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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37 미얀마 호코 커피농장

by 도 민 DAW MIN




그곳에서 과꽃을 만나게 될 줄은.


한파주의보가 내린 2월 인천공항에서 두꺼운 외투를 캐리어에 쑤셔 넣고 비행기에 오른다.


미얀마의 상황은 아직도 안갯속을 헤매고 있고 살인적인 물가와 환율은 사람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 전화기 너머 직원들의 목소리는 매우 지쳐 있고 피로해 보였다.

한 그릇에 300원 하던 국수는 3년 사이에 3000원. 급여는 오르지 않고 기름값은 치솟고 정전은 계속되고. 농장지역은 계속되는 교전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양곤으로 향한다.

농장 지역의 사람들은 대부분 피난을 가거나 고향으로 떠났으나 전쟁통에도 농장을 지키고 남아있는 직원들과 이번 설은 미얀마에서 조촐하게 휴가로 보내기로 했다.


그래. 돈이 다가 아니다.

누군가는 참으로 딱하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나와 요한은 돈이 다가 아닌 인생을 살고자 한다.


뜨거운 햇볕 아래서 일 년 내내 커피 농사를 짓는 직원들과 근사한 수영장에서 라임주스를 마시고 선베드에서 빈둥빈둥거리고, 쇼핑몰에서 실컷 눈요기도 하고, 시골출신들인 농장직원들이 한 번도 와보지 않은 양곤 쉐다곤 파고다에서 인증사진도 찍고 , 한국음식점에서 삼겹살도 먹고 이번 설은 그렇게 보내고 싶었다.


인야호수에서 아침산책




그리고 마사지.

하지만 미얀마 사람들은 마사지를 즐겨하진 않는다.

나와 요한만 마사지를 받았는데 세상에 과꽃을 뿌려놓은 침대에 누워 마사지를 받게 되다니.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가을이 되어야 피는 과꽃을 만나며 낯선 곳에서의 경계심이 무너지며 오랜만에 편안했다.


앞 일을 알 수 없는 미얀마와 농장과 한국의 상황이 머리를 무겁게 했지만 내 마음대로 내 생각대로 다 이룰 수는 없는 일. 오늘은 수고한 모두에게 휴식을.

올해도 과꽃이 피듯 내년에도 피어나기를

보랏빛 풍성한 뜰 안에서 우리 모두 살아있음을 기뻐하게 되길 기원해 본다. 아직은 주머니 안에 라임주스와 뻬야디 주스( 수박주스)를 사 먹을 돈이 있으니 조금 더 견뎌보자!



손님을 맞는 과꽃과 레몬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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