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링크3 : 감정의 예술 #9

예술인가 착취인가

by 디자이너 야니

다음 날, 도시 전체가 두 개의 사건으로 나뉘어 있었다.

한쪽에서는 장현우의 '구매한 죽음 체험'으로 인한 집단 의식불명 사고가 연일 뉴스에 나오고 있었다.


"장현우 작가 작품 체험자 12명 의식불명... 뇌사 위험 경고"
"감정 헤드셋 기술의 위험성 도마 위에"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사람들의 관심은 달랐었다.

장현우가 민우에게 "한 달 뒤 공개 대결"을 선포하며 세간의 이목이 쏠려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 도전장은 의식불명 사건에 가려져 있었고,

세상은 ‘예술이란 이름으로 인간의 감정을 거래해도 되는가?’라는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또 다른 한쪽에서는 민우와 박지원이 작은 공원에서 '진실 공개 기자회견'을 열고 있었다.

박지원이 마이크를 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테라콘의 CEO 박지원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충격적인 진실을 고백하려고 합니다."


처음에는 몇 명만 관심을 보였지만,

박지원이 구체적인 증거들을 제시하기 시작하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군중의 웅성거림이 커질수록 공원의 공기는 묘하게 긴장감과 호기심으로 뒤섞여 갔다.


"AVA 시스템과 정화 프로그램은 예술 도구가 아닙니다.

사람들의 감정을 완전히 박탈하고 표준화된 반응만 남기는 통제 무기입니다."


화면에 내부 문서들이 나타났다.

정화 프로그램의 진짜 목적, 감정 조작 계획, 그리고 리콜렉스와의 연결고리까지.


"그리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장현우의 '죽음 체험' 프로젝트는... 단순한 예술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두려움과 고통을 데이터화해, 사회 전체를 통제하려는 대규모 실험입니다."


군중들이 술렁였다. 누군가는 휴대폰으로 영상을 찍으며, 또 다른 이는 분노에 찬 눈빛을 보냈다.


"증거가 있나요?"

"설마 진짜예요?"

"언론 플레이 아니야?"


분노와 의심이 뒤섞여 퍼져나갔다.

박지원은 USB를 높이 들어 보였다.


"이 안에 모든 증거가 들어있습니다.

정화 프로그램의 진짜 목적, 감정 조작 계획, 그리고 리콜렉스와의 연결고리까지.

저는 이 모든 것을 승인한 책임자로서... 여러분께 사죄드립니다."


그때 유나가 앞으로 나섰다. 손에는 새로 그린 그림을 들고 있었다.


"저는 서유나예요. 열 살이에요."

사람들이 아이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순간, 소란스럽던 분위기가 잠시 멎었다.


"어른들이 자꾸 무서운 그림을 그리라고 해요. 그런데 저는 무서운 그림 그리기 싫어요."

유나가 자신의 그림을 들어 올렸다.

사람들이 손을 잡고 웃고 있는 단순한 그림이었다.

"이건 행복한 그림이에요. 친구들이랑 놀 때 그린 그림이고요."


한 기자가 큰 소리로 물었다.

"점수는 몇 점인가요?"


"점수요? 점수는 없어요."

유나가 당당하게 답했다.

"점수가 중요한 게 아니거든요."


"그럼 뭐가 중요한데요?"

"마음이 따뜻해지는 거요."


한 중년 남성이 유나의 그림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이게... 이게 진짜 예술 같아요. 제 어린 시절이 떠올라서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유나의 그림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장현우의 전시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말 죽음을 체험하는 게 예술인가요?"

"예술을 보고 나서 죽고 싶어지는 게 정상인가요?"


한수연이 나서서 설명했다.

"장현우의 작품을 체험한 사람들을 추적 조사한 결과, 80% 이상이 우울증 증상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30%는 자살 충동을 느꼈다고 답했어요."


"그런 게 예술이라고 할 수 있나요?"

민우가 마이크를 잡았다.

"예술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죽이는 게 아니라."


"그럼 장현우 작가 작품은 예술이 아니라는 말인가요?"

"그건 예술이 아니라 착취입니다."

