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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꼬맘 Sep 24. 2020

지인이 고객이 된다는 착각을 버려라!

귀농을 꿈꾸는 그대를 위한 조언 no.1





우리가 귀농 작목으로 유정란을 선택했던 것은 참 잘한 일이었다.

달걀은 어느 집에나 항상 구비해두는 식재료 중 하나고, 특히나 아이를 키우는 집에서는 냉장고 속 비상식량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른 어떤 농산물보다 훨씬 더 잘 팔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고객층이 넓다는 건 그만큼 팔 수 있는 확률이 높음을 의미하므로. 다만 그 고객을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문제이긴 하다. ^^;;;






꼬꼬파와 나는 달걀이 나오기만 하면 잘 팔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우리는 둘 다 40년 넘게 서울에 살았던 사람들이다. 도시의 인연으로 만난 사람들은 필요한 것을 만들어 먹는 사람들이 아닌, 마트에서 사 먹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그 도시의 지인들을 초기 고객으로 확보하기만 하면 귀농 정착이 려운 일도 아닐 거라는 생각이었다.

어차피 소량 생산, 소수정예의 정기 회원 확보가 목표였기에 매체를 이용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홍보보다는 지인 공략이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했다.  



2013년 7월에 닭을 들였고, 10월부터 한두 알씩 나오기 시작한 달걀 한 달이 지나자 매일 백여 개씩 쏟아지기 시작했다.

꼬꼬파와 나는 매일 쏟아져 나오는 유정란을 홍보용으로 처리(?)하기 위해 각자의 지인 목록을 작성했다. 주소를 알아내기위해 전화기 속 지인들이 하나씩 소환됐다.

그들과 함께 했던 빛바랜 추억들도 함께 소환된 것까지는 좋았으나 어쩌다 시골까지 들어와 귀농을 하게 되었는지도 구구절절 읊어야 했다. 귀농스토리가 감동적일수록 그들의 적극적인 행동, 이를테면 '사고싶다'라는 동기부여를 유도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구차해지고 싶지도 않았다. 동정도 싫었다. 번듯한 직장을 구하느라 서울에서 시골로 이주한 것이 아닌, 농사를 짓기위한 이주를 왠지 패배한 자의 마지막 선택으로 오해할까봐 걱정되었다.

 그래서 긴 통화의 마무리는 "야, 내가 공기 좋은 데서 좋은 달걀 만들고 있으니까 한번 먹어보라고 보내는 거야. 주소 좀 보내봐."로 끝났다. 먹어보고 좋으면 회원 가입하라는 말은 붙이지 못하고 말이다. 그놈의 자존심.



그렇게 작성된 지인 리스트를 하나씩 지워가며 우리의 피땀 어린 귀농 9개월차의 첫수확, 달걀을 곱게 포장해서 보냈다. 그들이 우리의 고객이 되어줄 거라는 믿음과 희망도 함께 담아서. 

그러나 꼬꼬파와 나의 지인 목록은 생각보다 빨리 바닥을 보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 무모한 생각이었다. 둘 다 단체 활동 많은 마당발도 아니었고, 사업가도 아니었으니 지인 범주가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을 텐데 무슨 배짱과 믿음으로 지인 홍보를 계획했을까?

하여튼 생각보다 일찍 바닥을 보인 지인 리스트를 다시 채우기 위해 사돈의 팔촌, 형제의 지인, 초등학교 동창, 친구의 친구, 친구의 동생. 하다못해 보험 설계사까지 지인 목록으로 동원해서 달걀을 보냈다. 그들이 우리 달걀에 감탄하며 정기 고객이 되어줄 거라는 착각을 버리지 못하고 말이다.



달걀을 보내고 몇 주가 지나자 지인들이 드디어 달걀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누나한테 달걀 40알만 보내줘."

"친구 OOO에게 달걀 60알 보내줄래?"

"달걀 100개만 보내라."

주문이 이어지자 꼬꼬파와 나는 기뻤지만 기뻐할 수 없었다.

주문은 단발성이었고, 정기 배송 회원으로 가입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친구이자 동생이었던 우리들이 생전 해보지 않았던 일을 시작한 그 노력이 가상해서 '사주는 거'였다. 말하자면 격려 차원이었던 거다. 우리가 만든 유정란이 정말 맛있고, 매력적인 상품이어서 계속 먹고 싶었던 것이 아닌 우리와의 관계를 고려한 인정 베풂,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거다.

물론 그들 중 고객이 되어 최소 1년에서 3년 이상 유지된 감사한 고객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보낸 300건이 넘는 리스트에서 건진 회원은 단 4명이었다는 점을 돌이켜보면 꼬꼬파와 나의 홍보 방법은 처음부터 잘못된 접근이었던 셈이다.

지인은 지인일 뿐, 진짜 충성 고객은 지인 밖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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