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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이 Oct 30. 2022

느리지만 빠르게 현생 복귀

 집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한 일은 몸에 남아있는 대회의 흔적을 지워내는 일이었다. 진한 메이크업을 지우고, 스프레이로 고정된 머리를 감고, 욕조에서 몸에 바른 탠을 씻어냈다. 스펀지로 비누 거품을 내 스크럽하듯 세게 지워내도 갈색 물이 계속 흘러 내렸다. 출근 하기 전 얼굴에 파운데이션을 퍼프로 두들기는 것보다 더 꼼꼼히, 더 몇 겹으로 밀착시켰으니 씻어내는 것도 그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이러다가는 흰색 욕조에도 물이 들까 걱정될 정도로 탠을 흘러내린 후에야 어느 정도 선에서 나와의 합의를 하고 샤워를 마쳤다. 어쩌면 그 오랜 샤워 동안 방금의 그 꿈같은 악몽인 잠을 청할 수 밖에 없었다. 너무 비현실적이라 꿈같은 하루, 아니 3개월이었다. 오늘 일어난 일을 곱씹으면 잠을 이룰 수 없을 것 같았지만, 하루 종일 긴장했던 덕분에 피곤에 지쳐 잠에 빠졌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옆에 놓인 꽃다발이 없었다면 과연 현실이었는지 헷갈렸을 지도 모른다. 


나는 느린 사람이다. 시대의 키워드가 ‘피봇(pivot)’이라지만, 하나의 일을 끝내면 그것을 정리, 분석하고 다음 일로 얼른 전환하기는 커녕, 끝내고 나서 바로 쉬어가야하는 타입이다. 하지만 사회 일이라는 것이 개인의 성향을 모두 맞춰주는 것이 아니므로 그제까지 무대에서 대회를 치뤘던 나는 얼른 직장인의 페르소나를 써야했다. 그나마 이제는 왜 내가 그렇게 식단을 조절하고 운동을 하러 갔는지 친한 팀원들에게는 말할 수 있었다. 당나귀 귀는 임금님 귀처럼 시원하게. 


회사에서도 마치 내 대회가 끝나길 기다렸다는 듯이 새로운 프로젝트와 개편이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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