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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거스 Dec 17. 2022

대학은 너무 이상했다

잘못 온 걸까?

  대학은 지성의 결정체라며? 대학은 지성인의 요람이라며? 대학 가면 살도 빠지고, 소개팅도 잘 들어오고, 모든 게 다 척척 이루어진다며? 낚였다는 걸 아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일단 대학에는 지성인이 없는 듯했다. 아무데서나(그 '아무 데'에는 화장실, 복도, 버스승강장 등이 있다)  담배를 피우고, 신입생 환영회에서는 낯 뜨거운 몸짓(어떤 행위를 묘사한 단체율동 같은 거였는데 그걸 안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을 단체로 시키고, 여자 화장실도 남자들이 쓰고 있었다. 도서관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츄리닝 차림의 선배들은 다 시시껄렁한 놈팡이처럼 보였다. 더 좋은 대학을 갔다면 달랐을까. 그 무렵 나는 노랗게 탈색한 짧은 머리에 젤을 발라서 털을 곤두세운 사자 같은 모양을 하고 캠퍼스를 휘젓고 다녔다. 세상에 아주 불만이 많다는 느낌으로. 

    

  내가 가장 힘들었던 건, 정해진 자리가 없다는 거였다. 1,2교시 다음 5,6교시 수업이 있는 날엔 공강 시간 동안 집에 다녀오는 날도 있었다. 고등학교와 다른 세계. 아무것도 정해진 것 없이 미지의 세계가 펼쳐진 대학생활. 내일 어느 자리에 앉게 될지 모른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이딴 거에 충격받나 싶겠지만, 내겐 적잖이 스트레스였다. 산만하기 그지없어서 앞자리에 앉지 못하는 날에는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물론 키가 작아서 칠판이 안 보이기도 했고. 교양수업은 보통 앞자리를 선호하지 않아서 늘 맨 앞자리가 비는데, 전공수업의 경우 교수에게 눈도장 찍으려는 예비역 선배들이 주로 앞자리를 차지하곤 했다. 수업이 있는 날은 되도록 빨리 등교해서 앞자리를 차지하려고 기를 썼었다.


  그때에 비하면 직장으로 출근하는 요즘이 차라리 수월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30분 걸어가서 30분 간 버스를 타고 또 20분을 걸어가던지, 20분 걸어가서 1시간 동안 버스를 타야 했다. 수도권 대학에서는 이 정도 등굣길이 보통일지도 모르겠으나, 같은 지역 안에서 움직이는 것 치고 학교 가는 길은 늘 고달팠다. 이때 처음 공부를 더 열심히 하지 않았던 자신에게 답답해서 화가 났다. 조금만 더 공부했다면, 지하철 타고 한 번에 가는 다른 국립대로 등교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동기들은 같이 수업 듣는 팀을 짜서 수강과목을 고르곤 했는데, 난 그게 잘 이해되지 않았다. 듣고 싶은 강의가 있는데, 무리와 함께 다니기 위해서 듣고 싶지 않은 강의도 들어야 한다니. 꿈꾸던 대학생활은 그런 게 아니었다. 대학에 가면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다 했는데, 막상 선택의 기회가 주어져도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식으로 수업을 선택하는 거다. 내게 '무리 이루기' 따위는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

  필수 교과목으로 지정되어 모두가 함께 들어야만 하는 수업이 아닌 이상, 나 홀로 수강의 길을 선택했다. 내가 수강 신청한 과목들은 공대생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한국사의 이해, 철학의 이해 같은 과목들이었다. 급한 일 때문에 결석하여 강의를 듣지 못해도, 수업노트를 빌려줄 친구가 없었다. 어떡해서든 출석을 꼬박 했고, 없는 친구도 사귀어가며 수업을 들었다. 덕분에 다른 과 선배, 동기들을 두루 만날 수 있었다. 


  서로 다른 수강 스케줄로 인해 내가 워낙 눈에 띄지 않으니, 과 동기들은 학교는 다니고 있는 건지 묻곤 했고, 실제로 몇몇은 학교를 그만뒀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졸업장을 받으러 갔을 때도, 모두들 내가 졸업학점을 채웠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듣고 싶어서 들은 과목들인 만큼 교양과목 성적은 거의 A0 혹은 A+였다. 전공교과목 성적이 C0도 많았기에 교양과목이 아니었다면 취업이 불가능할 정도의 학점으로 졸업했을 거다.

  혼자 수업을 들으며 때때로 외로웠고, 불안하기도 했지만 원하는 걸 얻기 위해 삼켜야 하는 고독은 힘든 게 아니다. 고독은 좋은 걸 준다. 홀로 학교를 다니며 얻게 된 건 자유였다. 원하는 걸 마음대로 할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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