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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 Jul 12. 2021

책을 읽어도 바뀌지 못하는 이유

책 읽는 사람은 다르다던데, 넌?

"너 책 진짜 많이 읽는다. 대단해" 

"책 읽는 사람은 다르다던데, 넌 진짜 성공할 것 같아."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듣게 된 말들이다. 나도 사람인지라 저런 긍정의 말을 들을 땐, 마음속으로 흐뭇해졌다. 실제로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며 대단하고 성공할 사람인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리고 착각인 줄 알면서도 그 생각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 순간을 즐긴다. 하지만, 이 찰나의 뿌듯함은 다음 날 아침이면 와장창 깨진다. 잠에서 깨면서 착각에서도 깬다.



또다시 오후 12시를 훌쩍 넘긴 시각.

알람을 8시로 맞췄음에도 불구하고 내 몸은 이제 5달째, 변화하기를 거부한다. 일과 학업을 모두 잠시 내 삶에서 놓기로 결정한 올해.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하는 공백의 시간을 가져보자며 무작정 책을 집어 든 지 5달이 되어가는 시점이다. 그동안 꽤 많은 자기 성찰, 독서, 글쓰기를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내 몸은 내 마음의 변화를 좀처럼 따라가지 못한다. 

한숨이 나온다. 다르긴 개뿔, 성공은 개뿔. 

난 아직 아침에도 제대로 일어나지 못하는 게으른 인간이다.






학업도 일도 잠시 놓은 이 시점에서 나에겐 딱히 해야 하는 의무적인 일이 없다. 10 달이라는 긴 시간과 그 속의 하루 24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다. 이렇게 많은 시간이 주어지니 정작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조금이라도 나를 변화시키려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생각을 이번 해에 참 많이 했지만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계속 망설여졌다. 


그렇게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에 내가 선택한 것은 독서였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나름 그럴싸한 자기 암시도 스스로 혼자 되뇌었다.


"1년을 뒤쳐지는 게 아니라, 5년의 시간을 얻게 될 것이다." 


나무를 베기 위해서 80%의 시간을 도끼날 깎는데 써라 뭐 그런 이야기랑 비슷하다. 그렇게 난 무작정 독서를 하기 시작했다. 하루 9시간을 책에만 파묻혀 있었던 날도 있었다. 다행히도 내 간절함이 조금 통했는지, 책은 나에게 꽤 탄탄한 길을 열어주는 듯싶었다. 





여태까지 읽어왔던, 그리고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책들은 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혀줄 수 있는 책들이었다. 내 관심 분야가 아니면 정말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학교를 벗어나면 바보가 된 것 같은 기분을 종종 느꼈기 때문에 경제, 인문, 사회 쪽의 책들을 접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 책들은 실제로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고 생각의 폭을 넓혀준 일등 공신이 되었다. 자기 계발서는 읽지 않으려고 했다. 어차피 뻔한 말들일 테고, '내 삶을 바꾼' 자기 계발서 따위는 없었으니까. 책의 급에 따라 나의 급도 바뀐다고 생각한 건지, 복잡하고 어려운 책들을 선호하기도 했다. 지금 보니 굉장히 교만한 태도이다.


그래도 흥미롭게 읽었던 <정의란 무엇인가>, 혹은 이국종 교수님의 <골든아워>를 읽을 땐, "우와.." 하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나도 가끔 글을 쓰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짧은 글 한편을 쓰는데도 얼마나 많은 정성이 들어가는지. 시간을 들인다는 개념의 정성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 마음과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글로 옮기기 위해서는 내 속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정성이 필요하다. 그래서 좋은 글은 단순한 정보의 전달을 넘어서 저자의 가치관과 삶이 듬뿍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통해 운 좋게 그것들을 접하게 된 나는, 책 내용과 저자의 가치관을 내 삶에 대입해보려 애썼다. 많이 읽고, 요약하고, 쓰고, 생각을 여러 번 곱씹으면서 나름의 방법으로 발버둥 쳤다. 하지만 뭔가 부족했다. 마음은 나름 새로워진 것 같기도 한데 정작 나는 달라진게 없었다. 몇 년 전에 <미라클 모닝>을 읽었지만 나에게 기적적인 아침은 찾아볼 수 없고, <돈의 속성>을 읽었지만 나는 아직 빈털터리다. 정의와 사회 불평등에 관한 책을 읽어도 현실에서의 나는 불평등에 무덤덤한 사람이며, <최고의 리더는 글을 쓴다>라는 책을 읽고도 브런치에 글 하나 꾸준히 게재하기 어렵다. 독서를 할 때의 나와 일상 속의 나는 너무도 달랐다. 내 삶에 책을 제대로 대입한다는 것은 내 머릿속을 바꾸는 것 이상의 실천이 필요했다.





