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Aftermath

by 강노아

태풍이 지나가면 미국의 방송은 Aftermath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한다.


“여파” “후유증” 등 다양한 번역이 가능한데 내가 이 단어를 선택한 것은 지나간 뒤에 우리 자신의 피해와 극복한 내용, 그 속에서 얻어진 단단한 자기 성찰이 그 안에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이별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아름다운 추억이 상실감으로 인해 잊히거나 간과되어서도 안될 것 같다. 생명 존재 란 어차피 현재에서 얻어진 기억들로 자신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2장. 슬픔


요즘은 영화를 보다 우는 일도 많아졌고 그렇다 보니 얼마 전엔 부산 개 시장을 철거하던 뉴스에서 구조되는 견공을 보다가 눈물을 흘렸다. 연민은 다른 사람의 처지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내게 연민이 증가한 것인지 거기에 더해 HSP (Highly Sensitive Person) 성향까지 가진 나는 세상을 보고 자주 운다.


나의 성향이 나에게 주목받으면서 우리 가족을 관찰하자 어머니에게도 그 모습을 발견했고 아들에게도 이것이 유전된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다가 내 일이 죽음을 당한 사람을 상대하다 보니 슬픔을 마주하는 방식은 더욱 섬세하고 진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물론 상담자가 연민으로 상대하면 내담자들의 입장에서는 타인의 일에 그토록 슬퍼해 주시니 감사한 일 일 것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슬픔에 몰입한다. 한 사람의 생명을 보내고 나면 탈진해서 며칠을 힘들어한다.


슬픔의 공감


미국 에모리 대학병원에서 호스피스 인턴을 하고 있을 때였다. 환자와 가족들을 위로하는 것이 말로 하는 것이라 이민 1세 교포인 나에게 그 일은 매우 부담스러웠다. 물론 학교에서도 영어로 에세이 쓰기와 토론을 하는 일 또한 노력하며 따라가야 하는 벅찬 일이었다. 당직 근무 때는 인턴 채플린이 모든 사망하는 환자와 가족들을 케어 Care 해야 한다. 당직은 비퍼 Beeper를 차고 병원에서 밤을 새웠다. 밤사이에는 보통 2~3명 정도 세상을 떠났다.


하루는 요란한 비퍼 Beeper 음을 듣고 병동으로 달려갔다. 사망환자는 30대의 청년이었고 내가 달려갔을 때 그의 죽음을 예상한 가족과 친구들은 이미 병실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배운 대로 한다면 나는 먼저 망자의 종교를 살피고 그 의식대로 가족과 친지들을 위로하고 돌보는 것인데 문득 불안이 몰려왔다. 가족 앞에서 의식을 해야 하는데 내 영어실력이 저 많은 젊은 이들 앞에 수준 낮게 보이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었다.


바로 그 순간 신께서는 내 머리에 비상한 생각을 넣어주었다.


“여러분, 이 병실에서 모두 나가 주십시오”


나는 사망한 청년의 부모와 직계가족만 남고 모두 병실에서 나가 줄 것을 요구했다.


“지금은 이분들이 잠시 조용한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모두가 나가고 평소 때처럼 병실에는 부모와 망자, 그의 여동생만이 남았다.

나는 그들에게 시편 23편을 낭독하고 조용히 기도해 주었다. 그리고 죽은 자의 손을 잡았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까지 병원에서 한 번도 죽은 자를 만져본 적이 없었다.


몇 분이 흐르자 가족들이 나지막하고 은밀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나도 그들의 슬픔을 공감하기 시작했다. 한 손으로는 망자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가족들의 손을 잡았다. 그 고요한 상태는 완벽에 가까운 침묵의 자유 함이라 할까, 망자와의 소통이라 할까 오묘한 공감이 몸안에 찾아 들어왔다.


작은 흐느낌과 정적을 멈추고 마음이 진정될 무렵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망자에게 90도로 인사를 했다.

(이것은 학교에서 가르쳐준 것이 아니다) 그것이 신기했는지 망자의 가족들은 나에게 주목한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떠난 이를 배웅하며 인사를 드립니다. 아들이 부디 하나님의 품에 가신 것을 믿고 평화하시기 바랍니다”


위로를 마치고 돌아가는 순간 그의 어머니가 달려와 내 손을 꼭 잡았다.


