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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 민 DAW MIN Mar 04. 2024

포도껍질 벗기는 여인

#31 미얀마 호코 커피농장



처음 봤다. 미얀마에서.

포도껍질을 까서 손님상에 내놓는 여인네들을.


아주 천천히 

호텔 주방에서 빌려온 큰 식도로 보라색 포도 껍질을 까고 있는 끼끼에와 나유를 보는 순간 


나는 그녀들이 미얀마에서 흔하지 않은 포도를 잘 몰라 포도 껍질을 까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끼끼에, 껍질 왜 까는 거야?” 하고 물었다.

“ 드시기 편하라고 까는 거예요”


옆에 앉아있던 저민이 끼끼에의 말을 통역해 준다.


그래서 말리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그리고 탱글탱글한 포도 알맹이를 집어서 입 안에 넣어보았다.


부드러웠다.


 그옛날 할머니들이 귤껍질을 까고 귤 한 알 한 알을 쪼개 다시 하얀 속껍질을 벗겨서 롯데 쌕쌕 오렌지처럼 톡톡 터지는 보드라운 과육만 빼내  귀한 손주들에게  먹이는 것처럼 입 안에 걸리는 게 없어서 좋았다.


이번엔 용과다.


잘 익은 붉은 용과를 잘라 역시 과육 부분만 남기고 싹 돌려서 알맹이만 쏙 잘라낸다.


용과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두 여인네의 성의를 보아 맛있게 먹어본다.


작은 포도알을 손가락으로 잡고 식칼로 껍질을 도려내면 무슨 맛이 있겠는가.


어린 아기들 포도 먹이듯 발라내주는 이 정성만 생각해야 한다.


사실 그녀들이 나를 당황하게 하는 또 다른 한 가지는 

나와 요한을 앉혀놓고 갑자기 큰 절을 하는 까닭이다.



미얀마에서는 부모님께 효도하는 날이나  명절에 부모님이나 어른 그리고 선생님께 큰 절을 올린다.


부처님께 올리듯 마음을 다하여 두 손을 모아 절을 한다.


아주 어린 직원들도 아니고 열 살 정도 손아래인 관리자들에게 그런 인사를 받으면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에 집안 어르신이 오시면 큰절을 올렸다.


고향이 이북이신 아버지는 친척이 없었고 전쟁 때 가족을 다 잃은 엄마의 유일한 집안어른이신 작은아버지께서 오시면 모든 식구가 절을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할아버지께 절을 올리면 할아버지는 고개를 숙이며 예우를 해 주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안의 어른이 사라지신 후 절을 하는 일은 설날 세배 외엔 없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요한과 내가 편안히 잘 가라고 고개를 숙이는 두 친구에게

지난날 할아버지처럼 나도 고개를 숙여 예를 보인다.


다시 만날 그날까지 모두 건강하기를.

다시 평안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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