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링크3 : 감정의 예술 #8

감정의 진실

by 디자이너 야니

일주일 후, 김도윤이 민우에게 급한 연락을 했다.


"민우씨, 큰일이에요."

"무슨 일이죠?"

"테라콘 내부 서버에 접근했는데... 충격적인 걸 발견했어요."

"어떤거죠?"

"만나서 얘기할게요. 전화로는 위험해요."


그날 오후, 민우는 김도윤을 만났다.

그의 얼굴에는 충격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이걸 보세요."


김도윤이 노트북을 열었다.

화면에는 복잡한 코드들과 데이터베이스가 나열되어 있었다.


"AVA 시스템의 숨겨진 기능을 발견했어요."

"숨겨진 기능이요?"

"감정 조작 프로토콜이요. AVA는 단순히 감정을 분석만 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조작하고 있었어요."


김도윤이 다른 화면을 보여줬다.

"사용자들의 감정 패턴을 추적해서,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원하도록 유도하고 있어요. 마치 중독물질처럼."

민우는 소름이 돋았다.


"더 심각한 건 이거예요."

또 다른 파일이 열렸다. '정화 프로그램 - 최종 단계'라는 제목이었다.


"정화 프로그램의 진짜 목적을 발견했어요."

"진짜 목적?"


김도윤의 목소리가 떨렸다.

"완전한 감정 박탈이에요. 개인의 고유한 감정을 모두 지우고,

AVA가 제공하는 표준화된 감정 패턴만 남기는 거예요."


화면에는 정화 프로그램을 받은 작가들의 뇌파 데이터가 나타났다.

모든 데이터가 거의 동일한 패턴을 보이고 있었다.


"이들은 더 이상 개별적인 인간이 아니에요. 같은 프로그램을 돌리는 기계들과 다름없어요."

"그리고 가장 충격적인 건..."

김도윤이 마지막 파일을 열었다.


"장현우의 '죽음 체험 프로젝트'예요."

화면에 나타난 문서의 제목은 '대중 의식 조작 실험 - Phase Final'이었다.


"장현우의 죽음 체험 작품이... 실험이라는 거예요?"

"네. 대규모로 사람들에게 죽음 충동을 심어서, 그들의 행동 변화를 관찰하는 거예요. 최종적으로는..."

김도윤이 손가락 끝으로 화면을 가리켰다.


"사회 전체를 통제 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게 목표예요."

민우는 박지원에 대한 믿음이 완전히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더 무서운 건, 이게 박지원 CEO만의 계획이 아니라는 거예요."

"무슨 말이에요?"

"배후에 더 큰 조직이 있어요. 리콜렉스의 잔존 세력들..."




그날 밤, 민우는 민서에게 모든 것을 털어놨다.

"박지원 CEO를 믿었던 내가 바보였어."

"아니야, 민우야. 박지원 CEO도 처음에는 진심이었을 거야. 하지만..."


민서가 자료를 다시 살펴보며 말했다.

"이걸 보니, 박지원 CEO도 조종당하고 있는 것 같아. 지수에 대한 트라우마를 이용당한 거야."

"어떻게?"

"지수 같은 비극을 막겠다는 선의를 이용해서, 점점 더 극단적인 통제로 이끌어간 거지."


민서의 분석이 계속됐다.

"리콜렉스 잔존 세력들이 박지원의 상처를 파고들어서,

'완벽한 통제야말로 진짜 보호'라고 세뇌시킨 거야."

"그럼 박지원 CEO도 피해자라는 말이야?"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일어나는 일들이 정당화되지는 않아."




다음 날, 민우는 박지원에게 직접 연락했다.

"박지원 CEO님, 만나서 얘기할 수 있을까요?"

"무슨 일이세요?"

"정화 프로그램의 진실에 대해서요."


전화 너머로 긴 침묵이 흘렀다.

"...알겠습니다. 만나죠."




민우는 카페에서 박지원을 만났다.

그녀는 전과 달리 많이 지쳐 보였다.


"민우씨, 뭘 알고 있는 거예요?"

"감정 조작 프로토콜, 대중 통제 실험, 그리고 정화 프로그램의 진짜 목적까지."


박지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어떻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중요한 건 이게 진짜냐는 거죠."


박지원은 한참을 침묵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왜 그런 일을 했어요?"

"처음에는... 처음에는 정말 지수를 위해서였어요."


박지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수의 세계를 이해하고 싶어서 네오링크를 개발했지만, 결국 그 아이를 구하지 못했어요.

그 죄책감이... 그 죄책감이 저를 점점 극단으로 몰아갔어요."


"무슨 극단이요?"

"완벽한 세계를 만들고 싶었어요. 더이상 지수같은 사람들이 고통받지 않는,

모두가 통제된 행복 속에서 사는 세상."


박지원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런데 그러려면 사람들의 감정을 통제해야 했어요.

부정적인 감정을 제거하고, 긍정적인 감정만 남기는..."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정말 믿었어요. 하지만..." 박지원이 손목시계를 꽉 움켜쥐었다.

