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상처
상처의 치료
"의학적인 견해에서 피부조직의 파괴는 외부환경에서의 무방비 상태가 되고 외부 세균과 이물질이 침투하는
상황에서 몸은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피가 나고 통증이 발생하는 현상은 강력한 경고의 표현이다.
그리고 상처는 지혈, 염증, 증식, 재구성의 단계를 거친다. 그런데 상처를 소독을 하면 오히려 이로운 균이나
세포가 소독약으로 사라지고 나쁜 균들이 증식한다. 그러므로 상처는 깨끗하고 촉촉하게 유지시켜주면 오히려 잘 회복된다"
이 전문가의 의견을 보며 마음의 상처도 같은 과정을 거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마음에 피가 나고 온갖 모진 생각들이 잡균처럼 나를 지배하고 아물어 가고 시간이 흐른 뒤에
더 단단하지는……
친한 선배와 개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는 반려견을 집에서 키우고 있지만 애견인은 아니었다.
“선배는 반려견을 어떻게 생각해?”
“난 싫어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막 좋아하지도 않아”
“어릴 때 집에서 반려견을 키웠지. 그런데 알잖아 마을에 쥐약 막 풀어놓고 쥐 잡기 하던 시절, 우리 집 그 녀석이 새끼를 몇 마리 낳고 좀 편해지니까 돌아다니다가 집 근처에서 쥐약 섞은 음식을 먹었 나봐. 그리고 집에 와서 토했는데, 새끼들이 그거 먹고 다 죽었어. 어릴 때 그 충격에 난 개를 아주 오랫동안 키우지 못했지. 지금도 마누라가 키우니까 키우지 난 애견인은 아니야.”
그에게 그 사건은 상처로 남았다. 그 상처를 소독해 버리고 치료해도 그는 애견인이 될 수 없었다.
상처 역시 자연스러운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면 우리는 새로운 행동을 고안하여 살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존재의 죽음이 주는 상처는 몸의 상처처럼 몇 주 후면 치료되고 아물고 새살이 돋는 것은 아니다.
특히 자살이나 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나는 일을 보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그래서 존경하는 인물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은 모방자살도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죽음의 상처(사람이든 동물이든)는 좀 더 적극적으로 진지하게 치료해야 한다.
돌이켜 보니 친구의 죽음이 나에게 상처로 남아 내 인생에 영향을 주었고 그런 일련의 사건들이 모아져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죽음의 상처
어릴 때는 죽음을 많이 보며 자라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주변에 가족이나 지인들이 사고로 죽음을 당하여 힘들어 본적도 별로 없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서는 너무 많은 죽음의 환경에 노출되었다.
군에 있을 때는 이웃에 사는 친구를 비행사고로 잃었다. 그 친구의 장례식을 인도하면서 조문객보다 더 심하게 울어서 마음 여린 채플린 소리도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의 죽음을 통보하려고 지휘관과 정복을 입고 그의 집에 방문했을 때 친구의 아내가
우리 모습을 보자마자 “그이 군요.” 하며 자리에 쓰러져 오열하던 모습이 생생히 머리에 남아 있다.
비행사고가 나면 그 소식은 지휘본부에서 관사로 전해지고 정확한 결과가 발표되기까지 모든 관사의 부인들은 마음 졸이며 패닉 Panic에 빠져 기다린다.
누군가는 정복을 입은 사람의 방문을 받기 때문이다.
조종사 들은 관례상 사고로 떠난 분의 관사에 입주하길 싫어해서 친구인 내가 그의 집에 입주하고
그 집에서 친구가 지금 옆에서 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죽음의 상처는 평생 안고 가야 하는 무거운 책임이다.
자기 내면의 저장소 용량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면 이런 상처들의 정신적 고통으로 자신마저 저 세상으로
가는 수가 많다.
그 저장소 용량을 가지려면 "자기 확장"이라는 내면 성장에 동참하는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도 가장 친했던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죽었다. (그의 나이 마흔넷으로 기억한다)
그가 일하던 곳까지 13시간을 운전해가며 눈물이 마르지 않아 과속을 하게 되고 경찰에게 티켓을 받게 되었다.
“미안합니다. 베스트 프랜드 가 죽어서 장례식장 가는 중입니다. 속도에 신경을 못 썼습니다”
그러자 교통경찰은 열린 차장을 들여다 보고 뒷좌석의 검정 양복을 보더니
“조심해서 잘 다녀오라”며 차렷 자세로 천천히 손을 올려 애도의 경례를 해주었다.
시신 메이크 업을 끝낸 그를 보기 위해 웅장한 장례식장에 그의 아내와 동행하여 방문했다.
입구에서 대기하다 친구 아내의 팔짱을 끼고 느린 걸음으로 한걸음 씩 시신까지 가는 검정 양복의 백인 담당자의 모습은 죽음이 거룩한 것임을 아는 서양인들, 아까 경찰관을 포함해, 의 위엄이 느껴졌다. 친구의 시신 앞에 당도했을 때 나는 기가 막혀서 울 수가 없었다. 얼마 전까지 밤을 새우며 인생을 토론하던 친구였다.