“저는 Asian Chaplain을 처음 보는데, 오늘 무척 감격스럽고 위로가 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조용히 그녀를 안아 주었다.


미국에서 수업을 받는 동안 교수가 강조한 것은 죽음 앞의 사람들 에게 “신의 현존 God’s Presence” (신을 대신하여 그 앞에 신처럼 되어 주는 것)이 되라는 말이 가장 가슴에 와닿았다.


슬픔은 이처럼 사랑으로 태어나 신과 사람 그리고 이웃과 나를 연결하는 처음과 끝의 접촉점, 공감 언어다.


따라서 반려동물의 죽음을 경험했을 때 슬픔을 제한하거나 참으려 하거나 절제하려고 할 필요는 없다.

함께 슬퍼해 주는 것 만으로 소통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사고로 반려견을 보내기도 하지만 긴 시간 노견의 마지막을 돌보는 성숙한 애견인들도 세상에는 많이 있다. 그들이 노견의 임종까지 슬픔을 간직하고 유지하는 것은 어렵고 힘든 일이다. 이 경우에는 더 긴장된 정신 근력과 체력이 필요하다. 슬픔에 너무 집중해도 버티기 어렵다. 자연스럽게 슬픔이 내 안에 타고 들어와 움직이고 성숙해져 나가도록 두어야 한다.


미국의 심리치료 전문가 베타 템즈 박사는 ‘비탄 Grief’은 죽음에 대한 감정적 반응이라고 설명한다.

이 신호는 주위에 자신의 상태를 알려주는 일종의 경계경보인데 이러한 것은 대부분 혼자 있을 때 가장 많이 반응한다고 한다. 이처럼 슬픔은 또한 몸이 반응하는 자기 치료의 과정이며 자연스러운 경험이라 볼 수 있다.


반려견을 잃었을 때 우리는 전혀 상상하지 못한 일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은 사람의 죽음 같은 슬픔을 만나게 되는 사실이다. 나름 장수하고 세상을 떠난 부모의 죽음보다 반려견의 죽음이 더 슬픈 이상한 현실을 고백하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 게다가 반려견을 사고로 잃었다면 그 충격은 친구나 가족을 사고로 잃은 사람과 동일한 경험을 가지게 된다.


슬픔은 이처럼 사랑하는 존재가 무엇이든 간에 사랑하는 대상을 잃었을 때 느끼는 감정의 “자기 순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슬픔은 약간의 절제와 함께 나를 통과하도록 허용하는 것이 좋다.


이 슬픔의 과정은 굳이 엘리자베스 쿠블러 로스의 견해를 참고하지 않아도 충격과 혼란, 멍함, 격정적 마음, 눈물, 후회, 자책감, 원망, 포기, 받아들임, 상처, 회복, 정리의 순서를 보통 거친다. 그러나 충격과 격정적 마음 상태는 계속 반복하여 발생한다. 이렇게 몸안에서 정신적으로 진행하는 과정은 마치 감기 바이러스가 몸 안에 들어와 콧물 재채기로 시작하여 열이 나고 몸살이 나고 힘이 없어지는 과정과 유사하다.


이러한 외부적 증상은 거의 전부가 감기 바이러스에 반응하는 몸의 방어 저항이지 바이러스의 특징이 아니다. 바이러스를 이기기 위해 인간의 방어 시스템은 콧물과 재채기로 바이러스를 씻어내고 혈액 속에서 전투가 치열하게 진행된다.


감기는 쇠약해진 몸이 쉬면서 싸워 이기는 것이 가장 빠른 회복 방법이다. 자고 쉬며 영양과 비타민 물을 공급하면 좀 더 빠르게 회복할 수 있다. 슬픔도 마찬가지다. 몸안에서 다양한 증세를 유발한다. 그러나 슬픔이 절제된 자신의 건강한 정신과 영혼의 시스템 안에서 머물게 허용하고 기억을 남기고 떠나도록 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만약 누군가의 위로자가 되어 주길 원한다면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 사람 옆에 조용히 있어 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오래전에 과학자들이 태풍의 피해를 막기 위해 태풍이 발생하는 지점에 물리적인 힘을 가하여 태풍의 발생을 막아 보았다. 그런데 그 결과 피해는 없어졌지만 그 밖의 문제들이 더 많이 발생하였다. 태풍은 지나면서 상처를 주지만 자연은 스스로의 자정능력으로 생명의 조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식물들 중에는 화재로 인해 불 나기를 기다리는 식물들도 있다. 불타 없어지는 나무들 사이에 생긴 공간은 다른 식물에게 기회이며 그 기회를 틈타 화재로 인한 온도 상승이 일어나면 씨를 터트리는 생존전략을 가진 식물도 있다.