"결과는 정반대였어요."

"어떻게?"

"사람들이 더 공허해졌어요. 진짜 감정을 잃어버리고, 기계가 주는 가짜 감정에만 의존하게 됐어요.

마치... 마치 지수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며칠처럼."


박지원이 계속했다.

"그래서 더 강한 자극을 찾게 됐어요. 죽음까지도."

"장현우의 프로젝트도 당신이 승인한 거예요?"


박지원이 고개를 숙였다.

"리콜렉스 사람들이... 그들이 제 상처를 이용했어요.

'이번이 마지막이다, 이것만 성공하면 지수 같은 비극은 영원히 사라진다'고 속삭였어요."


"그래서?"

"저는... 저는 바보였어요. 지수를 구하겠다는 마음이 결국 더 많은 지수들을 만들어냈어요."


박지원이 시계를 풀어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뒷면의 '이모에게-지수'라는 글자가 희미하게 보였다.


"민우씨... 도와주세요. 이 모든 걸 멈출 수 있게."


그 순간, 카페 문이 열리며 장현우가 들어왔다. 하지만 그의 뒤에는 낯선 사람들이 함께 있었다.


"박지원 CEO님, 약속과 다르네요."

장현우의 목소리가 차가웠다.


"뭐가 약속과 다르다는 거죠?"

"윤민우와 접촉하지 않기로 했잖아요."


그때 장현우 뒤의 한 남자가 나섰다.

50대 정도로 보이는,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였다.


"안녕하세요, 윤민우씨. 전 리콜렉스 이사 송현철입니다."

민우는 그 이름을 기억했다. 2년 전 기억 조작 사태의 주범 중 한명이었던 인물.


"또, 리콜렉스가..."

"네, 맞습니다. 그런데 오해가 있는 것 같네요."


송현철은 의자를 당겨 앉으며 말했다.

"저희가 악역이라고 생각하시는 모양인데, 사실 저희야말로 진정한 예술의 수호자입니다."


"무슨 말이에요?"

"순수한 감정, 극한의 체험, 진짜 예술... 이 모든 것을 추구하는 건 저희거든요."


송현철이 장현우를 가리켰다.

"장현우 작가 같은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예술가죠.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도 극한의 감정을 구현하는."


"그건 예술이 아니에요." 민우가 분노했다.

"그럼 뭐가 예술인가요? 당신처럼 안전하고 평범한 감정을 그리는 게?"


송현철은 비웃었다.

"민우씨, 현실을 보세요. 사람들은 자극을 원해요. 평범한 일상에 지쳐있거든요."


박지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송현철 이사님... 이건 제가 원했던 게 아니에요."

"하지만 CEO님이 승인하셨잖아요. 지수를 위해서라고 하시면서."


송현철의 말에 박지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제발... 지수를 이용하지 마세요."


"이용이 아니에요. 지수 같은 특별한 아이들을 보호하려는 거죠.

그들의 감정을 완벽하게 보존하고 재현하는 게 저희 목표거든요."


민우의 얼굴이 굳었다.

과거엔 기억을 조작하려 했던 리콜렉스가, 이제는 감정까지 손에 넣으려 하고 있었다.


"당신들의 목표는 예술이 아니예요. 통제일 뿐이지."

"통제와 예술이 다르다고 생각합니까?" 송현철이 반문했다.

"날것의 감정은 사람을 파괴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불필요한 고통을 제거하고, 순수한 아름다움만 남기는 거예요. 그게 더 나은 예술 아닙니까?”


그때 갑자기 카페 밖에서 소란이 일었다.

"무슨 일이지?"


창밖을 보니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스마트폰을 들고 뭔가를 촬영하고 있었다.


한 사람이 카페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장현우 작가의 신작 체험자가 의식불명 상태로 쓰러졌어요! 지금 구급차가..."


장현우의 얼굴이 굳었다.

"뭐라고?"

"'구매한 죽음 체험' 작품을 체험한 사람이 갑자기 쓰러져서..."


송현철이 일어났다.

"일단 이 자리는 여기서 끝내죠."


그들이 급하게 떠나자, 박지원과 민우만 남았다.

박지원이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민우씨... 장현우의 작품으로 벌써 3명이 의식불명 상태예요."

"드디어 터진 거네요."

"이제... 이제 정말 모든 걸 공개해야겠어요."


박지원이 USB를 민우에게 건넸다.

"여기 모든 증거가 들어있어요. 정화 프로그램의 진실, 감정 조작 계획, 리콜렉스와의 연결고리까지."

"정말... 정말 괜찮아요?"

"지수라면... 지수라면 이렇게 하라고 했을 거예요."


박지원이 시계를 다시 차며 말했다.

"이제 진짜 지수를 위한 일을 시작할 시간이에요."


민우는 USB를 손에 꼭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창밖에서는 구급차의 사이렌이 울리고 있었다.

그 날카로운 소리가 오래된 종소리처럼, 새로운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이전 09화네오링크3 : 감정의 예술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