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에 절여진 인스타그램 물을 빼고 싶다
요즘 나의 머리가 인스타그램에 절여진 것 같다. 잠시 시간이 날 때 무심코 클릭 한번 했을 뿐인데 정신을 차려보면 끝도 없이 짧은 동영상인 릴스를 엄지로 계속 스크롤하며 보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이 몇 시간이 흘러가고 나면 자괴감이 몰려온다. 그렇게 보고 싶었던 콘텐츠도 아니었는데 내 인생의 소중한 몇 시간을 이렇게 또 날려 버리다니. 이대로 계속 살다가는 의미 없는 껍데기로 죽을 것이 분명했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 달라지려면 디지털 디톡스가 필요하다. 뇌에 절여진 인스타그램 습관을 없애고 싶어서 내일 아침부터는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어 보았다. 그래서 나는 인스타그램 없는 하루를 살아보기로 한다. 과연, 가능할까?
하루를 시작하는 건 핸드폰 알람 소리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내 손바닥 안에 유혹의 SNS가 들어와 있다. 오히려 바쁜 아침이면 정신이 없어서 SNS를 켜볼 여력이 없지만, 초등학생 아들이 새벽 7:30까지 농구 연습을 가는 날이면 아침을 준비하기 위해 새벽 6:50부터 일어나서 여유 시간이 있다. 그 말인 즉 슨 위험하다는 것이다. 나는 무의식 적으로 휴대폰으로 알람을 끄고, 1초 만에 방금 쓴 그 엄지손가락으로 인스타그램 앱을 습관적으로 열……뻔했다! 왜냐하면 나는 도파민의 노예이기 때문이다. 노예도 보통 노예가 아니고 ‘대왕노예’다. 후후 그래도 나의 의식이 이번에는 다행히 잘 참아냈다. 핸드폰을 뿌리치고 부엌으로 나가본다.
아 그런데 여기서 또 바로 2차 인스타그램 유혹이 치고 들어온다. 아들 아침으로 오픈 샌드위치 주문을 받았어서 그 요리를 하려고 하는데 아뿔싸 내가 저장해 둔 ‘맛있어서 기절하는 아보카도 수란 오픈샌드위치 레시피’ 동영상에 접근하려면 또 인스타그램을 열어야 한다. 잠시 망설인다. 아우 이 정도 레시피! 어려운 것도 아니고 핸드폰을 뿌리치기 위해 대충 감으로 해본다. 베테랑 요리사 이 정도는 껌이라며 그럴싸하게 차려진다.
새벽부터 아들을 위해 정성스러운 아침을 준비해 준 나의 이런 노력! 아름답게 차려진 아침상! 이걸 보고 느끼는 순간 바로 3차로 인스타그램이 (요즘 유행하는 말로 표현하자면) 마렵다. 일단 빨리 멋진 사진을 핸드폰으로 찍고 싶다. 먹음직스러운 수란 부분을 가장 가까이 잡고, 인스타그램은 가로사진은 취급하지 않으니 무조건 세로 사진으로, 새로 산 아이폰의 기능을 이용해 뒷 배경은 흐리게 날림 처리 한 그 사진을 너무 찍고 싶다. 당장 인스타그램에 올리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든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싶을 ‘수’ 있으니 작업을 위한 재료를 내 폰 속에 쟁여 두고 싶다. 그러나 오늘만은 내 디지털 디톡스를 위해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도 눌러 둔다. 사실, 언제 쓸지 모르는 자료를 모은다며 저장해 둔 사진만 몇 기가바이트 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자기만족적 포스팅을 위한 약간의 자아도취도 좀 눌러 둔다.
아직 오전 9시가 채 되지도 않았는데 거의 매 순간순간을 인스타그램을 누르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회사를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도, 출근해서 잠시 화장실을 간 순간에도, 점심에 맛있는 음식점을 찾아보려고 할 때도, 점심을 먹다가도 그거 봤냐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려고 할 때에도. 그리고는 이내 다시 그 분홍색 보라색 앱을 누르고 싶지 않아 진다. 나의 뇌는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우연히 집어 들게 된 안데르스 한센이라는 저자가 쓴 ‘인스타 브레인’이라는 책에서 그나마 조금 납득할만한 설명을 해준다. 인류의 압도적인 다수가 수렵 채집인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인간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새로운 정보를 수집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주변 환경에 대한 정보 수집과 새로운 것에 대한 학습, 낯선 것에 대한 강력한 욕구가 천적을 피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식량 확보 및 새로운 터전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해주었기 때문에, 이로 인해 인류의 DNA 속에 새로운 것 = 유용한 것이라는 공식이 새겨졌고 이에 새로운 것을 대할 때 뇌가 도파민을 분비하여, 계속적으로 새로움을 더 원한다는 것이다. 이런 본능의 영향으로 지금의 현대인들에게는 새로운 페이지, 그다음 릴스, 그다음 동영상을 갈구하며 새로운 정보를 입수하는 방식으로 보상 시스템이 활성화된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새로운 릴스와 쇼츠를 보고 있게 되는 것이다.
정말 납득할만한 설명이다. 본능이 우리를 새로운 정보의 천국인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로 인도하니 그걸 쉽게 뿌리치기가 너무 어렵다. 뇌에는 해로운 이것을 뇌가 원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서 인스타그램을 켜지 않는 것은 더 어렵다. 차라리 재미있는 책을 읽기 시작해서 거기 몰입해 들어가면 그때는 인스타그램 생각이 전혀 나지 않는다. 달리기나 수영 같은 운동을 할 때에도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볼 수 없으니 SNS를 안 할 수 있다. 나는 최근에 해외를 다녀올 일이 있었는데, 비행기를 타서 휴대폰을 비행기모드로 전환을 하고 소설을 펼치니 소설에 빨려 들어가듯 들어가서 핸드폰은 쳐다보지도 않을 수 있었다. (파친코 소설 아직 혹시 안 보신 분 있으시다면 정말 강력 추천한다. 너무 재미있다.) 뇌를 대할 때 아기를 다루듯이 좋아하는 걸 휙 빼앗아버릴 일이 아니라 살살 달래듯이 몸에 안 좋은 거 말고, 비슷하게 재미있는데 몸에 좋은 거 주듯 해서 개선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인 것 같다.
인스타그램을 효과적으로 끊었다고! 인스타그램에 자랑하고 싶다. 그런데 사실 인스타그램을 가장 효과적인 도구로 활용하는 사람들은 그런 것은 자랑하지 않는다. 인스타그램 고수들인 소위 인플루언서들은 SNS를 소비하는 대신 역소비 즉 생산을 하여, 도파민을 갈구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하거나 재미있는 정보를 주거나 아니면 꿈과 희망을 남겨주며 팔로워 수를 늘려 적지 않은 cash flow까지도 창출한다. 1,000명에서 50,000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인플루언서만 해도 연간 $40,000에서 $100,000을 번다는 사실을 뇌에게 우선 알려주자. 그럼 뇌는 고민할 수도 있다. 새로운 정보를 위해 엄지를 클릭 클릭 하려다가 아… 누구는 지금 내가 이거 클릭할 동안 이걸로 1억씩 버는데… 장기적인 도파민을 위해 내가 이걸 클릭해서 시간을 낭비하는 게 맞나… 잠시 고민할 여지를 만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우선은 성공이다. 초등학생 되고 싶은 직업 1위가 유튜버인 시대를 살면서 SNS를 안 볼 수야 없겠지만 생각 없이 계속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 도파민에 콸콸 취해버릴지 언정 내가 중독이네!!라고 적어도 인지는 하고 스크롤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