모든 만물은 날 때와 죽을 때 번성할 때와 멸망하는 순간이 교차한다. 이러한 원리 때문에 슬픔은 밝은 웃음과 기쁨을 제어하는 부정적 요소가 아니라 우리 인생에 필요하며 지나가게 해야 할 중요한 요소이다. 가눌 수 없는 슬픔의 눈물은 우리를 정화시키며 평소 생각하지 않았던 놀라운 생각의 고상한 자리에까지 다다를 수 있다. 슬퍼서 우는 경우와 감동을 받아서 우는 경우는 모양이 다르지만 마음의 속성은 같은 형태를 지닌다. 많이 웃고 많이 울라. 서로 공감하라.


인생은 인간끼리 냉혹한 사회적 제도의 규범 안에서 인생의 드라마를 쓰기에는 재료가 너무 부족하다.

반려동물로 인해 웃을 수 있고 그 들로 인해 또 울 수 있다면 분명 이 또한 축복의 일부일 것이다.


아쉬움과 후회의 순간


슬픔은 아쉬움과, 후회를 동반하고 등장한다.

어김없이 죽음의 시린 상처 뒤에는 사람이든 동물이든 함께 하면서 하지 못했던 생각들을 소환한다.


내 아버지는 평안도 사람이다.

아버지는 18세에 한국전쟁을 경험했다. 그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 가족들과 피난길에 오르며 할아버지를 잃어버렸다. 오랜 세월 생사를 모르고 지내다 아주 옛날 KBS가 주관하던 이산가족 찾기에 나와 피켓을 들고 앉아 계셨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보며 자랐다. 나의 아버지는 엄격하고 치열하게 살았다. 종교적이었고 경쟁적이었다. 아버지와 나는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 아버지가 출장을 떠나 집에 없는 것이 참 좋았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는 나이 60에 일찍 세상을 떠났다.


나는 그분의 죽음을 지키지 못했다.


당시 미국에서 영주권 수속 중이라 나가는 것은 자유이지만 들어오는 것은 보장 못한다는 당국자의 말 때문에 졸지에 불효자가 되었다. 영주권을 끝내고 귀국하여 아버지를 다시 본 것은 묘지에서였다. 아주 격정적인 모습으로 아버지를 다시 볼 줄 알았다. 무덤을 끓어 안고 오열하며 불효자의 뒤늦은 등장을 사죄하며 재회할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담담했다.


나에게 아버지는 엄격하고 무서운 사람, 대화가 없던 사람으로 기억된다. (아버지는 술을 안 드셨다)

당연히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와는 거리가 생겼다. 내가 성공적인 인생의 가도를 달릴수록 아버지는 나에게 더 고개를 숙였고 그 대접은 극진해졌다. 그러나 내가 미국행을 결정하고 부모님과 헤어졌을 때 아버지와 나 사이는 더 이상 관계의 의미를 갖지 못했다. 그것은 관계의 상처 때문이었다.


그 시대의 남자들은 전부 때리고 맞고 살았다. 학교에 가도 때리고 군대에 가도 때리고 심지어 어릴 때는 교회의 주일학교 선생님도 잘못을 하면 가르친다고 교회 창고 안에서 각목으로 위협하기도 했다.


그렇게 맞으며 자란 세대는 어김없이 또 때리고 살았다. (나도 아버지 같은 모습으로 아들을 대했다)

상처를 받고 상처를 주고 그렇게 세월이 더 흐르며 생명이 낡아 더 이상 상처를 주고받기가 어려운 순간

우리 모두는 불현듯 죽음을 맞이한다. 돌아가실 때 아버지가 그랬다.


