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드너초이 Aug 27. 2019

태풍이 지나간 후, 양양의 정원 (19.08.16)

고양이 정원가와 꽃핀 정원 구경

아침에 일어나서 정원일을 할 채비를 하고 나서면 고양이 정원사 1호가 맞이해줍니다.

밤새 못 봤다고 폭풍 애교를 떨어주십니다.

일은 제쳐두고 자기만 이뻐해 달라는 것 같이 가는 길을 막고 뒤집어집니다.


하늘이 말도 못 하게 맑고 이쁩니다.

해만 가려주면 딱 일하기 좋을 텐데 말이죠.

얼마 전 처음 꽃을 피운 부처꽃 탑.

수많은 부처꽃 중에 이 녀석이 제일 땅에 뿌리를 잘 내리고 땅힘을 받으며 자라는 아이 같습니다. 제일 큰 키의 꽃대 말고도 그 주변에 꽃대가 5-6개는 되는 데다가 다른 부처꽃과 달리 꽃이 빽빽하고, 이파리도 청록색을 띱니다.


선물로 받은 백합 구근은 고양이들에게 매우 안 좋다고 하여 꽃이 개화되는 즉시 바로 꽃을 잘라내어 다른 집에 선물해줄 계획입니다.

아직 손바닥만 하지만요..


백합 구근을 소심하게 심어놓은 구획은 수국+ 모닝라이트 구획입니다.

사람 무릎만 한 작은 수국들이 그래도 자기들도 꽃을 피울 수 있다고 사람 얼굴만 한 꽃 덩어리를 하나, 두 개, 세 개씩은 매달고 있습니다.

몽실몽실 덩어리감이 있는 수국과 달리 한들한들 흔들리는 그라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진녹색의 산등성이가 모두 다른 무게감을 주고 조화롭게 보입니다.


정원 때문에 잊혔던 텃밭에 이어, 오늘은 또 다른 잊은 아이 '비닐하우스'를 돌아볼 예정입니다.

작년 초에 유칼립투스 씨앗이라고 해서 심은 아이인데, 이파리가 길쭉하니 뭔가 사기당했나? 싶었던 아이입니다. 유칼립투스는 맞지만 우리나라에서 흔히 원예를 할 때 쓰이는 동글동글한 녀석이 아니라 이렇게 길쭉한 품종이 있다고 합니다. 이파리를 뜯어서 향을 맡아보면 레몬 향이 상큼 달달하게 나는데, 원래는 월동을 못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양양의 비닐하우스 안에서는 월동을 잘해서 지금은 제 키만 한 나무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종자 중에 나무로 살아남아 잘 크고 있는 녀석은 두 녀석뿐이지만요.


정원은 물도 주고, 잡초도 뽑아주고 죽은 가지는 속아주면서 손을 많이 댔지만, 돌 많고 잡초가 많은 경사면에 심어놓은 이 '꿩의비름 만추'는 정원에 심어져 있는 녀석들보다 더 튼튼하고 건강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역시 물을 덜 주고 신경을 덜 써야 하나 봅니다.

얼마나 이쁘게 꽃을 피우려고 저렇게 꽃봉오리가 주렁주렁 달렸을까요.


비싼 돈 주고 심은 모닝라이트, 그린라이트는 고양이 정원사들에게 좋은 은신처가 되어 줍니다.

본인들이 다 가려져서 아무도 못 본다고 생각하지만 항상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미 인간 문명에 익숙해진 1호는 에어컨 아래에서 낮잠을 자고 계십니다.


다행히 별일 없이 조용히 지나가는 하루였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싱싱한 노지재배 바질 수확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