죽음의 상처는 나 에게도 무거운 사건이 되어 내 인생의 방향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이처럼 죽음의 간접 영향은 자신의 사생관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다.
이런 것들이 모여 자신이 죽음을 통과할 때 그동안 형성된 의식이 작동을 하게 될 것이다.
몇 년 전 한국에 방문했을 때 지인의 소개로 한 청년을 알게 되었다.
그는 한의사였다.
그의 한의원에 드나들며 좋은 치료와 대접도 받으며 대화를 많이 나누며 지냈다.
그 한의사 청년은 순수하고 착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청년을 소개해준 지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큰일 났습니다. 이 원장 여동생이 갑자기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퇴근하던 여동생이 보도를 걷고 있는데 갑자기 택시가 뛰어들어 길가던 행인들이 사고를 당했고 그중에
여동생만이 그 자리에서 심장마비를 일으켜 사망했다는 것이었다.
부랴부랴 그를 돕기 위해 그녀의 시신이 안치된 장례식장으로 달려갔다.
이 원장은 잿빛 얼굴에 초 죽음이 되어 있었다.
“얼마나 상심이 크십니까?”
“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30대의 꽃다운 처녀가 죽음을 당했으니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이 그 가족을 삼켰다.
그들은 특별한 종교를 갖고 있지 않아 나에게 모든 장례와 진행을 부탁하였다.
사망한 지 하루쯤 지난 상태에서 조문도 받지 않고 가까운 친구들과 가족만 모여 급조된 공간에서
장례식을 위해 바로 입관식을 하고 화장장으로 향했다.
나는 이 원장의 여동생을 시신으로 처음 만났다.
그녀는 좋은 대학을 나오고 좋은 직장에서 한창 성장하던 멋진 여성이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그녀는 역설적으로 참 아름다웠다.
“하나님은 참 무심도 하시지 이 젊은 영혼을 불러들여 무엇을 하시려고……”
나는 입관 전 버선으로 잘 감싼 그녀의 발을 꼭 잡았다. 그리고 그녀의 영혼을 위해 기도했다.
갑자기 슬픔이 가슴 깊은 곳에서 벅차오르며 눈물이 차 올랐다.
생명 마감에 대한 억울함, 안타까움 일까 가족들의 슬픔에 함께 젖어서 일까?
그녀는 그날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하루 만에 재가 되었다.
죽음을 싫어하는 현대 시스템의 발달 덕분에 깨끗하게 신속하게 그녀는 세상에서 지워졌다.
미혼에 유가족은 부모님과 오빠 한 사람. 그렇게 그녀는 재가 되어 세상을 떠났다.
군에 있을 때 부사관 청년 한 명이 교통사고를 당해 이원장 동생처럼 하루 만에 세상에서 지워지고 그의 부대 지휘관에게 상담과 위로를 해 준 적이 있었다.
“생각해 보면 저 친구는 이제부터 영원히 없어진 거 아닙니까? 묘지도 없고 가족도 없고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존재 이걸 어떻게 이해하지요?”
지휘관은 그 자리에서 많이 울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는 종교를 가졌다.
나와 관계가 없다가도 알게 된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면 우리는 같은 상처를 입는다.
재난을 통해 사람들이 죽어 나갈 때 당사자 가족뿐 아니라 공동체에 속한 구성원들 모두 심각한 고통을 경험한다. 죽음의 파괴력은 직간접으로 "몸에 닿기만" 해도 그 효과는 어김없이 발휘된다.
그리고 오래간다. 오래가는 이유는 적절한 처방이 없고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생물학자 구디너프 Ursula Goodenough의
“자연의 신성한 깊이; 존재의 기원과 의미에 대한 명상적 에세이”에서 죽음이라는 메커니즘을 진화론적으로
표현한다.
“신체의 기관들은 생식세포의 전달을 책임지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죽게 되어 있다.
우리의 뇌도 따라서 우리의 정신과 나머지 체세포와 함께 죽게 되어 있다.
이때 우리 인간 존재의 핵심적인 아이러니 하나에 도달한다. 즉 지각력이 있는 우리의 뇌는 자기 죽음의 전망에 대한 깊은 실망과 슬픔 두려움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뇌의 존재는 바로 생식세포와 체세포를 분리하기로 결정하고 죽음을 발명했기 때문에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인간은 죽음을 발명했으나 죽임을 당하는 일에 대한 방어책은 역설적으로 준비되지 않았다.
따라서 외부로부터 가해진 자연스럽지 못한 공격, 질병, 전쟁, 테러, 사고, 자살 등으로 얻어진 죽음의 공격에
대해서 제대로 아물지 못하거나 정리되지 못한 채 상처를 안고 살 수밖에 없다.
문제는 상처의 크기와 흔적의 차이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