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떡하지?

by 강노아

Day3


아무도 만나기 싫었다.

현관에서 비밀번호를 누를 때 바스락 거리며 문을 긁는 소리가 들렸다.


루이였다.


높이 점프를 하며 “왜 이제 오냐 고” 바둥댄다.

분명 루이가 맞는데 루이가 없다.

가는 순간보다 없는 순간이 더 견디기 힘들다.


남편도 말없이 집을 나서고 한나도 어두운 얼굴로 출근했다.

그이는 나를 위로하려고 정말 최선을 다했다.

루이 사진으로 동영상을 만들어 좋아하던 음악을 바탕에 깔아 슬그머니 놓고 출근하기를 반복했다.

난 하루 종일 그 영상들을 보고 또 보며 나쁜 루이도 원망하고 나도 원망했다.


아니, 그냥 다 싫었다. 사는 것도 숨 쉬는 것도……


루이를 죽게 한 버스 운전사도, 남편도, 갑자기 한국에 여행을 온 아들 내외도 그랬다.

아니 가장 결정적인 루이의 죽음을 책임 질 존재는 어쩌면 전능하다던 신이었다.

생사화복을 다 주관한다는 그 절대자가 루이의 죽음을 방관한 최종 범인이었다.


이 죽음은 신의 직무유기였다.


미국에서도 장례식에 가서, 예쁘게 꽃단장하고 관에 누워있는 망자들을 볼 때마다 두렵고

낯설었다. 그래서 죽음은 그림자도 피하고 싶었다.


위로받을 자격도 스스로를 치유할 힘도 없었다.

하지만 남편은 무한한 책임감 때문에 스스로를 그리고 우리 가족을 치유하고 싶어 했다.


루이의 죽음으로 한나에게 비난받으며, 나 역시 이 일을 만든 범인을 색출하여 내 무거운 죽음의 짐을 몽땅

전가할 작정이었다.


루이의 죽음은 가족끼리 서로 고발자가 되고 죽음을 방관한 신도 고소해야 했다.

루이의 죽음으로 우리 가족은 서서히 은밀하게 금이 가고 있었다.


Day4


“하나님, 왜 이러시는 겁니까?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겠죠? 아니면 잠시 못 보신 건가요?

우리에게 사랑하는 것들을 빼앗아 인간의 무력과 탄식을 즐기시는 건 물론 아니죠?

고난의 훈련인가요?

전 고난의 훈련 따윈 필요 없는데 이해할 수 없군요……”


아침마다 가족을 위해 기도하던 시간은 원망을 생각하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사랑하기로 마음먹거나, 사랑하게 된 모든 것들이 나의 작은 가슴에 보자기로 싸여 있다가 내 품을 떠나 알 수 없는 어떤 곳으로 향하는 이 비참한 현실은, 사랑하는 이를 잃었거나 현재 죽어가는 사랑하는 이를 보살피는

모든 이들이 겪어야 할 숙명으로 보였다.



Day5


씻지 않고 밖으로 나가지 않은 지 일주일 째다.


안방에는 덩그러니 루이 사진만 놓여 있고 아침마다 나를 깨우던 루이의 꼼지락 은 이제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루이가 없는 아침, 눈을 뜨고 의식을 가지면 제일 먼저 눈물부터 나온다.


폐인처럼 지내는 동안 "그깟 개 한 마리 때문에 왜 그렇게 긴 시간을 낭비하냐"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지만

정말 아무것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먹는 것도 겨우, 가족들이 집에 돌아오면 억지로 밥 한술 뜨는 것이 전부였고 가족들은 이제 서서히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나마 그들은 일을 하며 루이의 상처를 잠시 잊고 숨이라도 쉬기 때문이다.


한나는 자신이 바쁘다며 루이를 잘 돌보지 못했음을 진심으로 깨닫기 시작했다.

그래서 루이의 살해범을 꼭 잡아 책임을 물어야 하는 일에 자신도 살해범의 한 공범자임을

느끼는 듯했다.


“엄마, 내가 루이를 잘 돌보지 못한 것 같아.”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루이와 시간을 많이 보냈어야 했는데, 나는 항상 자느라고 바빴어”


자조 섞인 고백은 나의 오랜 침묵에 분위기를 바꾸려는 의도일지 모르지만 그 아이의 눈빛과 표정에서 진심으로 범인 찾기를 그만하고 이젠 자신도 공범인 것을 아는 눈치였다.

