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를 냈다가 얼르며 설득하다가를 반복하던 남편은 완강히 버티는 내게 쐐기를 박듯 땅을 구했다는 선언을 했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황소고집에 불같은 성격을 가진 남편의 결정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래서 내놓은 나의 마지노선은 충청권이었고, 그 아래로는 절대 내려가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었다.
땅이 뭐 그리 쉽게 구해지겠어?라는 생각으로 제안한 마지노선이었는데 남편은 아주 쉽게(?) 그 조건의 땅을 찾아냈다.
"천안이면 괜찮지? 서울까지 1시간이면 올 수 있고, 지하철도 있으니까."
"일단 가보고 말할 거야. 너무 외진 곳은 싫어. 애들 학교도 가야 하잖아. 친구도 사귀어야 하구."
"새로 지은 학교도 가깝고 근처에 큰 아파트 단지도 있어. 가보면 마음에 들걸?"
시골에 있는 아파트가 뭐 커봤자지. 별 기대 없이 도착한 땅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IC에서 5분 거리 안에 농장과 아파트, 학교가 다 있었다.
그것도 꽤 큰 규모의 상가들은 물론 편의시설도 웬만한 것들은 형성되어 있었다.
이쯤 되니 반대할 명분은 사라졌고 남편의 계획을 존중해줄 수밖에 없었다. 의지가 강한 남편을 믿고 시작해보기로 마음먹음으로써 남편과 나의 전쟁은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진짜 전쟁은 지금부터였다.
서울에서의 모든 생활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지방에 내려가면 한동안 만나기 어려울 것 같은 친구들, 지인들, 동료, 친척들까지 일정을 잡고 만나는 날들이 한동안 이어졌다.
외국으로 이민을 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렇지만 마음은 수천키로미터를 떨어진 외국에 나가는 것 못지 않게 두렵고 생경했다.
하고 있던 수업도 보강까지 잡아가며 이사 가기 전날까지 빠듯하게 해냈다.
그리고, 이사.
설레임보다는 걱정과 두려움이 앞선 이사였다.
아무런 인맥이 없는 무연고 지역이었기에 더 걱정되었다.
하다못해 은행이 어디 있는지, 장은 또 어디서 보아야 하는지, 동네 주민센터는 어디 있는지, 모르는 것이 생기면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지 알 길이 없이니 말이다.
그러나 진짜 걱정되고 두려울 일은, 곧 바닥을 보일 생활비였다.
막연한 계획이었던 귀농이 현실로 다가왔다.
그때 우리 수중에 있던 돈은 1억 8천만 원이 다였다. 12년 치 땅 임대비와 트랙터, 농막용 컨테이너, 중고 트럭 등을 구입하는데 3천만 원을 썼다. 그리고 전셋집을 구하는데 1억 2천만 원을, 농장에 하우스 시설을 짓는데 천오백만 원을 쓰고 나니 달랑 천오백만 원이 남았다.
남은 천오백만 원으로 닭과 사료도 사야 했으며, 자질구레한 연장들도 필요했다. 물론 우리 4인 가족 생활비도 그 남은 금액으로 해결해야 했다.
부족해도 한참이나 부족했던 돈으로 우리는 당장 먹고 살 일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귀농은 취업해서 달마다 월급을 받는 것과 같은 수입구조가 생기지 않는다. 지금 고추 열 포기를 심는다고 해서 한 달 뒤에 돈이 되지 않는다. 짧게는 4개월에서 길게는 10개월 이상을 노동력과 재료비 등을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수입이 발생된다.
물론 미리 예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당장 한 푼의 수입도 없이 6개월 뒤, 1년 뒤를 기약하며 버티는 일이 쉬울 리 없잖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