민우의 단호한 대답에 군중들이 웅성거렸다.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구매해서, 그것을 자극적인 상품으로 만들어 파는 것.

그리고 그 결과로 더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게 만드는 것. 이게 예술일까요?"


그때 갑자기 소란이 일었다.

장현우의 전시회에서 또 다른 사고가 터진 것이다.


"119에 신고하세요!" 누군가가 소리쳤다.

"여기 사람 또 쓰러졌어요!" 다른 목소리가 뒤엉켰다.


멀리서 구급차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고, 점점 가까워졌다.

날카로운 사이렌 소리가 공원의 공기를 찢었다.

군중들 사이에는 공포가 퍼져가기 시작했다.


박지원이 마이크를 움켜쥐며 외쳤다.

"이것이 바로 제가 경고하려던 일입니다! 감정 착취 시스템이 만들어낸 결과예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한 기자가 소리쳤다.

박지원의 목소리는 흔들렸지만, 단호했다.

"지금 당장 중단해야 합니다. 더 이상의 피해자가 나오기 전에!"


그때 군중 속에서 한 사람이 나섰다.

감정 거래소에서 자신의 트라우마를 판 그 중년 남성이었다.


"저는... 저는 제 고통을 팔았습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주변이 순간 정적에 잠겼다.


"생계 때문에 어쩔 수 없었어요. 전쟁에서 겪은 끔찍한 기억들을... 300만 원에 팔았어요."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런데 그 후로... 그 후로 저는 정말 무서운 일이 생겨도 두렵지 않아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해요."


"그게 뭐가 문제인가요?" 한 기자가 물었다.

"제 아이가 아플 때도... 제 아이가 아플 때도 걱정되지 않는다고요. 아버지로서의 감정이 사라져버렸어요."


그가 유나의 그림을 가리켰다.

"이 아이 그림을 보니... 오랜만에 뭔가 느껴져요. 이게 진짜 같아요."

그의 증언에 사람들이 숙연해졌다. 웅성거림은 잦아들고, 공원에는 무거운 침묵과 함께 묘한 울림이 번졌다.




저녁, 긴급 상황실에서 정부 관계자들이 모였다.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할 것입니까?"

"장현우의 전시회는 즉시 중단시켜야 합니다."

"하지만 법적 근거가..."


"법적 근거는 충분합니다."

박지원이 회의실에 들어오며 말했다.

"제가 모든 증거를 제출하겠습니다."


박지원은 더 이상 테라콘의 CEO가 아니었다.

진실 공개 후 사임한 상태였지만, 여전히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감정 조작 기술은 명백한 대중 안전 위협입니다.

그리고 정화 프로그램은..."

그녀가 손목시계를 만지며 말했다.

"인권 침해입니다."




오후 9시, 경찰이 장현우의 전시회장에 도착했다.

"긴급 폐쇄 명령입니다. 모든 관람객은 즉시 대피하세요."


하지만 장현우는 저항했다.

"이건 합법적인 예술 활동입니다! 무슨 권리로..."


"공중보건법 위반입니다."

경찰이 영장을 보여줬다.

"23명의 의식불명 환자 발생으로 인한 긴급 조치입니다."


갤러리가 강제로 봉쇄되면서, 아직 헤드셋을 쓰고 있던 관람객들이 급히 의료진의 도움을 받았다.


"이건... 이건 예술에 대한 탄압이에요!"

장현우가 소리쳤다.


"예술이 아니라 범죄입니다."

한 의료진이 말했다.

"이 사람들 모두 같은 증상이에요. 극도의 허무감과 자살 충동."


장현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 순간, 그의 전시는 완전히 막을 내렸다.




같은 시각, 민우와 유나는 작은 공원에 있었다.

촛불 몇 개만 켜진 잔잔한 공간. '진짜 감정 나눔회'라는 손글씨 팻말이 걸려 있었다.

도시 곳곳의 소란과 달리, 이곳에는 고요한 온기가 번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여기는 뭔가요?"

"점수 없이 그림을 그리는 곳이에요." 유나가 답했다.

"점수 없이?"

"네. 그냥 마음 가는 대로요."


