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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MPRE Feb 14. 2021

[에세이] 영혼을 강도당한

엄마의 이야기

서울에 사는 동안, 고향에서 엄마가 찾아온 적이 있다. 모처럼 눈이 수북하게 내려서 거리가 환한 밤이었다.
우리는 월남쌈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집을 멀리 떠나온 나는 재미없고 식상한 회사일 말곤 이야기거리가 없었지만, 전도사였던 엄마는 흥미롭고 신비로운 이야기를 하나 가져왔었다. 나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그 이야기에 매료되어 푹 빠져들었다.

엄마는 그 전 몇 달 전 길거리에서 나이든 여자 하나를 전도했다고 한다. 질 나쁜 아줌마였다. 거리에서 아저씨들에게 몸을 팔았는데, 그냥 파는 것도 아니고 술 취해서 인사불사성인 사람을 잡아다 옷을 벗겨서 대뜸 관계를 맺고 돈을 가져가는 사기꾼 같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평판이 너무 나빠서 사람들은 그 여자를 도와주기를 꺼려했는데, 엄마는 성심껏 도왔다. 교회에서 몇 안 되는 돈이나마 받게 해주고, 병원 치료도 받게 해줬다. 그러나 그 여자는 교회 목사가 그 정도 밖에 못 도와주냐며, 자기가 느끼기에 한 없이 쪼잔해 보이는 목사를 욕하고 저주했다. 사실 교회 재정이 넉넉한 편도 아닌데 말이다.

이렇게, 그 여자는 사회에서 미움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그런 종류의 약자, 도움을 받기에는 너무 거북한 그런 전형적인 볼품없는 약자였다. 요즘 세상 사람들은 약자라는 이유 하나로 불쌍한 사람들을 돕지는 않겠다고 혀를 끌끌찬다. 그 여자가 바로 그런 대접을 받는 약자였다. 우리 엄마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떠올리며 나름의 소명감으로 그런 사람을 성심껏 도왔다.

그 여자는 백내장이 되어 눈이 먼 남자와 같이 살았다. 약간 머리가 모자란 사람이었다. 요란하고 무시무시한 화장에 야한 옷을 입은 볼품없는 여자와 눈자위가 하얀 어수룩한 남자. 자꾸만 사람들을 저주하며 도움을 갈구하는 이 기괴한 한 쌍은, 교회에서 다른 사람들이 기피하는 존재일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엄마에게 무리한 요구를 반복했다. 그러나 교회에 등록조차 하지 않는 그들을 돕는데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도움 안 되는 목사를 저주하고, 엄마를 부담스럽게 하는 여자의 삶. 그 삶은 마지막에도 초라했다. 성병에 걸려 고통스럽게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엄마는 그 여자의 부름에 병원에 찾아갔다. 그리고 그 곳에서 고통과 절망에 젖은 여자에게 설교를 시작했다. 창세기였다. 우리는 죄로 인해 불행할 수 밖에 없고, 그렇기에 구원을 받기 위해선 회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자는 고통에 젖은 가운데 질문했다. 자신도 죄 때문에 그렇게 불행해졌고, 그런 고통을 겪에 되었냐고 말이다. 솔직히 그 대답은 너무나도 분명했다. 술취한 남자들을 강제로 끌고와서 몸을 팔다 성병을 얻은거니까 말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기독교 교리에 나름의 좋은 점이 있다고 느꼈다. 기독교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그렇기에 가장 고결한 사람도, 가장 비천하고 볼품없는 죄악 끝에 초라하게 죽어가는 사람도 죄 앞에선 인격적으로 평등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모든 사람들이 삶 속에서 숙명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죄의식을 어느 정도는 오히려 경감시켜 주는 효과도 있을 것 같다.

여자는 호흡을 헐떡이면서도 엄마의 기도에 귀를 기울였다. 기도를 어떻게 할지 모르는 그 여자에게 엄마는 따라하라며 차근차근 기도의 말을 읊어주었다. 그렇게 여자는 조금은 어색하게도, 마지막 순간에 속죄의 시간을 가졌다.

엄마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다시금 이야기하며, 그 여자는 죄악으로부터 영혼을 강도당한 셈이라고 근사하게 표현했다. 모든 시간이 끝나고 죽은 여인의 요란한 화장이 벗겨졌을 때, 놀랍게도 여자의 얼굴은 새하얗게 깨끗하고 아름다웠다고 한다. 엄마는 그것이 죄로부터 벗어난 사람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나도 과연 그랬으면 좋겠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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