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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지 Mar 29. 2024

새끼발톱에서 피가 났다.

좀 안 풀리는 날


으악!!!!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고 있었는데

두찌가 쪼르르 달려오더니

학습지에서 모르는 게 있다면서

종이를 흔들어대다가


물이 흥건한 화장실 바닥에

학습지를 휘리릭 떨어뜨리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또 희한하게

그 얇은 종이 몇 장으로 된 학습지가

교묘하게 떡하니 세로로 서있게 떨어졌다.

오- 럭키!!

저걸 얼른 주워서 안 적셔지게 하겠다!라는 맘에


손을 반사적으로 뻗었는데


아뿔싸.


바닥에 물이 흥건한데

원장 타일로 된 바닥은 미끄러웠고

순간적으로 내 55kg 육신이 붕 떴다가

단단한 바닥에 철퍼덕 떨어졌다.




아 이렇게 죽는 거구나.

소위 디진다는말이 이거구나.


엉덩이 위쪽 허리뼈가 욱신거리고

분명 위를 보고 넘어졌는데

명치 쪽이 갑갑하게 숨이 안 쉬어진다.


나도 모르게 슬픈 일도 없는데

흐느껴 우느라 호흡이 가쁘다.


눈앞에서 엄마의 공중낙방을 구경한 두찌와

으악 철푸덕 소리를 들은 첫찌가 눈이 왕방울만 해져서

엄마 괜찮아?! 엄마!! 엄마!!

야단법석이다.




다행히 좀 지나니 근육들은 놀랐지만

어디 부러진 곳은 없는 것 같아서

또 부지런히 애들 둘 숙제를 봐주고 잘 준비를 했다.


겨우 두찌를 먼저 재우고는

살금살금 나와서 이제 첫째를

재우려고 불을 끄고 침대로 걸어가는데,


두 번째

으악!!!!!!!!




새끼발톱이 너무 아파서 불을 다시 켜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새끼발톱이 교묘하게 침대 모서리에 부딪혀서

발톱이 들려 발톱 안쪽에서 피가 철철 나고 있었다.


어이가 없고 속이 상하고 발톱은 아프고…


갑자기 친구 만나 한잔하고 들어와서는

혼자 침대 속에 쏙 들어가 누워있는 남편이 갑자기

너무 밉다.


아들이 남편을 불러오니 그제야

반창고를 하나 발톱에 감아주는데

별로 달갑지도 않다.




엄마 미안해.


아니 대관절 이건 또 무슨 예상치 못한 대답이람.

나의 나쁜 일진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큰아들이

갑자기 자기가 미안하다고 한다.


- 너가 뭐가 미안해! 너탓이 하나도 없는데!

- 그냥~ 나 재워주려다 그런거 같아서..


내 일진이 사나워서 여기저기 다치고

그래서 내 성질을 부륵부륵 냈는데

괜스레 옆에 있던 어린 영혼들을

미안하게 했나 보다.

애들은 다 자기 탓이라고 생각한다더니..


내 일진 사납다고

아무 잘못 없는 아들이 미안해서는 안될 일이니

너 잘못 없지! 너는 미안할 게 없어!

그냥 엄마가 쫌 재수 없는 날이네!

큰소리로 외치고


가슴이 터질 듯이 꽉 안고 재운다.

그리고

괜스레 미워했던 남의 아들도 흘끗

짠하게 잠든 얼굴을 한번 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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