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시절 행정작업을 하는 책장 위에 이런저런 책들을 꽂아두었다. 개중 두 권짜리 양장본인 하버마스의 <<의사소통 행위이론>>을 눈에 제일 잘 보이는 곳에 꽂아두었다. 합리적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그곳 공간과 구조에 대한, 아무도 모를 소극적인 저항이었다.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거로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었다. 언젠가 홀로 불침번을 서는 중이었다. 추위와 졸음을 버티며 영어학습 기계에 읽을 만한 글들을 담아서 읽는 중이었는데, 당직사관이던 이ㅇㅇ 상사가 그 모습을 보았다. 허리에 탄띠도 반쯤 풀려있고 모자도 불량하게 쓰고 그러고 있었으니, 호통이라도 크게 들을까 조마조마했다.
그런데 이 상사는 다가와서 내가 읽고 있던 글을 보더니(민족주의의 시원에 대한 글이었다) 그 자리에서 갑자기 이런 소릴 한다. “일전에 몇 차례 사무실에 있는 네 자리에 꽂힌 책들을 훑어보았는데, 대대 전체에서 가장 어려운 책을 읽는 것 같더라. 나는 도무지 이해조차 안 되는 어휘들로 넘쳐나더라.”
이 상사는 이내 소대장실로 들어오라고 하곤 유자차를 대접한다. 그리고 점잖은 회한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자신은 직설적인 성격 탓에, 또 변변찮은 과거 탓에 재미없는 삶을 살아온 것 같다고 한다. 변변찮은 학력에 단조로운 삶만 살아와서, 도무지 지금까지의 삶에 확신이 가지 않는단다.
성격도 쿨하고 여유로웠으면 좋겠는데, 그게 영 안 돼서 포기한 것 같다. 병사들이 모두 알고 있는 그 불같은 성질과 달리, 자신은 대단히 여리고 수줍음도 탄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20대 초중반 무렵이었던 당시 내가 느끼기엔 그 이야기가 일종의 “중년의 위기”를 지나는 공무원의 무력감 정도로만 느껴졌다. 그러니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없었다. 당시 내가 바라본 부사관의 삶은 단조롭고, 새로운 도전이 있을 수 없는, 즉 더는 새로울 것이 없는 그런 삶이었다. 본인의 적성이나 창의력과 상관없이 지루한 공무원 생활을 수십 년 반복하게 되니 말이다. 머리가 하얗게 센 공무원 아저씨의 이야기.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단순히 그런 것만은 아니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어쭙잖게나마 직장생활을 하면서 주로 직장인들이 어디에서 감정적 고통과 무력감을 느끼는지 대강 알 것 같다. 단순한 직장보다 군이라는 조직에서 그 부분은 더욱 강하게 개인을 짓누른다. 그것은 부조리한 권위에 대해 소신 있는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압박감이다.
이 상사는 사실 그 자리에서 1990년 3당 합당 당시 이의를 제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야기를 했다. 사람이 그렇게 자기 소신을 표출하고, 대충 묻어가는 부조리에 대해 분명하게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말이다.
반면 그 당시 이 상사 본인이 느낀 노조 간부들은, 머리는 좋으나 자기주장을 뚜렷하게 담아 교섭하는 데 능숙하지 못한 것 같다고도 말했다. 깃발이 흔들리는 쪽만 좇으니 쉽게 이용당하는 것 같단다.
당시 얼마 전 전역했던 모 병장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그는 군 부조리에 분명하게 자기 의견을 표현하고, 폭력적으로 구는 선임들에게서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이 상사는 “사람이 그처럼 정교하게 자기 이미지와 스토리를 만들어 낼 줄 알아야 한다”고 평가한다.
이야기한 내용은 모두, 알고 보면 사실상 공고한 조직에 저항하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소신껏 기존 권력에 이의를 제기하는 용감한 사람들에 대한 찬사. 그런 이야기를 가장 많이 했는데 당시엔 왜 그 부분에 주목하지 못했을까.
이 상사의 이야기는 단순한 중년의 위기가 아니라, 거대한 조직의 한 구성원, 한 부품으로서 권위주의를 재생산할 수밖에 없고, 조직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무력감의 표출이었던 것 같다. 병사들에겐 큰 목소리로 불호령을 하고 업무를 지시할 수 있지만, 거꾸로 상부에서 내려오는 불합리한 지시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이런 현실이 모순적이고 괴로울 것이다.
조직의 구성원이자 중간관리자로서 저항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압박은 너무나 강하다. 위에서 내려오는 불합리한 지시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고, 이를 갈면서도 묵묵히 수행해야 한다.
본인도 때론 권위주의를 원하지 않고, 부조리한 명령에 대해 저항하고 싶은 욕구도 느낄 것이다. 그렇지만 그래선 안 된다. 전역하면 그만인 병사와 달리, 부사관이란 평생 유지해야 할 직장이고 거기서 눈 밖에 나서 자리를 잃거나 불이익을 얻으면 남은 인생에 너무나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삶이 볼모다. 그러니 굴욕적이어도 부조리를 수용하고, 더 나아가 자신이 괴로움을 느꼈던 부조리와 권위와 압박을 아래에 있는 병사들을 향해 재생산할 수밖에 없다. 아마 이런 이야기를 소상히 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의 있습니다!”라고 당당하게 외칠 용기보다 볼모처럼 잡혀 있는 삶의 무게가 더 무거운 현실이다. 그래도 그때 괜히 뭐라고 내가 덕담이나 조언이랍시고 안 건네고 조용히 들어주기만 한 건 잘 한 것 같다. 내가 꽂아둔 <의사소통 행위이론>처럼, 새벽 중에 병사에게 넋두리하는 게 그 사람 나름의 소극적인 저항이었겠지.
문득 그 상사가 밤새워 일하고, 다음 날 아침에 다시 출근해선 졸린 상태로 허우적대며 자료를 찾던 광경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