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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나 Apr 17. 2022

후회로 남을 일주일의 기록

# 1

한 달 전엔가 친구의 아기 옷 선물을 하기 위해 백화점에 들렀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아기 옷 매장으로 올라가는 길, 여성복 층에서 우연히 원피스 한 벌을 보았는데 그 순간 거기에서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
좋은 원단으로 만들어서인지 옷의 결에서 빛이 나는 듯했고, 디자인이며 색감이 하나하나 마음에 쏙 들었다. 매장 안으로 들어가 볼까 말까 고민만 하다가 가격이 엄두가 나지 않아 입어보지는 못하고 그저 지나쳤는데, 그러고는 집에서 엄마와 저녁을 먹으며 '확실히 값비싼 옷은 다른 것 같더라'고 이야기했다.


4월 초, 엄마가 나에게 선물이라며 웬 봉투를 하나 건넸다. 몇 년째 안 쓰고 모아두었던 것인데 그때 네가 말했던 예쁜 옷을 사라고 했다. 받아보니 백화점 상품권이 여러 장 들어있었다. 그리고 지난 주말, 내가 서성거렸던 그 매장에 엄마와 함께 방문하여 이 옷 저 옷 입어보았다. ‘옷이 날개'라는 말이 이런 거구나 싶어 거울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차, 거울 속에서 날 바라보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반짝거리는 새 옷을 입은 나와는 다르게 엄마가 너무 초라해 보였다.   



# 2

여느 때처럼 바쁜 한 주를 보내던 중, 고등학교 때부터 가장 친한 친구의 남자친구에게서 카톡이 와있었다. ‘시간 될 때 전화 좀 줄래?’ 나는 그 카톡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조금도 짐작하지 못했던 걸까. 메시지를 받은 지 두 시간이 지나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그날 아침 친구의 아버님께서 세상을 떠나셨음을 알게 되었다. 입에서 탄식이 새어 나왔다. 벌써 15년 가까이 내 곁에서 함께하고 있는 친구였고, 그런 친구가 인생에서 큰 이별을 경험한 순간이었다.


장례식장은 전북 김제였다. 당장에 친구를 만나러 가고 싶었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소식을 들은 다음 날 김제로 향하게 되었다. 뚜벅이 처지라 대중교통만 이용해서 내려갔다가 당일에 올라와야 하는 터였다. 좀 더 이동시간을 확보하고자 낸 반반차가 무색하게도, 내려가는 길 내내 메일을 보내고 디자인 업체와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근처 기차역에서 장례식장으로 이동하는 길에서도, 빈소에 도착해서도 계속해서 걸려오는 클라이언트의 전화에 전전긍긍했다.


개인적인 일로 장례식장에 방문했음을 알렸으나 그는 ‘아이고, 그렇군요.’ 한 마디 하더니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자신의 상황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급박한 것은 그 또한 마찬가지였을 테니까.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조금은 서글펐고, 조금은 서글펐으나 감정을 전혀 티 내진 않았다. 그렇게 저녁 일곱 시 반 경의 통화를 마지막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제야 친구의 얼굴이 제대로 보였다.   



# 3

김제에서 출발해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쓰러지다시피 잠에 들었다. 고요한 분위기에 무언가 잘못됨을 느껴 눈을 떠보니 아침 아홉 시였다. 고양이 밥과 물만 챙겨주고, 씻지도 않은 채 닥치는 대로 옷을 주워 입고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요즘의 하루는 일을 하거나 일 생각을 하거나, 둘 중 하나인 것 같다. 무언가 놓치지는 않았을까, 예상과 다르게 되고 있는 건 없을까, 클라이언트도 나와 같은 이해를 갖고 있을까 계속해서 되짚어본다.


그날은 내가 맡은 사업의 모집 마감일이었고, 사업의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날 중 하나였다. 그렇게 나에게 주어진 새로운 하루도 촘촘한 걱정으로 메운 채 집으로 돌아갔다. 잠시 거실에 앉아 지친 눈빛으로 앉아 있는데, 캐나다 방문을 앞두고 있는 엄마가 비자와 백신 접종 증명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한다. 지친 나는 짜증스럽게 대답한다. 서로의 목소리가 몇 번 오간 후, 나의 짜증은 거친 화로 변해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내가 어떤 상황인지 뻔히 알면서, 지금 그게 그렇게까지 중요한 거야?’, ‘왜 나를 배려해 주지 않는 거야?’ 엄마는 당황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내 분노의 대상은 그녀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전날 고객과의 소통에서 느꼈던 감정까지도 엄마에게 쏟아내고 있었다.   


# 4

아버님의 발인일이 지났다. 전화를 해볼까 고민하던 차에 친구로부터 먼저 연락이 왔다. 친구는 덕분에 장례를 잘 마무리했다고 인사를 전하며, ‘아버지가 떠나시고 나니, 미안하단 말밖에 할 말이 없더라.’는 말을 덧붙였다. 내가 잠시 고민하다가 남긴 미안하다는 내용의 카톡에 엄마는 금방 마음을 풀었다. 그리고 언제 다투었냐는 듯 다시 나의 끼니와 건강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왜 삶에서 더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은 저들끼리 슬그머니 자리를 바꾸곤 하는 걸까. 무엇이 무엇에 앞서는지 그리고 무엇이 무엇의 나중에 서는지, 결코 모를 리가 없지 않으냐고 자신을 해봐도 충분히 집중하지 않는 순간 금세 다시 헷갈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이 든 어머니의 모습은 보지 못한 채 새 옷을 입은 나의 모습에 만족해했고, 소중한 친구의 슬픔을 위로하러 간 자리에서 걸려오는 클라이언트의 전화에 계속해서 마음을 썼고, 타국으로의 먼 여정을 앞두고 어머니가 느낄 두려움은 이해하지 못한 채 나의 피로함에만 신경이 바짝 곤두섰다. 딸로서 혹은 친구로서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할 때 그렇게 하지 못함에 진심으로 부끄러운 한 주였고, 마음 깊이 후회되는 일주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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