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직장 때문에 시카고 다운타운 아파트에 사는 나는 전원에서 살던 습관 때문에 여러 가지로 불편함을 겪는다. 무엇이 되었건 여기서는 거주자 공동체 기준에 맞게 살아주어야 한다. 나름 부촌이라 아시안을 무시할까 봐 옷하나 입는 것도 제대로 입는다. 아파트 헬스장 갈 때도 수영장을 출입할 때도 은근히 신경 쓰인다. 깨끗하게 하고 다니면 일본이냐 묻고 좀 거시기하면 중국이냐 묻는다. 암튼 여기서는 내가 한국인인걸 다 알기 때문에 나는 나라를 대표해서 살아간다. 미국인 된 지 30년 가까이 되었는데도 내 외모는 여간해서 백인으로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난 매사에 신경 쓰고 특히 냄새를 조심한다.
중남부에 살 때는 일반주택에 살았다. 넓은 마당과 이층짜리 주택은 주말마다 바비큐를 하며 살기에 충분한 공간이었다. 그때 집을 구입하려 부동산과 집을 보러 다녔는데 간혹 한국인 이 살던 집을 들어가면 카펫에 김치냄새, 된장찌개 냄새가 적당히 범벅된 꾸리 한 냄새가 났다. 이민초기, 우리가 먹던 음식냄새가 우리 머리카락에 간직되는 것을 알고 난 뒤, 난 학교 갈 때 항상 식사 후에 샤워를 하고 마지막 향수 칙칙도 잊지 않았다. 집에도 냄새가 배는 것을 잘 알기에 우리는 집밥을 준비하면 반드시 환기하고 설거지 후 페브리즈를 뿌려서 냄새를 삭제했다. 요란 떨고 산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미국에 사는 동양인에게 냄새는 중요했다.
미국엔 우리와 다른 냄새가 산다.
혹자는 단순하게 노린내라 치부하지만 우리가 마늘냄새를 끼고 살듯 그들의 몸과 문화, 음식에서 비롯된 냄새다.
내가 미국냄새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초급장교시절 전방 근무 할 때 산꼭대기 미군부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곳은 천 미터가 넘는 고지대인데 몇 개의 부대가 있었다. 국방부 감청부대, 공군 레이다기지, 당시 육군방공포 대대 그리고 미군부대였다. 정확히 미군이 무슨 임무를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우리는 미군 시설을 공유했다. 그것은 공사장 임시숙소 같은 컨테이너 건물이었는데 내부의 복도는 반지르르한 대리석 같은 타일이었고 사무실과 휴게실엔 카펫이 깔려있었다. 탁 들어가면 제일 먼저 바닥청소 약품냄새, 후에 내가 미국에 처음 들어가 학교복도에서 맡게 되는, 그 냄새가 훅 들어왔다. 카펫에서도 묘한 냄새가 났다. 그리고 함께 어울리던 양놈들에게도 알쏭달쏭한 냄새가 났다. 나는 그들의 모든 냄새가 신기했다. 게다가 자판기에서 뽑아먹는 Mtn Dew (미국에서 만두~라고 발음하는)도 무척 신선하고 톡 쏘는 맛이었다. 한국군의 콘크리트 사무실 냄새와 미군의 컨테이너 사무실 냄새는 묘한 대조를 이루었다.
'하지 마" 가족들은 극구반대했다.
" 아냐, 한번 해볼게, 충분히 완전범죄로 해낼 수 있어"
김치찜과 김치전을 해주겠다는 나의 선언은 가족모두의 만장일치로 부결되었다. 하지만 레임덕에 빠진 가장이라도 아직 통치권은 나에게 있었다. 게다가 올해 혹독한 겨울을 나며 뭔가 기발한 냄새가 필요했다. 여기는 중앙 집중식 환기장치라 내부 냉난방 공기가 순환되기에, 춥지만 창문을 개방하고 순식간에 해치워야 한다. 지금은 반대를 무릅쓰지만 가족들이 첫술에 미쳐버릴 것을 나는 잘 안다. 올해 후배가 직접 담근 김장김치를 선물해서 김치냉장고에는 김치가 맛깔나게 익어 있었고 지금이 바로 김치 찜을 해먹을 적기라는 것을 요리 좀 하는 남자는 본능으로 알고 있었다.
