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NGBOYOUNG Aug 08. 2023

귤의 알고리즘

   귤의 알고리즘



   새끼를 잡아먹는다고 했다. 따스한 물에 사는 구피 여러 마리.

   애인의 손을 잡았다. 차가웠다. 잘 키우겠다고 약속했다.


   구피는 모두 귤색이었다. 애인과 구피들을 번갈아 보았다. 애인은 귤을 까먹고 있었다. 구피들은 뻐끔거리면서 유유자적 서로를 지나쳤다.


   어항에 얼굴을 가까이 댔다. 귤. 귤들아 안녕. 애인은 모두 귤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어항에 입맞춤했다. 입술 자국이 남았다.


   애인은 내 입에 귤을 넣어주었고 눈이 내리고 얼었다 녹으며 겨울이 지나는 동안 귤귤귤 우리는 귤을 낳았다.

   뒤엉켜 사랑을 나누면 몸에 지느러미가 생겼다. 귤이 귤을 낳았다.


   두 개의 어항을 갖게 되었다.

   물에 녹고 있는 설탕 입자 같은 새끼들.


   물고기의 기억력은 삼초라는데. 어항 앞으로 가면 귤 알맹이만 한 귤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거르지 않고 먹이를 주었다. 첫 번째 어항에 있던 귤 한 마리가 물 위에 둥둥 떠 있었다.

   그 사이 죽은 귤은 귤에게 조금 뜯어 먹혔다.


   자주 물을 갈아주었는데... 저녁을 먹고 체한 나는 토했고. 죽은 귤을 건져낸 애인은 물끄러미 나를 보았다.


   며칠 뒤 애인은 떠났다. 아직 어항엔 귤이 많았는데.

   귤 귤 귤

   살아 움직이는 건 귤뿐이었는데


   하나 둘씩 귤이 떠올랐다. 물 위에 뜬 귤을 건져낼 때마다 손이 미끌미끌했다. 귤이 떠오를 때마다 귤.

   혀가 말려 올라가는 발음 속에서 귤들을 바라보았다.


   귤이 귤을 뜯어 먹고 귤들은 또

   해산하였는데, 물비린내가 방안에 가득했다. 사라진 귤들이 많았고 날은 여전히 추웠다.


   죽은 귤을 보며 천천히 이름을 불러보았다.

   어항을 툭 치면 귤들이 흩어졌다.




-

정보영, 「귤의 알고리즘」 전문.

『현대시학』 7-8월호, 2023, 138~141쪽.




작가의 이전글 첫 시집을 내며... 『지구 밖의 사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