한 아이가 조심스럽게 크레파스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종이에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뭘 그리고 있어?"

"무서웠던 기억이요. 그런데 이제는 안 무서워요."

아이의 그림은 서툴렀지만, 보는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힘이 있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들 중에는 장현우의 전시회에서 나온 사람들도 있었다.


"저기서는... 저기서는 너무 무서웠어요. 그런데 여기는 평화롭네요."

"그림을 보니 마음이 차분해져요."


사람들은 각자 다른 색으로 그림을 그렸고, 서로의 마음을 나눴다.

작은 불빛 아래, 처음으로 두려움이 아닌 따뜻함이 모이고 있었다.




그날 밤, ‘진짜 감정 나눔회’가 끝난 뒤, 민우는 유나와 함께 조용한 공원을 걸었다.

"아저씨, 우리가 이긴 거예요?"

"아직 끝난 게 아니야. 하지만 진짜 시작이지."


유나가 민우의 손을 잡았다.

"그럼 이제 사람들이 진짜 그림을 그릴 수 있겠죠?"

"응. 점수 걱정 안 하고, 자기 마음대로."

"좋아요!"


유나의 환한 웃음에 민우도 미소를 지었다.

고요한 공원에 두 사람의 웃음이 은은히 번져나갔다.


그때 스마트폰이 울렸다. 한수연으로부터였다.

"민우씨,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어요."

"어떤 변화요?"

"정부에서 감정 보호법 제정을 검토 중이래요. 그리고... AVA 시스템 전면 재검토도요."

민우의 심장이 뛰었다.


"정말요?"

"네. 오늘 일이 결정적이었어요. 박지원의 증언과 장현우 사건이 합쳐지면서..."

한수연의 목소리에 희망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더 좋은 소식이 있어요."

"뭔데요?"

"전국 곳곳에서 '진짜 감정 나눔회'가 열리고 있다고 해요. 유나의 방식을 따라서요.

이제 진짜 변화가 시작될 것 같아요."


민우는 유나를 바라봤다. 아이는 여전히 순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공원에 번진 그 미소가, 도시 전체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자정 무렵, 뉴스 속보가 흘러나왔다.


"장현우 작가 긴급 체포... 대중 안전 위해 혐의"
"감정 조작 기술 전면 금지 법안 발의"
"국제적 감정 조작 네트워크 및 리콜렉스 잔 세력 수사 확대"


민우는 공원에서 이 소식을 들었다.

"정말 끝난 거 같네." 민서가 말했다.

"응. 이제 새로운 시작이야."


그들의 곁에서 유나가 마지막 그림을 완성하며 말했다.

"이제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그림 그릴 수 있겠네요."


유나의 그림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 다른 색깔의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모두 다르지만, 모두 행복해 보였다.


민서와 민우의 얼굴에도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민우는 하늘을 바라봤다. 멀리서 새벽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마침내 긴 밤이 끝나고, 새로운 희망의 빛이 다가오고 있었다.




새벽 2시, 박지원은 홀로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는 오래전 서랍 깊숙이 숨겨 두었던 지수의 그림이 놓여 있었다.

숫자들이 춤추는 그림. 7은 구석에 수줍게 숨어 있고, 3은 따뜻하게 웃고 있었다.


"지수야... 이모가 잘못했어."

박지원은 그림을 가슴에 안고 울었다.

"너를 지키려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을 다치게 했어."

그때 스마트폰이 울렸다. 민우로부터였다.


"박지원 CEO님, 괜찮으세요?"

"민우씨... 저는... 저는..."

"천천히 말씀하세요."

"저는 지수를 배신한 거 같아요. 그 아이가 사랑했던 순수한 세계를 파괴해버렸어요."


"아니에요." 민우의 목소리가 따뜻했다.

"오늘 박지원 CEO님이 용기를 내서 진실을 말한 덕분에 더 많은 지수들을 구했어요."


"정말... 정말 그럴까요?"

"네. 지수도 분명 이모를 자랑스러워할 거예요."


박지원은 눈물을 훔치며 지수의 그림을 다시 바라봤다.

그림 속 숫자들이 마치 그녀를 향해 웃어주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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