물론 한나가 그렇게 고백을 하든 진심으로 참회를 하든 나에겐 루이의 최고 책임자란 죄의식이

확정적으로 마음에 자리 잡고 있어서 그 말은 딸의 조금 성숙해진 응원으로 느껴졌다.


문제는 남편이었다.

그는 비행을 해야 하는 조종사여서 안정된 심리로 매일 출근을 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루이의 죽음 이후로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일부로 태연한 척 운명이라고 치부하며 담담하게 이겨 내자고 하던 그의 파이팅도 사라졌다.

그는 이제 가족들의 죽음을 이기는 해법을 처방하기보다, 루이에 대한 자기상처를 서서히 표현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TV 뉴스에 무관심한 얼굴로 앉아있고, 아무 감정 없이 지내는 시간이

점점 많아졌다.


죽음의 옆자리는 이처럼 사건 날보다 더 집요하고 치명적인 쓰나미를 우리에게 가져다주었다.

죽음 지진의 첫 타격을 맞아 정신을 잃고, 다가오는 죽음 쓰나미 해일에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


오랜 침묵 끝에

루이를 미용하던 애견 미용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 저 예요, 루이.”


“아, 안녕하세요, 루이 미용할 때가 되었나요? 잘 계시죠?”


그녀는 루이 같은 코카스파니엘을 네 마리나 키우는 이 견종의 전문 미용사다.

루이 소식을 모르는 것이 당연했다.

수화기를 든 채 또다시 그녀 앞에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루이 어머니? 무슨 일이라도?”


주체 못 할 통곡을 이어가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


“루이가 떠났어요, 교통사고로”


“……”


“아이 좋아하는 캠핑을 하다가 버스에 그만”


“어머, 세상에……”


그녀는 내 길고 혼란한 이야기를 다 들어주었다.

그 고백 속에 나는 절대 이 사건의 책임자가 아니며 루이의 죽음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사고였음을 두서없이

변명하고 있었다.

내가 여행지 선정의 주도자이며, 아들이 미국에서 돌아온 이야기며, 루이가 사라졌던 이야기를 다 생략하고

나는 슬프고 슬픈 내 이야기를 하고 그녀가 그냥 들어주는 것만을 원하는 듯했다.

이런 것이 평소 내 모습은 아니었다.


오랜 시간 그냥 듣기만 하던 그녀가, 자신의 그동안 말하지 않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실 저도 애견을 잃었었어요…그래서 누구보다 언니 심정을 압니다.”


그녀의 말에 뜨거운 것이 확 찾아왔다.

그 전율이 찾아들자 그녀의 말은 하늘의 계시처럼 들렸다.


“우선 진정하시고 이 상황을 차분히 받아들이세요”


그녀는 신비한 애견교의 교주 같았고 순간 나는 온순한 교인이 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위로가 되었다.

현장의 동반자보다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보아 주는 제삼자의 말,

“저도 아이를 잃은 적이 있어요”라는 공감의 언어가 가슴에 뿌려졌다.

그녀는 그날 이후로 나의 상담사가 되었다.


누구나 같은 상황을 지나게 된다는, 한참이 걸릴 거라는, 시간이 가면서 해결이 된다는,

아마도 적잖이 귀찮은 일이지만 내 슬픔에 격하게 공조하는 가족 이외의 사람이 있음이

너무나 큰 위로로 다가왔다.


“그 사람이 귀찮아할 텐데……”


남편은 그녀에게 민폐는 아닐지 걱정하였다.


“그녀도 일해야 하니 제가 알아서 조절할게요.”


Day 6


애견 죽음 관련 서적에 빠지기 시작했다.

도피 일지도 모르고, 너무 마음이 아파 책에 들어가 치료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어떤 책에는 죽은 애견과 교감하여 죽은 애견이 영매에게 들어와 말을 전해주고 상담해주는

내용들도 있었다.

우리들의 정서에 깊이 새겨진 주문, 주술, 신비주의적 경향은 거부감을 주었다.


오히려 사랑하던 애견과 마지막까지 죽음을 함께 나누며 생활한 이야기들이 마음에 위로가 되었다.

점점 죽음에 대한 정리가 이루어졌다.


첫째. 루이의 죽음은 그 원인과 이유를 알 수 없음.

둘째. 루이의 생전에 차로 달려드는 습관을 고치려는 시도가 필요함.

셋째. 애견의 죽음을 치유하는 방법으로 같은 종의 애견을 입양하는 것.

넷째. 루이의 기억을 아름답게 정리하여 기억에 예쁘게 담아 놓는 일.


이 중에서 혈통에 대한 견해를 소개한 책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문제 해결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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