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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자마자 육회를 만들었다

행복의 효용을 최대로 끌어올려

by 배지 Mar 11. 2025

우리 집 초등학생은 나와 달리

학교를 다녀오고 학원을 가기 전 그런 시간에

집에 엄마가 계속 없었다.

물론 학원을 다녀오면 있고,

아침 등교길은 함께 손잡고 학교를 갔지만

영락없이 저녁시간에는 엄마가 없어

이모님들이 준비해 주는 저녁을 평생 먹어왔다.


나는 무조건 아침에 눈 뜰 때나

학교를 다녀와서 집에서 뒹굴거릴 때나

학원을 갈 때나 늘 따스한 엄마가 있었다.

늘 맛있는 밥과 반찬, 간식을 해줬고

지금도 엄마가 해줬던 콩나물, 시금치, 감자당근볶음

취나물 파김치 된장찌개 김치찌개 생선구이 이런 기억들이 선명하다.


우리 집 초등학생은 어렸을 때야

이모님이 해주시는 대로 적당히 있었지만

늘 맛있는 식사에 대한 갈증이 있다.


조선족 이모님들이 주로 해주시는 건 무생채,

마파두부 혹은 피망잡채 같은 느낌으로 야채와 고기를 길쭉하게 썰어서 굴소스로 볶은 그런 요리들이다.

우리 초등학생은 이제 6학년이 되자 이런 건 먹기 싫다며 내게 치킨이나 마라탕, 순대국밥을 시켜달라 하곤 했는데, 그럼 나는 학원을 바삐 가야 하는 초등학생이 짠해서 못 이기는 척 시켜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쿠팡이츠 배달이 점점 잦아가는 걸 느끼며

이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아들을 혼꾸멍을 냈다.

'엄마 치킨시켜주면 안 돼?'라는 말에

'너는 집밥을 먹어야지 맨날 치킨 마라탕만 좋아하면 건강이 어떻게 될라고!'

벼러왔다는 듯 호통을 치며 치킨 금지령을 내렸다.

그러자 초등학생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엄마, 나도 집밥 좋아해 먹고 싶어.

엄마가 해주는 봉골레 파스타랑 엄마가 해주는 거

다 먹고 싶은데,

그런데 엄마가 없잖아.

이모가 해주는 건 나는 이제 먹기 싫어. 맛이 없어.





쿠쿠궁.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그렇다. 내가 아들에게 해준 적 없는 집밥을

좋아하며 먹으라고 호통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이모님 내가 정말 좋아하고 감사하지만

솔직히 이모님이 일주일에 두 번씩 마파두부를

해주시면 나도 먹기 싫어서 이모님이 가시면

조용히 두부에 묻어있는 마파소스를

물에 살짝 씻어서 간장 참기름 둘러서 먹은 적 있다.


이모님께 이런저런 레시피를 찍어서 보여드리기도

했지만 원래 하시던 요리가 아니니 그대로 되지도 않고

또 잘 안 되는 부분을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우리 초등학생이 맘 속 깊이 원하는 건

엄마가 해준 밥인가 싶었다.

 

아이가 있은 이후로 아침에 어린이집, 초등학교를

직접 데려가 주려고

9:30 - 6:30 근무시간으로 쭉 지내왔는데, 바로

8:00 - 5:00로 바로 변경했다.

그리고 퇴근길에 잔뜩 장을 봐서 어제 초등학생이

주문한 육회 메뉴 대령을 위해

육회감 고기를 사고 양념을 묻히고, 배를 썰고,

계란 노른자를 톡 올려 학원 끝날시간에 맞춰

집에서 초등학생을 기다렸다.






나를 본 우리 초등학생 얼굴이 미소로 번지더니

신이 난 얼굴로 배시시 웃으면서 잘도 먹는다.

엄마 맛있다.

물론 나는 요리 하수이기 때문에 이모님이

기본으로 깔아주신 계란말이와 김치찌개를 베이스로

두고 살짝 양념만 하면 되는 육회를

메인으로 내어준 거라 요리도 아니고 조리 수준이지만

뭐해줄까 물어보고 장 봐오고 비닐장갑 끼고

고기를 조물조물 무치고

학원에서 올 아이를 기다렸다가

오물오물 맛있게 먹을 때

앞에 있어 줬다는 것을 초등학생이 기뻐했고

나도 마음이 충만했다.


내일은 뭐 먹을래?

샤브샤브?


너무 좋지~ ^^


쉬운 걸로 돌려막으려는 엄마 속셈도 모르고

초등학생은 신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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