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초년생 시절에는 고단한 회사일을 마치고 운동까지 하는 직장인들이 실로 대단해 보였다. 하지만 연차가 쌓이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 직장인들도 살기 위해 운동을 했다는 것을 말이다. 이유 모를 복통에 병원을 찾아도 ‘스트레스 받지말고 운동하라’는 말만 몇 번 듣고 나면, 그것이 바로 몸의 경고라는 것을 알게 된다.
몇 년 전 그 깨달음의 순간 이후, 나는 야외 운동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두 번 야외에서 러닝 또는 크로스핏 같은 맨몸 운동을 하는 모임이었다. 내게는 그 모임이 유일하게 운동을 하는 시간이었다. 일주일에 고작 두 시간 여뿐이었지만, 평소 자기 몸을 돌보지 않는 직장인의 죄책감을 덜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했다. 운동보다는 폭식과 거북목 등으로 점철된 한 주의 죄를 고해성사 하는 의식에 가까웠다고나 할까.
야외 운동 동료들은 언제나 열정이 넘쳤다. 주중에 다른 운동을 하면서 추가적으로 기분전환 겸 이 모임에도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 주에 봤으면서도 몇 년 만에 만난 십년지기 친구처럼 반가워해주는 운동 크루 특유의 분위기에 적응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내가 뒤쳐질 때면 ‘클로이, 할 수 있어! 화이팅!’을 외쳐주는 그들을 보며, 속으로 ‘너희들이 나를 더 눈에 띄게 만들고 있다고. 관심을 끄고 먼저 가줘! ’를 외치면서 고맙지만 안 고마운 표정을 짓곤 했다. 나는 그날의 운동이 정해지면 그것을 끝내기만도 벅찼건만, 그들은 시간 내에 경쟁적으로 한 번이라도 더 하려고 노력하는 이들이었다. 모임에서 스파르탄 레이스*나 마라톤 같은 것에 참여하지 않는 이는 내가 유일해보였다. 거듭 얘기하지만 나는 그저 ‘나는 운동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라는 자기 위안 정도면 충분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런 나라도 동료들 덕분에 힘내서 땀 흘리며 두 시간을 마치고 같이 식사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보람찬 하루가 되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이 야외 운동 모임의 리더가 내게 물었다.
“보디빌딩 대회에 나가볼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