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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드너초이 Aug 27. 2019

태풍이 지나간 후, 양양의 정원 (19.08.16)

고양이 정원가와 꽃핀 정원 구경

아침에 일어나서 정원일을 할 채비를 하고 나서면 고양이 정원사 1호가 맞이해줍니다.

밤새 못 봤다고 폭풍 애교를 떨어주십니다.

일은 제쳐두고 자기만 이뻐해 달라는 것 같이 가는 길을 막고 뒤집어집니다.


하늘이 말도 못 하게 맑고 이쁩니다.

해만 가려주면 딱 일하기 좋을 텐데 말이죠.

얼마 전 처음 꽃을 피운 부처꽃 탑.

수많은 부처꽃 중에 이 녀석이 제일 땅에 뿌리를 잘 내리고 땅힘을 받으며 자라는 아이 같습니다. 제일 큰 키의 꽃대 말고도 그 주변에 꽃대가 5-6개는 되는 데다가 다른 부처꽃과 달리 꽃이 빽빽하고, 이파리도 청록색을 띱니다.


선물로 받은 백합 구근은 고양이들에게 매우 안 좋다고 하여 꽃이 개화되는 즉시 바로 꽃을 잘라내어 다른 집에 선물해줄 계획입니다.

아직 손바닥만 하지만요..


백합 구근을 소심하게 심어놓은 구획은 수국+ 모닝라이트 구획입니다.

사람 무릎만 한 작은 수국들이 그래도 자기들도 꽃을 피울 수 있다고 사람 얼굴만 한 꽃 덩어리를 하나, 두 개, 세 개씩은 매달고 있습니다.

몽실몽실 덩어리감이 있는 수국과 달리 한들한들 흔들리는 그라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진녹색의 산등성이가 모두 다른 무게감을 주고 조화롭게 보입니다.


정원 때문에 잊혔던 텃밭에 이어, 오늘은 또 다른 잊은 아이 '비닐하우스'를 돌아볼 예정입니다.

작년 초에 유칼립투스 씨앗이라고 해서 심은 아이인데, 이파리가 길쭉하니 뭔가 사기당했나? 싶었던 아이입니다. 유칼립투스는 맞지만 우리나라에서 흔히 원예를 할 때 쓰이는 동글동글한 녀석이 아니라 이렇게 길쭉한 품종이 있다고 합니다. 이파리를 뜯어서 향을 맡아보면 레몬 향이 상큼 달달하게 나는데, 원래는 월동을 못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양양의 비닐하우스 안에서는 월동을 잘해서 지금은 제 키만 한 나무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종자 중에 나무로 살아남아 잘 크고 있는 녀석은 두 녀석뿐이지만요.


정원은 물도 주고, 잡초도 뽑아주고 죽은 가지는 속아주면서 손을 많이 댔지만, 돌 많고 잡초가 많은 경사면에 심어놓은 이 '꿩의비름 만추'는 정원에 심어져 있는 녀석들보다 더 튼튼하고 건강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역시 물을 덜 주고 신경을 덜 써야 하나 봅니다.

얼마나 이쁘게 꽃을 피우려고 저렇게 꽃봉오리가 주렁주렁 달렸을까요.


비싼 돈 주고 심은 모닝라이트, 그린라이트는 고양이 정원사들에게 좋은 은신처가 되어 줍니다.

본인들이 다 가려져서 아무도 못 본다고 생각하지만 항상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미 인간 문명에 익숙해진 1호는 에어컨 아래에서 낮잠을 자고 계십니다.


다행히 별일 없이 조용히 지나가는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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