는 생의 의지를 이야기했고 그것은 삶에 대한 욕망, 

삶의 유지와 전달이라고 하였다.


니체는 힘의 의지를 이야기했고 창조적으로 기성 것과 

겨루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창조하는 어린아이의 

그 무엇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 둘은 참으로 고독했다. 


그리도 고독한데도 스스로에게 스스로가 에너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일까. 

아마 니체는 그러지 못한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전혀 그러지 못한 사람이라 삶을 향한 욕망이든

창조에 대한 힘의 의지든,

'내가 죽겠다 더 이상 내가 산 다는 것이 그 어떠한 의미도 갖지 못한다' 여기면 무엇이 중 하겠는가 싶다.


언 땅에서는 새싹이 자라기 어렵다. 

마르고 갈라진 논에서 벼가 심기 울 수 없다. 


설사 된다 해도 그것은 어쩌다 한번 생긴 대단한 일이지 

절대다수에게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


농사를 지으려 하면 밭에서 돌을 빼내고 고르게 하고

밭이랑도 잘 맞추어야 하고 두둑의 높이를 신경 써야 한다. 

그리고 비닐을 씌우고 구멍을 뚫고 홈을 파는 작업도 하는데, 

이 모든 과정이 다 허리 아프고 고생스러운 작업이다. 

그냥 무턱대고 아무 땅에 씨를 뿌리는 것이 아니다. 

어떤 작물은 씨를 심어 시작하지 않는 것도 있다.

(이는 어릴 적부터 밭일을 해봤으므로 아는 것이다.)


마음에서 뭔가 하려고 하면 

어떤 사람은 기질이 좋고 태생이 잘 되어 좋게 되어 있을지 몰라도 

나 같은 사람은 돌도 치워야 하고 많이 갈아보고 비료도 주고 물도 주고 손이 많이 간다.


"그냥 죽을 만큼 해봤어?"라는 말로는 해결되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


상한 마음에는 따스한 보듬음이 필요한 것이지 

잘해야 한다는 거친 사포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삶의 날뛰는 욕망과 아이의 창조적 원함도 

결국 아이가 건강할 때 부모 앞에서 원 없이 내보이는 게 아니겠는가?

매거진의 이전글 에서의 저주는 정말 저주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