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 한 척하지 말고 살자
회사에서 정신없이 일하고 있는데 '00 초등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우리 아들 둘이 다니고 있는 초등학교가 발신번호로 뜨면 순간적으로 마음이 쿵 하고 걱정부터 된다.
어디 다쳤을까, 무슨 큰일이 있을까.
다른 전화는 다 잠시 미루고 일할 수 있지만 학교에서 오는 전화만큼은 부리나케 받으러 나간다.
'여보세요?'
'뉴뉴어머니, 뉴뉴 담임입니다.
잠시 통화 괜찮으실까요?'
당연히 괜찮다고 말씀드리고 다음 말씀을 기다려본다.
"학교에서 체육시간이었는데요, 철수(가명)라는 아이가 어떤 여자 아이에게 본인이 떨어뜨린 마스크를 주워달라고 시켰는데, 뉴뉴가 철수한테 왜 네가 하지 그 여자 아이에게 시키냐고 하니까 철수가 순간적으로 뉴뉴빰을 손으로 때린 일이 있었습니다. 다른 몸도 아니고.... 얼굴을 손으로 때린 상황이라 사안이 보통은 아닌 걸로 판단되어서 어머니께 전화드렸고, 철수에게는 제가 절대 그런 행동을 하면 안 된다고 엄하게 일러두었습니다. 철수어머니께도 전화를 드려봤는데 전화를 안 받으시더라고요~ 철수어머니께 사과 전화 드리라고 전할까요?"
어안이 벙벙했다.
나의 사랑하고 사랑하는,
보기만 해도 아까운 여리여리한 두찌를 대체 어떤 놈이 손으로 뺨을 때렸다는 것인가.
속이 쓰라린 기분이 점점 들어오는데 그에 반해 내 입은 잠시 기다렸다가
"아... 선생님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들에게는 잘 말씀해 주셨다는 거죠.. 잘 지도해 주셨으면 따로 저한테 철수 어머니가 사과전화는 안 하셔도 될 거 같아요. 잘 살펴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약 2초 만에 내 속상한 마음보다 의식 있어 보이고 싶고, 마음 넓은 엄마로 선생님이나 상대방 엄마에게 보이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는 판단이 내려진 건지 저렇게 후다닥 말해버리고 선생님과의 통화를 끝냈다.
선생님과 통화를 끊고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난다.
핸드폰만 계속 들여다본다.
이상하게 기분이 점점 가라앉는다.
속이 점점 더 상한다.
친구들에게 카톡을 보내본다.
"얘들아, 뉴뉴가 학교에서 뺨 맞았다는데, 선생님이 그 엄마한테 사과전화하라고 할까 물어보길래 그냥 됐다고 했거든? 그런데 막상 아무 연락이 없으니까 너무 기분이 구려..."
너가 괜찮다 했으니까 연락이 없는 거 아니냐고 친구가 반문한다. 맞다. 내가 괜찮다 생각했는데 막상 우리 아들 뺨 때린 아이의 엄마에게서 정말 막상 아무 연락도 없으니까 점점 속이 뒤집어진다.
나라는 인간. 선생님한테 쿨 해 보이고 싶어서 성급하게 사과도 거절한 인간. 바보 같은 인간.
후회가 몰려온다.
그런데 쿨 해 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긴 했지만 나는 평소에 '사과하세요!'라는 강요가 너무 별로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거절하기도 했다. 첫째 아들이 저학년일 때 첫째 아들이 다른 아이를 말로 놀렸고 그 놀리는 말에 화가 났던 어떤 아이의 엄마가 나에게 연락해 와서, 나와 우리 아들이 본인 집 앞으로 와서 정식으로 사과하라고 했던 사건이 있었다. 그때 알고보니 우리 아들은 그 아이를 말로 놀린 거고 그쪽 아들은 우리 아들 엉덩이를 때린 상황이라 결국 쌍방으로 사과를 시키고 끝났었다. 어째 되었건 나는 그 사건을 계기로 아이들 간 문제에서 재발방지나, 잘못된 행동임을 인지하면 되고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하게 되는 사과가 있는 것과는 별개로, 상대방에게 사과하세요!라고 강요하는 건 정말 의미 없고 나는 그런 사과를 굳이 왜 받으려 할까 생각했다.
그렇지만 막상 뉴뉴가 맞았고 속이 정말 상해보니까
내가 뉴뉴도 아니건만 내가 아무 연락도 못 받고 넘어가기는 속이 썩어 들어갔다.
마치 뉴뉴가 뺨을 맞은 일을 내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걸로 상대방 엄마에게 보여지고
혹시나 철수가 이번일을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또 때리는 일이 있을까 불안했다.
결국 못난 나는 장문의 카톡을 썼다.
철수어머니,
오늘 철수가 윤우 뺨을 때렸다고 학교 담임 선생님 통해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담임선생님께서 사과전화 필요한지 물으셔서 그냥 사과전화는 괜찮다고 말씀드리긴 했는데요,
혹시나 이번일을 제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처럼 지나갈까 봐 좀 우려가 되어서... 연락드리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어리고 처음이니까 이해해보려고 하는데요, 다만 앞으로는 어떤 경우라도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철수어머니께서 꼭 철수에게 단단히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일러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구구절절 써서 보냈다.
그리고 초조해졌다. 혹시나 너네 애가 맞을만한 짓 한 거 아니냐 이런 답이 오는 건 아닐까 최악의 상황도 생각해 봤다. 그러면 어떡하지. 나는 정말 일 크게 만들고 싶지는 않은데.
그러나 걱정도 잠시,
안녕하세요,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연락 안 주셨으면 제가 모를 뻔했습니다. 단단히 주의하겠습니다. 뉴뉴에게도 상처되지 않도록 꼭 사과의 말과 위로 잘 부탁드립니다. 어머니께도 죄송한 사과의 말씀드립니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라고 철수 어머니로부터 카톡을 바로 받았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어찌나 간사한지.
철수 어머니가 저렇게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해주니까 정말 우습게도 내 불편했던 마음이
솜사탕 위에 물을 촥 부워버리듯이 아주 살살살 녹아내렸다.
아, 이게 사과의 위력이구나.
내 속상한 마음을 제대로 알아준다는 게 이런 거구나.
철수 어머니 카톡을 받자마자 나는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철수어머니' 하고
쑥스럽고 뭐라 할지 모르겠는 그런 답장을 황급히 보냈다.
그리고 내 마음은 괜찮아졌다.
사과의 위력이라는 게 이렇게 큰 건지 나는 미처 몰랐다. 평소에 아들 둘이 집에서 티격태격 싸우면 내가 목청 높여서 '서로 사과해!!!!' 소리 지를 때처럼 그냥 일상 속에서 너무나 흔하게 미안! 미안해! 하고 지내느라 그 위력을 제대로 몰랐었나 보다.
어쩌면 그래서 그 나의 첫째 아들 저학년 시절에 나에게 본인 집 앞으로 애를 데리고 와서 사과하라고 소리치던 그 여성의 마음이 몇 년이 지난 이제야 조금은 이해가 된다. 상황이 어찌 되었든지 우리 아들 때문에 나 너무 속상하다고! 이런 취지였던 것이다.
내 나이 마흔인데, 아직도 나는 배울게 참 많다.
허우적대던 내 마음을 진정시켜 준
그 엄마의 단명한 사과글은
내 기억에 오래오래 남아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