잡내도 뺄 겸 H mart에서 구해온 오겹살 한 덩어리를 먼저 절반정도 익혔다. 이 냄새로 아직 창문을 열 정도는 아니다. 김치 한 포기와 반 익힌 고기를 오목한 프라이팬에 식용유 조금과 함께 넣고 배추다리로 고기의 몸을 야하게 휘감자 둘은 한 몸이 되었다. 그 위에 다시다 조금, 참기름 티스푼 하나 (나중에 한 스푼 더) 설탕 한 스푼, 마늘은 네 알 으깨고, 청양고추한개, 파 한 줄기 듬성듬성 잘라 넣고 마지막으로 물 조금(멸치육수가능하면 더 좋고) 넣었다. 가스불 아닌 인덕션이라 요리가 불편하지만 강불로 먼저 끓기 시작하면 한오분쯤 뒤에 중불로 하고 잽싸게 창문을 다 연다. 오 춥다. 하지만 이 정도는 이겨내야 냄새 민원이 안 들어온다. 그 틈에 김치전을 만들어야 한다. 전은 뭐 식은 죽 먹기니 준비하면 그만이다. 고기가 익은 것이기 때문에 김치찜은 오목프라이팬 유리뚜껑으로 보고 익었다 싶을 때 (약 십오 분 정도) 중불로 익히다 꺼버린다. 아직 완성은 아니지만 남은 열기로 익힌다. 이어 김치전을 만든다. 이젠 주방팬만 돌리고 창문은 닫는다. 기름냄새가 김치냄새를 대충 잡아주니까 큰 문제가 없다. 십오 분 정도 전을 다 만든다.
요리 시작 삼십 분 정도 지나 상을 차리고 국민들을 밥상으로 불러 모은다.
그사이 밥을 푸고 계란 프라이를 하나씩 배급하고 소금 기름 없이 김을 구워 올려놓는다. 그리곤 남은 열로 익어가던 김치찜을 재가열 한 뒤 마지막으로 오분 간 연설을 시작한다.
"대통령 께서 모두발언 하시겠습니다"
"여러분들 요즘 "시청각"으로만 살지. 후각은 무시하는 것 같아요.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은 완벽한 정보가 아닙니다. 그런 말도 있잖아요, 남녀가 사랑에 빠질 때 제일 먼저 후각으로 상대를 인지한다고, 어쩌면 유전자 냄새를 맡는지도 몰라요. 오늘 나는 냄새 가득한 김치님이 대한민국이라고 봅니다. 내가 죽더라도 김치는 꼭 먹고살기 바랍니다. 자 건배합시다"
"대한민국 만세"
"짝짝 짝짝'
원시인 같았다. 족장이 매머드 사냥에 성공하고 얻어온 고기 먹는 부족원 같았다. 아무도 말하지 않고 머리 처박고 드신다. 밥 한 공기 더 달라고 둘째가 제일 먼저 말했다. 이어 큰애가 "전 좀 가득 담아 주세요". 밥도둑이네...
성공이다.
난 김치로 여론조사 탑을 찍었다.
언젠가 AI가 인류를 장악하고 상류층 포스트휴먼과 어울려 지낼 즈음엔, 냄새도 맡는 기계가 되겠지.
늦은 밤 로버트 란자의 "바이오센트리즘"을 마저 읽으며 생각했다, 나도 언젠가는 "냄새 숨기며 만들어 먹은 김치찜이 참 행복한 최고였어" 하며 되새김질하다 처음 원자로 돌아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