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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이제 May 18. 2021

꼽추아저씨네 과일가게

사람이 풍경이 되어



 할머니가 '꼽추아저씨'라고 부르는 과일가게 할아버지가 있다. 선천적으로 척추 장애가 있으셔서 허리가 굽은 모습의 할아버지는 백발이 성성함에도 어쩐지 얼굴만큼은 소년스러운 구석이 있으셨는데, 나는 그 이유를 할아버지의 웃음에서 찾았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면 예- 하시며 덩달아 잠시 허리를 숙였다 펴신다. 이때 잠깐 보이는 눈가의 나이 주름들로 활-짝 웃는 웃음임을 알 수가 있다. 이런 종류의 웃음은 나이 지긋하신 어른에게서 쉽게 볼 수 있는 웃음이 아니기에, 동네에서 꼽추아저씨를 보면 나는 대번에 기분이 좋아진다. 집에 들어가실세라 얼른 다가가 그 웃음 보기를 즐겨한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이 동네로 이사를 왔다. 꼽추아저씨는 그때도 지금처럼 과일가게를 하고 계셨다. 가게 라야 3평이 될까 말까 한 도로변 노점이라, 과일이며 야채 바구니를 길가에 어느 정도 내놓아야 행인의 눈에 띄었다. 학교 다니는 동안 뻔질나게 꼽추아저씨네 과일가게 앞을 지나다녔고, 가게의 작은 변화들을 자연스럽게 감지했다. 고등학교에 다닐 무렵엔 어묵 기계가 생겼고, 꼽추아저씨의 아내분께서 솜씨 좋게 떡볶이를 만들어 튀김, 순대와 함께 팔기도 하셨다. 바로 앞이 버스 정류장이라 추운 겨울엔 막간을 이용해 어묵 국물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가끔 집에 떡튀순을 사갔는데 할머니는 따끈한 튀김 봉투를 찢을 때마다 그 어마어마한 튀김 양을 보고 꼽추아저씨네 매출을 걱정하곤 했다.


 오랜 세월 꼽추아저씨의 움직임은 근면 성실하고 조용했다. 가게 앞에 내놓은 야채와 과일바구니를 정리하시거나, 텔레비전 야구 중계를 보시거나, 가게 옆 담벼락에서 담배를 태우시거나 중 하나였으므로.


 그런 꼽추아저씨가 어느 아침 누군가에게 삿대질하며 버럭 소리쳤다. 야, 이 새끼야! 빨리 이리 안 내려와! 안 그래도 고요한 출근길에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무슨 싸움이 났나 싶어 일제히 꼽추아저씨가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았다. 그곳에 보송보송한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날랜 몸으로 나무를 타고 있었다. 야, 이 새끼야! 빨리 내려오래도! 사람들은 안도의 웃음을 지으며 고 보송보송한 새끼 고양이가 꼽추아저씨 마음을 애태우는 장면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그 날 이후 새끼 고양이 두 마리가 꼽추아저씨네 가게의 상석을 차지하고서 지나가는 사람들 마음을 간질였다.


 그러나 이제는 새끼 고양이들도 없고 어묵 기계도 없고 오색찬란 과일 바구니도 없다. 꼽추아저씨네 과일가게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혼자서 거동이 어려우신 꼽추아저씨는, 아내분이 건강 악화로 가게에 나오기 어렵게 되자 곤란해졌다. 그렇게 장사를 접었다. 꼽추아저씨네 가게가 문을 닫자, 어디선가 사람들이 와서 가게를 멀건 분홍색으로 칠했다. 머지않아 낯선 얼굴의 중년 부부가 가게 문을 열었고 과일 몇 가지를 내놓았다. 그리고 사람들을 기다렸지만 별다른 성과도 없이 금세 가게를 접었다.


 우리 할머니는 묻지 않아도 꼽추아저씨의 소식을 전했다. 그 말인즉슨, 동네 사람들 대부분이 꼽추아저씨네 과일가게의 행방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4월, 무시하기 어려운 봄의 생동감 속에서 은근하고 분명하게 퍼지던 슬픈 분위기를 기억한다. 그것은 느낌만이 아니라 분명 실재했다. 삶을 구성해온 아주 당연한 풍경 하나가 어느 날 갑자기 바뀌어 낯선 페인트 냄새를 풍기고 있으니.


 십수 년간 한 자리를 지켜온 그 성실함으로,  이 곳 사람들의 삶에 당연하고 정다운 풍경이 되어주셨음을 아실는지. 그 영향력은 또 얼마나 큰지, 새로운 사람과 장소를 만나러 가던 길에서 꼽추아저씨의 느긋한 움직임과 나지막한 텔레비전 소리가 긴장한 마음에 얼마나 담백한 위로가 되었는지. 타국 나온 이의 잠 못 드는 밤, 그리운 집의 범주 안에 언제나 꼽추아저씨의 가게가 자리했음을 알고 계실지. 그간의 노고와 성실함에 진심 어린 경의와 찬사를 표하고 싶은 마음을 알아주실지.


 드리고 싶은 말만 차고 넘치던 와중에, 아파트 계단에서 꼽추아저씨를 마주쳤다. 왠지 긴장이 되었다. 하고 싶은 말은 그리 어려운 말은 아니었는데.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참 아쉽고,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였는데 그게 뭐라고 용기가 나질 않았다. 안 되겠다. 찰나의 용기를 포기하고, 있는 힘껏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마스크 낀 얼굴이나마 열심히 구겨가며 웃어 보였다. 예- 하는 꼽추아저씨의 소년 같은 웃음이 돌아왔다.


 



꼽추아저씨께,


  그동안 참 고생 많으셨습니다. 참 아쉽습니다. 동네 사람들 모두가 같은 마음일 겁니다. 그동안 수고하셨으니 이제 푹 쉬시라 말씀드려도 될지, 너무 건방진 이야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동네에서 아직 어린 축에 속하는 저 같은 청년도 그동안 수고해오셨음을 보았기 때문에, 그래서 전하지 못할 말일지언정 이렇게 고르고, 다듬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충분히. 은퇴하심을 축하받고 1동부터 10동까지 감사인사를 받으셔도 과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인사를 못 받은 집이 있다면 직접 노크를 하고 인사를 받으셔도 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정말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긴장된 외출에 할아버지의 고양이와 텔레비전 소리를 들으며 위안을 얻은 것에, 일 년을 비웠다 돌아온 풍경에 그대로 계셔주셨던 것에, 참견 많은 우리 할머니가 무어라 말해도 무던히 답해주신 것에, 저의 모든 경험과 가치관 형성에 도움 주신 것에, 그리하여 돈 한 푼 못 버는 지금도 최소한의 선을 꿈꾸게 해 주심에 감사한 마음을 그득 얹어서, 힘차게 인사드리겠습니다.


 은퇴를 축하드립니다. 정말.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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