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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지 Apr 03. 2024

서더리탕을 뜨다가 손을 데었다.

순간적으로 뿌리치지 못한 뜨거움


어제 오랜만에 저녁에 술자리가 있었다. 사내변호사회에서 연결해 준 멘토 멘티가 함께 만나서 소소하게 저녁을 먹는 자리였다.


원래 해산물을 좋아하는데, 운 좋게도 만났던 세 사람 모두 회를 좋아해서 광화문에서 회를 파는 포장마차 분위기에서 모임을 가질 수 있었다.


처음 만난 세 사람이었지만, 모두 다 같은 업계에서 일을 하고 멘토 멘티 자리라는 열린 마음으로 만나서 그런지 어색할 찰나가 없이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서로 변호사가 되기까지의 과정, 배우자가 있는 사람은 배우자를 만나게 된 과정, 또 우연히 겹치는 지인들 등 이 이야기 저 이야기하다 보니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또 회사에서 마음 끓인 이야기를 막상 회사 동료들에게 하기는 어려웠지만, 또 남편이나 친구에게 이야기하자니 세부 디테일을 다 설명하기 어려워 포기했던 그런 이야기들을, 비슷한 입장의 다른 회사 사내변호사인 사람들에게 하기가 수월했다. 게다가 공감을 주고받기도 쉬웠다. 참 처음 만난 사람들이지만 희한하게도 좋은 자리가 무르익고 있었다.





참돔회와 모둠 해산물을 다 먹고는 마지막으로 서더리탕이 나왔다. 포장마차 분위기의 횟집이라 개인별로 주는 그릇도 작은 스탠으로 된 그릇이었다. 그 그릇에 무심코 국자로 서더리탕을 뜨는데, 아익쿠 너무나 뜨거웠다. 음식의 뜨거운 열을 그대로 전달하는 그 얇은 스탠그릇은 사실상 그릇으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래도 침착하게 그 그릇의 가장자리를 살짝 손으로 잡고 음식을 덜어냈다.


문제는 그 다음번 그릇이었다.


그릇이 뜨거운 것을 알고 나름대로 조심조심 매운탕 한 그릇을 퍼담았는데, 펄펄 끓던 매운탕의 건더기가! 파였는지 팽이버섯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뜨거운 것이  실수로 내 왼쪽 엄지손가락 손톱밑에 척하니 붙어버린 것이 아닌가.


정말 내적 비명을 윽 하고 질렀다.


정말 너무나 뜨거웠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내가 쥐고 있던 그 뜨거운 그릇을 순간적으로 놓칠 수도 없었다. 아니, 내가 놓으면 안 된다고 판단을 채 하지도 않았지만 내 손은 자동적으로 얼음 모드로 그 뜨거운 건더기를 손가락에 올려둔 채 몇 초가 흘렀다.


자연스럽게 그 매운탕 그릇을 앞사람에 잘 건네주고 얼굴에서도 아픈 기색을 감췄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화장실에 잠시 다녀오겠다고 하고는 화장실에 가서 찬물에 손가락을 한참 담가두었다.




손가락, 정확히는 엄지손톱 뿌리가 있는 부분 마디

위쪽이 정말 쿡쿡 송곳으로 찌르듯이 아파왔다. 찬물에 담그면 그때는 잠시 시원하게 괜찮아졌지만 찬물만 벗어나면 바로 또 고통이 찾아왔다. 이대로 그냥은 더 이상 있을 수 없겠다 싶었다. 그래서 휴지를 한 칸 떼서 찬물을 적셔서 엄지에 둘둘 감았다. 그나마 좀 나았다.


그렇게 임시방편으로 조치를 취해두고 화장실을 나섰다. 그런데 처음 만났던 사람들끼리 으레 주고받을 수 있는 소재를 다 다뤄서 그런 건지 왜인지 더 이상 크게 할 말이 없어진 기분이었다. 아마도 손가락이 쿡쿡 쑤셔오니 그렇게 시원하고 달던 쏘맥도 맛이 없는 걸로 느껴졌던 걸까.


9시가 다 되어가서 이만 파하기로 하고 정중한 인사를 건네고 다음에 또 자리를 마련하자며 웃는 얼굴로 헤어졌다. 다음에 또 뵐게요!




집에 오는 버스에 앉아서 나는 내내 궁금해진다. 혼자 집에서 라면을 먹다가 뜨거운 면발을 손에 흘렸더라면 후딱 으악! 소리를 지르며 면발을 당장 본능적으로 내던져서 내 손가락은 훨씬 덜 상처를 입었을 텐데. 여러 사람이 있고, 또 사회적으로 서로 명함을 주고받은 인간관계라고 손가락이 뜨겁다는 본능을, 뇌가, 인식이, 이겨버린 걸까. 희한했다.


사실 평소 성격이 타인을 크게 의식하는 편도 아니다. 그런데도 내 몸은 먼저 잘도 의식하나 보다.


뜨거운 걸 내던져서 여러 사람이 다치치 않았길 바란 거였으면 으악! 소리는 냈어도 되는데. 소리도 안 나온 걸 보면 그냥 내 일신상 사유로 이 흐름을 끊지 않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건가.


그 누구에게건 나 스스로에게 당당하다면 거리낌 없이 매사에 당당하게 솔직하게 살아온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본능적으로 누울 자리 봐가면서 발을 뻗고 살아온 거였을까?


참 궁금하다.


아니, 본능이 머리에 앞서 상황파악을 해주는 것이었다면 내 본능에 감사할 일인 건가?


마흔이 다 되어가도 나는 나를 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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