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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이 Oct 30. 2022

나의 운동 방랑기

 어릴 적 내 신체 활동 빈도는 평균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그저 책 읽는 게 가장 즐거워서 쉬는 시간을 독서로 보내다 보니, 또래 여자들이 으레 가지고 있는 공기 놀이나 고무줄 놀이에 대한 추억도 없을 정도였다. 방과 후에는 피아노나 영어 학원에 갔으니 운동이라면 학교 체육 시간이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운동 신경은 평범한 수준이었던 것 같다. 근력이 없어서 매달리기 같은 것은 못했어도 몸은 가벼워 뜀틀이나 달리기는 제법 했고, 피구를 할 때는 많은 여자애들이 그렇듯 공이 무서워 잡지는 못했어도 피하기는 제법 하는 딱 그 정도 수준이었다. 체육 실기에 반영되는 넓이 뛰기, 농구공 골대에 넣기 등은 다행히 타고나지 않아도 누구라도 연습만 하면 평균은 할 수 있다는 걸 엄마의 응원 하에 깨닫고 통과할 정도는 해내곤 했다. 


체육 시간을 특별히 싫어하지도 않았지만, 짧은 쉬는 시간 동안 교실에서 불편하게 옷을 갈아입고 흙먼지와 땀 냄새로 교실이 뒤덮이는 부수적인 일들이 유쾌할리는 없었다. 그마저도 학년이 높아지면서 입시라는 핑계로 인문계 고등학교의 체육 시간은 종종 자율 학습 시간으로 대체되곤 했다. 뭔가를 좋아하거나 싫어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충분한 노출이 선행되어야 가능한데, 어릴 적 나는 운동을 좋아하는지 호불호를 말하기 힘들 정도로 그것에 대한 노출이 적었다. 



처음으로 운동의 필요성을 느낀 것, 혹은 헬스장에 등록한 것은 성인이 되고 영국에서였다. 


“엄마, 나 7kg 쪘어.”


어학연수 준비에 마음 고생을 하며 기껏 살이 빠진 상태로 영국에 도착했는데, 몇 개월 만에 생애 최대 몸무게를 찍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차곡차곡 올라간 것은 영어 실력이 아니라 몸무게였나보다. ‘You are what you eat (네가 먹는 음식이 너를 말해줄 수 있다).’이란 말은 정확했다. 매일 마시던 우유와 설탕이 잔뜩 들어간 영국식 차, 거기에 가끔 곁들여 먹던 스콘, 그리고 서울 집에서는 먹을 일이 없던 전자레인지 간편식과 버터도 내 몸무게에 일조를 했다.


딸의 변화에 걱정이 오죽했으면 엄마까지 “생활비가 부족하면 보내줄 테니 헬스라도 등록해라”라고 말했다. 위기의식을 느끼고 헬스장을 찾아 나섰다. 중심가에 있는 도보 거리의 헬스장 대신, 멀지만 조금 더 저렴한 지역 주민들을 위한 헬스장에 등록했다. 내 생애 첫 헬스장이었다. 아르바이트와 먼 거리 핑계로 몇 번 못가고 기부천사가 되었지만 말이다.


그 이후로는 마치 ‘1월의 영어 회화 학원’처럼 한 번쯤 의욕이 불타오를 때 간헐적으로 무언가를 등록하곤 했다. 요가 2달, 수영 기초반 1달, 골프 1달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나마 라틴 댄스에 재미를 붙이고 나서는 이것으로 운동을 갈음한다고 합리화했다. 생각해보면 무의식적으로 운동을 해야한다고 생각은 꾸준히 했던 것 같으나, 그 많은 시도를 다 합쳐도 1, 2년이 채 되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동료들이 많이들 등록했던 회사 옆 넓고 깔끔한 헬스장은 어느날 야반도주를 했는데 내가 한 동안 가지 않아 그 사실을 나중에야 알 정도였다. 

그나마 몇 년 전 동네 친구와 함께 등록한 동네 피트니스 센터에서 트레이너 선생님의 꼬드김에 찍었던 바디 프로필이 그나마 가장 제대로 운동했던 것에 가깝지 않았을까 싶다.


아직도 자전거를 못 타고, 수영을 못할 정도니 운동에 대한 필요성이나 욕구가 별로 없었던건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운동과는 담을 쌓았던 어린이가 아주 가끔은 운동하는 성인으로 진화를 했다. 이만하면 장족의 발전이라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니 처음에 친구들이 했던 말에 일리가 있네. 이랬던 내가 보디빌딩이라니? 과연 나는 이번에 방랑을 접고 제대로 내 운동에 방점을 찍을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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