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Aftermath

by 강노아

4장. 성장


성장의 이유


데이비드 브룩스는 “인간의 품격 The road to character”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한다.


“최근 나는 이력서에 들어갈 덕목과 조문弔文에 들어갈 덕목에 어떤 차이가 있을지 줄 곳 생각해 왔다.

이력서 덕목은 일자리를 구하고 외적인 성공을 이루는데 필요한 기술들을 말한다.

조문 덕목은 그보다 더 깊은 의미를 지닌다. 장례식장에 찾아온 조문객들이 고인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오는 덕목들로, 한 존재의 가장 중심을 이루는 성격 들이다.

그이가 용감하고, 정직하고, 신의가 두터운 사람이었는지, 어떤 인간관계를 이루고 살아간 사람이었는지 하는 것 들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문 덕목이 이력서 덕목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할 것이다….


현재의 교육 체재도 조문 덕목보다 이력서 덕목 위주로 만들어져 있다….

우리 대부분은 깊이 있는 인격을 기르는 방법보다 성공적인 커리어를 성취하는 방법에 대해 더 분명한 전략을 갖고 있다….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욕망부터 정복해야 한다. 성공은 가장 큰 실패, 즉 자만으로 이어진다. 실패는 가장 큰 성공, 즉 겸손과 배움으로 이어진다. 자아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잊어야 한다.

자신을 찾기 위해서는 자신을 잃어야 한다.”


반려견의 죽음을 겪고 우리가 마지막으로 생각해 볼 영역은 성장의 부분이다.


"사랑하는 자의 죽음과 성장이 무슨 관계가 되지?" 하고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성장은 우리가 가장 낮은 자리에 있을 때 가장 효과적으로 이루어진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리는 사랑하는 것을 잃은 뒤에 오는 상실의 자리이다.

크게 보면 고통의 순간을 통과할 때나 고난의 여정을 마감할 때 주로 발생한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문지방에 아이들 키를 재서 표시를 해놓던 추억들이 있다.

나무의 나이테처럼 성장은 삶이 모질수록 빠르게 확장한다.


그렇다면 성장이 인생에 꼭 필요한 것인가 하는 질문이 들겠지만 대답은


“그렇다 반드시 필요하다”


독자들이 다 아시겠지만 양식 진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참 잔혹하기 그지없다.


핵을 삽입한 후 한 알의 진주가 탄생되기까지는 적어도 2~3년이 걸린다. 이물질이 몸에 들어오면 조개는 이것을 빼낼 수 없으니까 아픔을 덜기 위해 진주층을 조성하는 분비물을 내어 그것을 덮고 또 덮는다. 이렇게 긴 세월을 거치는 동안 진주조개의 절반은 태풍이나 적조, 급격한 온도 변화 등에 의해 죽고, 역경을 이기고 살아남은 진주조개 중에서도 양질의 진주가 나올 확률은 불과 28% 밖에 되지 않는다. 생명체가 탄생시킨 보석 진주는 그래서 고통의 산물이며 양식 진주는 인간이 인위적으로 가한 고통을 살아남은 결정체인 것이다.


인간이란 생명이 성장해야 하는 이유는 인간으로 살아온 "존재의 무게와 깊이"가 완성되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딱 한 번만 산다.


생명체로 모인 몸에(세포가 그릇에 담기듯), 눈이 달려 우주를 바라보고, 귀가 달려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와 음악을 들으며, 미각으로 맛을 느끼고, 멋진 냄새를 맡을 수 있으며, 뇌는 계속하여 “너는 누구냐”라고 묻고, 삶을 탐구하는 인간, 너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조화를 가진 생명체, 신이 그의 형상이라 하며 신의 경지에 이른 존재다. 우리가 우리를 신의 수준으로 끌어올려 한번만 살아봐야 한다.


(이 대목에서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이 있었다. 미국에서 내 회계업무를 도와주던 철학을 전공한 회계사 가

인간을 “원숭이 보다 좀 낫고 신보다 한참 모자란 애매한 존재”로 둘이 설전하며 마지막엔 항상 웃곤 했다)


자신의 존재 이유를 묻는 독특하고 궁금한 피조물이 우리이기 때문이다.


생명 세포들이 “나”라는 조개에 담겨 적게는 60년 길게는 90년을 살아남아 진주처럼 몸 안에 들어온 세상사를 다 견디고 이겨낸 자들이 얻는 어떤 결과물이 필요하다.


그 결과는 죽음을 당하며 스스로가 잘 안다. 내 삶이 잘 자라나 마지막을 준비했는지…

마지막은 그것이 영혼이든 정신이든 어떤 결정체로 존재한다.


인생은 전쟁터가 아니다.


한국사회는 인생을 전쟁터로 만들어 우리를 훈련시켰다. 적자생존으로 싸움터에서 살아남는 법과 노력을 통해 최종 승자가 되기 위한 비결은 윤리나 도덕 따위는 필요치 않은 기형아들로 만들어 버렸다.

잘 노는 법도 행복하게 지내는 법도 즐겁게 사는 법도 배우지 못했다.

이것은 사는 게 아니다.

다시 단순한 적자생존의 동물 이하로 전락한 사각 유리에 가두어진 것이다.


여기서 나와야 한다.


혹시 아시는가?

사회의 매스 미디어를 장악한 소수가 우리를 그들의 수준으로 지휘하는 것을,

미안 하지만 세상은 정말 다양하며 크고 우리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래서 세계여행을 하는 거다. 나는 앞으로 기회가 되면 둘러보는 여행 말고 살아보는 여행을 구상하고 있다. 어떤 지역에서 일정한 기간을 살면서 그들을 목도하고 싶다. 이미 많이들 시작했지만.)


당연히 인생 전쟁을 마치고 쓸모가 없어지고 할 것이 없다.

싸워 이기는 것 말고 아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장은 중요하다.

성장은 갇혀있으나 타자가 방해하지 못하는 나만의 다른 세계다.

성장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닫는 일이다.

스스로 깨닫기 위해서는 타인의 것이 재료로 필요하다. 그래서 읽고 쓰고 돌아보는 것이다.


영어를 잘하려면 먼저 듣고 읽어야 한다. 그다음 말하고 쓰게 된다.

이처럼 성장의 기본이 완성되면 비로소 자기 생각과 정리가 이루어지고 자기 삶을 살게 된다.


삶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 가운데 생명과 연결된 사건에는 내가 성숙해질 재료들로 충만하다.


나는 채소를 씻을 때 정말 신경을 써서 작은 조각 하나라도 수채에 그냥 흘려버리지 않도록 노력하는 편이다. 그 이유는 식물들이 세상에 한번 태어나 형태를 갖춘 존재로 살아왔는데 쓰레기통에 버려진다면 그것이야

말로 쓰레기 같은 생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다른 생명체에 들어가거나 흙에 남겨져 자신의 원소가 생명의 순환에 유익한 재료가 되는 것이 소중하다.

그래서 냉장고에서 썩어져 나가는 오래된 식재료 관리에 예민한 편이다. 생명의 순환을 눈여겨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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