'실천'. 참 쉽고도 어려운 말이다. 똑같은 자극을 받아도 실행에 옮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러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러지 못하는 쪽에 속했고, 그래서 항상 궁금했다. "제 인생을 바꿨습니다."라고 적힌 댓글을 보고 나도 같은 책을 읽었는데 왜 나는 의지 조차 생기지 않을까. 누군가에겐 인생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진 문장들이 왜 내 앞에서는 그저 그런 문장이 되어버리는 건지, 답답했다. 천성이 게을러서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것도 명확한 답이 되진 않았다. 게으른 사람을 아침 6시에 일어나게 했다는 책도 있으니까. 이 문제에 대한 고민은 약 한 달간 정도 지속됐다.


그리고 고민의 결과는 이러했다.


나는 그릇이 작다. 그릇이 작아서 품을 수 있는 것도 몇 없는 데다가 고집도 세서 버려야 할 것들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품고 있다. 그러니 아무리 귀한 것이라도 자리가 없어서 품지 못한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내 삶에 들어올 수 없다. 아무리 좋은 조언이어도 내 마음에 닿지 못한다. 생각이 여기까지 닿으니,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될 사람은 된다"라는 말의 참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 주변엔 나를 백만장자로, 대통령으로,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자극'들이 널려있다. '될 사람'들이 특별한 이유, 놓여진 상황에 관계없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들은 그 자극을 품을 수 있는 큰 그릇을 가졌다는 것. 그릇이 넓고 튼튼하니, 성공의 촉매제가 넘쳐나는 이 세상에서 그들은 자기 그릇에 담을 수 있는 경험, 말, 책, 사람을 만나는 순간, 그들은 '될 사람이 된다.' 


그렇다. 나는 좋은 책인가를 따지기 전에 내 그릇을 넓혀야 했다.





어떻게 하면 그릇을 넓힐 수 있지? 

또다시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운 좋게도 이번 고민은 이전에 비해 길고 고달프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넓은 그릇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말이 적고 신중했다. 그래서 그들의 말의 무게는 남들과 달랐다. 그들의 말은 영향력이 있었고 아우라가 있었다. 가장 최근에 읽은 <공자처럼 학습하라>에서도 행동만큼 말의 중요성을 강조했기에 나도 일단 말하는 방법부터 다시 배워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실천은 말과 행동으로 행하는 것이니 일단 말부터 공략해보자는 생각이었다. 하루 중에 가장 많이 하는 '말'을 바꾸다 보면 내 말을 담는 그릇도 조금도 바뀌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있어 보이는 경제서적을 제쳐두고 말하는 방법에 대한 책을 집었다. 오랜만에 다시 자기 계발서를 읽으려니 감회가 새로웠다. 이외에도 말하는 방법, 앉는 방법, 서는 방법, 양치하는 방법, 먹는 방법, 듣는 방법 등 내가 당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들을 다시 배워볼 생각이다. 내 그릇에 쌓인 불순물들을 비워내던지, 그릇을 깨버리고 새로 만들던지 할 생각이다. 


물론 이 방법도 실패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 또한 해봐야 아는 것이고, 운 좋게 난 시간이 넘치는 백수다. 알고 있다고 당연하게 생각한 것들을 "내가 정말 제대로 알고 있나?" 라며 의심해보는 것이 내 그릇을 바꾸는 첫 단계가 되어주리라 믿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나를 낮춘 겸손한 자세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아주 낮은 곳부터, 아주 깊은 곳부터

기분 좋은 변화의 시작임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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