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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 민 DAW MIN Jan 09. 2023

#20 버마 할머니, 나는 너무 멀리 걸어왔어요

미얀마 호코 커피농장






호코농장에 필요한 물건을 사려면 만달레이나 낭초, 혹은 핀우린으로 가야 한다.


 핀우린은 관광지라 물가가 비싸 거의  만달레이를 이용하는데 만달레이는 미얀마의 제2의 도시이면서 예로부터 불교의 중심지이다.


하지만 농장보다 고도가 낮아 연중기온이 40도를 오르내린다.


한국 같은 추운 나라에서 살다 온 사람들은 만달레이의 날씨는 좀 어려운데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 꼭 외양이 한국인처럼 생긴 사람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면 “어 그래 여기는 어쩐 일이야 반갑다” 하며 손잡을 거 같은 영락없는 한국 사람 모습이다.


한국에서 사업을 하다 잘 안되면 동남아시아를 생각하고 찾아오는 분들을 많이 만난다. 하지만 그건 큰 오산이다.


봉고트럭을 타고 왔다 갔다 하면 저 한국 사람은 뭐야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미얀마 부자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그들의 눈에는 나와 요한이 한국에서 왔다면서 왜 저래하는 비아냥이  이글거린다.


반가워하는 사람들은 평범한 미얀마 사람들이지 부자가 아니다. 많이 가질수록 더 갖고 싶고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먼저 밥 먹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


아이폰을 몇 개씩 들고 다니며 뉴발란스 신은  부잣집 대학생이 통역 아르바이트를 하러 왔다. 면접을 보러 온 대학생은 기사가 운전하는 고급세단을 타고 왔다.


하루에 4000원을 받아 근근이 살아가는 농장 직원들이 부러운 눈으로 쳐다본다.

조리 하나로 1년을 버텨야 하는 또래들이다.


트랙터 부품을 구하러 만달레이에 갔다가 몇 군데 허탕을 치고 한 군데에서 부품을 구했다.


그 부품은 다른 창고에 있었는데 창고 열쇠를 가지러 간 직원을 기다리느라  덥고 목마르고 지쳐서 잠시 시원한 골목에 앉아 있었다.


만달레이 골목 같지 않게 그 골목은 아주 시원했는데 맞은편에 머리를 쪽진 한국 할머니랑 외양이 정말 똑같은 할머니가 마당에 나와 탐스럽고 커다란 꽃기린에 물을 주고 있었다.


2차 대전 말 일본이 동아시아를 제패하기 위해 침략전쟁에 혈안일 때 이곳 미얀마는 일본군의 주둔지로 많은 위안부 여성들이 끌려왔고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한국 여성들이 핀우린에 많이 살았다는 이야기가 머리를 스쳐갔다.

너무 놀라서 그 집 대문을 열고 들어갈 뻔했다.


많이 힘들고 외로웠던 시간이어서 그랬을까.

걸어도 걸어도 어디가 끝인지 모를 때가 있지 않던가.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한  커피 농장, 내가 잘 걸어가고 있는가. 이 길이 맞는가.


걸어도 걸어도 끝없는 고민 속에서 나는 그 버마 할머니 품에 안기고 싶었던 거 같다.


드디어 트랙터 사장님 창고의 문이 열리고 나는 보았다. 대리석으로 지어진 집 안에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는 쇠붙이들을. 사장님은 자랑인 듯 아닌 듯  미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런 창고가 4개나 더 있어요.”


그러니 트럭 타고 다니는 한국 사장님들아. 똥폼 잡지 마시라.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듯 그러나 정신이 번쩍 나며 나와 요한은 엉덩이에 묻은 흙먼지를 털고 일어섰다.

"칫, 좋겠다. 너는. 하나도 안 부럽다!"




바싹 마른 건기의 만달레이 어디쯤

하염없는 기다림에 골목 어딘가에 주저앉았지

더운 나라에서 기다림이란

기다림이 아닌 거

붉은 꽃을 매단 선인장이 예쁜

어느 마당을 바라보았지

시멘트 마당은 길고

벽돌을 세워 만든 화단은 이름 모를 꽃들이 만발하고

어두운 실내는 유리문만 반짝이고

나처럼 혼자인 할머니 마당에 앉아 있었지.

하마터면 걸어갈 뻔했어, 그 할머니한테.

외양으로 봐선 영락없는 한국 사람이라서

할머니도 없던 난 할머니 만난 듯 오래 쳐다보았어.

곱게 나이 든 버마 할머니는

아주 오래전 내게 왔었던 거 같이

아주 오래전 한 집에 살았던 거 같이

편안해서 잠이 왔다.

아무 생각 없이 할머니 무릎에 누워

꽃이나 보며 잊히고 싶었다.

그날 먼지 많은 만달레이 뒷골목에서.

일본이 전쟁을 일으키고

아시아의 곳곳이 고통받을 때

이곳 버마는 일본군이 점령한 그때의 장소가 많이 남아 있다.

한국에서 위안부로 끌려온 어린 소녀들이

전쟁이 끝나고도 고국에 가지 못하고

버마에 남아 살았다고 하는데

말 설고 물 설고

밥알마저 포슬포슬 굴러다니는 이 먼 곳에서

어찌 살았을까.

만달레이 뒷골목에서 만난 버마 할머니.

한국 시골집 툇마루에서 마주 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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