“형, 아버지가 갑자기 응급실로 실려 갔어! “


동생의 다급한 심야 국제전화는 내 심장을 요동치게 하였다.


대학교수가 된 다 큰 동생이지만 미국의 형이 갑작스러운 아버지 위기에 등장해 주기를 원했을 것이다.

나는 급히 귀국을 수소문하였지만 어려운 현실을 만나야 했다. 60대 가장의 죽음은 가족들에게 갑작스러운 상처를 남겼다. 아버지와 사이가 소원했지만 나에게도 그 사건은 충격이었다.

미국에서 아버지 영정을 집안에 모시고 한국과 똑같이 삼일장을 지냈다.

지인들과 교인들이 찾아와 문상을 해주고 나는 상주가 되어 검정 양복을 입고 사흘 동안 울었다.


그 눈물의 의미는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정정당당하게 링 위에서 나랑 겨루어야지 왜 죽어?”


언젠가 때가 되면 어릴 때 아버지의 부당한 폭력이 상처가 되었음을 고백하고 화해를 마음에 품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다툴 상대가 사라진 것이다. 그때 처음으로 아버지의 인생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사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까?


18세의 어린 나이에 피난을 내려와 가족들을 부양하고 국군에 입대하고 전쟁에 뛰어들어 육군 장교가 되고 직업군인으로 살면서 우리 가족의 가장으로 버텨 내기가……


어머니와 찾은 아버지 묘소에서 어머니는 따뜻한 물을 준비해 아버지 묘지 발쪽 부분에 물을 부었다.


“옛날에는 겨울에 추워서 유단포에 온수를 넣어서 안고 잤지, 너도 기억나지?”


“그때 아버지는 항상 발이 춥다고 하며 발에 유단포를 대고 주무셨어, 그때 하나 더 사서 그걸 발에 대줄 걸, 못했지 뭐냐, 그게 자꾸 생각이 난다.”


어머니는 이제 죽어서 라도 따뜻한 발을 누리시라고 뜨거운 물을 그렇게 아버지 발에 부어주고 계셨다.


어머니의 아쉬움과 후회는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자책이 공존하는 상태로 망각이 올 때까지 그래야 했다. 나는 화해하지 못하고 보내드린 후회와 혼자 아버지를 지킨 동생에 대한 죄책감으로

오랜 시간 혼자 고통받았다. 아쉬움 이란 이처럼 슬픔의 틈 사이에 스며들어 슬픔의 지속적인 동력을 제공한다. 지나간 시간들을 떠올리게 하여 “그때 이렇게 할 걸”을 생각하게 한다.


아쉬움과 후회의 장을 지나면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으로 진입한다. 슬픔의 이성적 속성이라 할까, 이 단계에 이르면 지나간 일에서 얻은 교훈들이 자신을 한 단계 높은 곳으로 끌어올려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게 만들어 준다.


돌아봄


덴마크 심리학자 스벤 브링크만 은 그의 저서 “Stand Firm”에서 “지난날을 돌아보는 존재로 살아가기”를 권한다. 그에게는 고속화된 문화의 현재와 미래에 몰두하는 집착이 달갑게 여겨지지 않는 모양이다.

사실 제목처럼 그의 주된 관심은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휘말리지 말고 자기 것으로 굳게 서라는 말을 하고 있다.


“이처럼 현재를 추종하는 사람들에게 조금 짓궂은 질문을 던지고 싶다면 누가 지금 여기에 가장 현존하는지 물어보라. 물론 대답은 인간이 아닌 동물 들이다. 동물들은 과거를 회상하거나 과거세대가 습득한 지식을 새세대로 전달할 인지능력을 무겁게 짊어지지 않는다. 인간이 아닌 동물들은 (아기들도) 현재에 산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현재 순간을 뛰어넘어 고유한 방식으로 과거를 사용하는 점이다.”


어떤 형태의 죽음이던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 아쉬움과 미련, 후회들을 충분히 내게서 통과시키면 성찰-돌아봄-으로 다가서게 된다. 이 과거를 돌아봄이 바로 ‘내적 자라남”이다.

과거에서 얻어진 성찰은 또다시 현재와 미래의 후회 없는 삶을 위한 자신만의 이정표가 되기에 소중한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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