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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GBOYOUNG Mar 06. 2023

첫 시집을 내며... 『지구 밖의 사랑』



시인이 되고 싶었던 나는 등단이라는 절차를 밟지 않았다. 그것은 통과 의례라고 할 수 있겠는데, 나는 매번 실패했다. 그러나 쓰기를 멈출 순 없었다. 묵묵히 썼다. 에세이집을 냈고 이번에 시집도 내게 되었다.



나에겐 첫 시집인 셈인데, 더욱 뜻깊은 것은 단독 시집이 아닌 마음을 함께한 동인들과의 엔솔로지 시집이라는 것이다. 많은 독자분들의 앞으로 우리의 문장이 닿기를, 머물길 바란다. 함께 사랑을 나눌 수 있길 바란다.



지구 밖의 사랑



첫 시집, 지구 밖의 사랑




  평양냉면 먹기




  평일 이른 오전에 평양냉면을 먹는다. 면을 천천히 휘젓는다. 맑은 육수에 풀어진 면을 보며 육수를 한 모금 마신다. 이게 무슨 맛이야?

  애인은 물었다. 냉면 그릇을 들고 한 번 더 육수를 마셨다. 오래 머금었다. 주변 사람들을 봤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갸우뚱하며 그것을 먹었다. 애인은 냉면의 냄새를 맡아 보기도하고 면을 한 젓가락 크게 집어 올려 살펴보기도 했다. 나는 오이를 집어 애인의 그릇에 놓았다. 애인은 내게 면을 덜어주었다. 우리는 말없이 서로의 것을 받아먹었다.

  바람을 맞으며 걸었다. 애인의 머리칼이 땀에 젖어 있었다. 구름이 새하얬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 닿으면 잡았고 더우면 놓았다. 눈 마주치면 싱겁게 웃었다. 여름이 지속되고 있었다.

  이게 무슨 맛이지? 우리는 가끔씩 평양냉면을 먹으러 갔다. 냉면에 식초만 넣어보기도 겨자만 넣어보기도 했다. 둘 다 넣고 마구 섞어보기도 했다. 만두도 곁들여 먹었다. 소주도 마셨다. 낮부터 취한 우리의 실험은 계속되었다. 발그레해진 얼굴로 말할 수 있는 건 말했고 말할 수 없는 건 말하지 않았다.

  마른장마가 이어지는 동안 비가 왔음 하고 바랐지만 막상 비가 오니 들뜬 마음은 변덕을 부렸다. 볕 좋은 날 바람 불어오면 평양냉면 생각이 났다. 침이 고였다.

  육수를 머금는다. 창밖엔 한창 잎사귀 무성하고 식당은 금방 복작해지고 무더운 사람들은 냉면을 주문한다. 깨끗이 비워낸 냉면 한 그릇. 감실거리는 햇빛과 선명한 그늘과 눈감아도 쨍한 여름이 일렁인다.






정보영 문혜연 이가인 이은규 차성환 이윤우 임지훈 엔솔러지 시집 지구 밖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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