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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유 Ayu Apr 07. 2024

월경과 창조성

여자라는 전 세계 절반의 인구는 한 달에 한 번씩 월경을 한다. 여자의 생식기관은 한 달마다 난소를 배출하고, 임신을 위한 영양분을 자궁에 축적하는데 임신 가능성이 없을 때 축적한 영양분을 몸 밖으로 배출하는 것이 월경이다.


월경을 하기 전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다만) 우리는 알게 모르게 많은 증상들을 겪는다. 묵직한 배, 넘치는 식욕, 넘실대는 감정 기복, 사라지는 의욕…


10대 중반 생리를 시작하고, 이런 몸의 변화와 생리라는 개념을 자연스레 부끄러워하게 되었다. 학교에서도 친구들은 생리를 언급하는 걸 몹시 금기시했고, 생리대를 공유하는 것도 남자애들 몰래 해야 하는 것처럼 행동했기 때문이다.


공개적으로 알리지도 못하면서 이렇게 아프고 귀찮은 생리를 평생 해야 한다니… 조금 억울했던 나는 은밀하게 나만의 규칙을 세웠다.


바로 생리 보이콧!!!!


나는 생리가 시작하면 3일 동안 모든 일정을 최소화하고 하고 싶은 것들로 채우기 시작했다. 달고 짜고 기름진 음식도 원하는 대로 마음껏 먹고, 열심히 달리던 일상도 멈추고 누워서 드라마를 보는 시간들로 말이다.

친구들의 만나자는 제안도 생리 보이콧 중이니 좀만 기다리라 말하며 혼자만의 휴식을 온전히 즐기던 나만의 월경 의식은 아쉬탕가요가를 하면서 더 견고해졌다.


마이솔스타일 아쉬탕가요가는 주 6회 매일 아침 본인의 진도까지 수련하며 헌신과 열성을 수련을 기본자세로 삼지만, 만월과 신월이 뜨는 moonday와 (여성수련자의 경우) 생리 초반 3일은 공식적으로 휴식을 취해야 한다. 레이디스홀리데이Lady’s holiday라고 불리는 생리 초반 3일의 아쉬탕가수련 휴식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은밀하게 진행되던 나의 생리 보이콧이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기분이 들어 조금 짜릿했던 기억이 난다.



발리 여행을 할 때 나는 주로 우붓이라는 지역에 지내며 요가 수련을 했는데, 그토록 우붓이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특유의 여성 에너지가 있어서였다.


우붓에는 ①혼자 여행하는 다국적 여자 여행자가 많았고, ② 지루해서 싫다고 우붓을 떠나는 남자들이 많은 반면 우붓에 남아있는 남자들은 순한 성향의 사람들이었다. ③우붓에서 만나는 사람들과는 쟁취, 성공, 경쟁보다 포용, 이해, 공감의 언어로 소통을 했고, ④요가, 명상, 음악, 춤 등의 창의활동을 제공하는 요가원을 많이 보았다.


발리의 요가원에서 많이 들었던 단어 중 하나라면 마더네이쳐Mother nature라는 단어였는데, 음양의 구분처럼 하늘, 양의 에너지, 남성 그리고 땅, 음의 에너지, 여성으로 나누는 개념을 기반으로 유추해 보았는데, 모든 식물과 자연을 자라게 해주는 땅, 그 땅을 대자연의 엄마라고 칭하고 감사를 표하던 고대 안데스문명의 샤머니즘에서 비롯된 문화임을 알게 되었다. 안데스문명의 지역 남미에서는 이런 대자연의 어머니지구파차마마Pachamama라 칭하며 하나의 여신으로 여긴다.


사진출처: https://pin.it/1xqdRTAYL

파차마마 - 대지의 어머니, 엄마지구라는 의미를 곱씹다 보면 생명을 주는 원천, 모성애, 창조의 에너지를 떠올리게 된다.


사진출처: https://pin.it/1qheaaOax

이번 생리주기에 Moonday라는 생리대를 쓰려다 문득 여성의 월경주기달의 주기의 연관성을 떠올려보았다. 달이 엄마지구의 주변을 돌며 달의 모습이 달라져 주기가 생기는 것처럼, 여성들도 월경을 통해 여성이라는 성별에게만 주어진 능력 - 임신과 출산, 창조성, 모성애 -를 실감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앞으로도 생리 초반 3일 온전한 휴식을 사수하는 생리 보이콧은 계속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의미를 부끄러워서, 힘들어서, 아파서라는 이유보단 나에게 주어진 창조적 에너지를 실감하고 충전하는 시간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내가 말하는 창조적 에너지란 임신과 출산이 아니더라도, 나의 생각, 말, 행동, 글처럼 나로부터 나오는 지구와의 상호작용에 관한 모든 창조성을 말한다.


발리의 요가원에서 카카오 세리머니라는 액티비티에 참여한 적이 있다. 남미에서 유래한 파차마마라 여신을 섬기는 샤머니즘 의식으로 수확한 작물을 제물로 올리고 카카오 음료를 마시는 의식이었는데, 3시간 동안 의식을 진행하며 지구 위 생명에 대한 감사함, 어머니지구에 대한 찬사를 아낌없이 보냈었다.


이번 생리 기간엔 유독 아이스초코가 당겨서 초코 음료를 마시러 왔다가 문득 난 이제 생리 보이콧과 더불어 나만의 카카오 세리머니까지 만드는 것 같아 웃음이 난다. 내가 여성이기에 느낄 수 있는 타고난 창조성, 모성애같이 조건 없는 사랑, 우주와 연결될 때 느끼는 직관에 감사하며 아이스초코를 마신다.  

¡¡¡ VIVA, PACHAM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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