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읽고, 2016년 3월에 씀
2016년 3월에 쓴 독후감을 이곳에 다시 옮겨 봅니다.
지금은 현생에 치여 저 정도로 깊게 고민하며 살지는 않지만, 저때는 제 인생의 가치관을 새로이 정립해 나가고자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저 미숙하던 시절은 지금의 제가 되는 데 많은 자양분이 되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고 유치한 고민들이지만요.
벌써 3년 전의 글이라 제 글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내용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지금도 '멀리 떠나가도 변하는 게 없다'는 책의 구절에는 공감합니다.
우리는 종종 반복되는 일상에 지루해 하고, 멀리 떠나야만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물론 일상의 고민이 많은 공간에서 벗어났을 때, 즉 '나의 파괴'로부터 오는 리프레쉬는 정말 소중한 것이고, 그것에서 새로운 가치관이라던가 깨달음을 얻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삶은 크게 변하지 않습니다. 멀리 떠났다 하더라도 나는 결국 나고, 결국은 다시 지루한 일상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니체의 '영원으로의 회귀'가 떠오르는 순간입니다. 이 책을 읽을 당시에는 니체에 대해 잘 알지 못했는데, 지금 니체와 연결시켜보니 책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 보입니다.
니체는 이 '영원으로의 회귀'라는 개념을 주장하며, 영원이라는 시간은 원형이고, 그 안에서 모든 것이 무한히 반복된다고 말합니다. 니체는 신도, 환생도 부정하던 인물이므로 다음 삶에서의 새로운 인생도 부인했습니다. 그저 '현실을 받아들이고 즐겨라, 그것 또한 너의 의지이고 선택이다'라는 "아모르 파티"가 바로 여기서 나온 개념이기도 하고요.
이러한 니체의 사상을 이 글에 투영시키면, 결국 죽음을 의뢰한 이 책의 인물들은 죽음으로도 삶의 문제를 피할 수 없게 되겠네요. 죽음이라는 가장 먼 도피처로 떠나더라도 변하는 게 없어요, 인생이란.
그렇다면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음을 주장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쉬이 내리기는 어렵지만, 고통스러운 순간일지언정 나의 선택으로 인한 결과이니 순응해야 한다는 니체의 주장은 현재 저의 인생관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며 글을 맺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