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안 Jul 05. 2021

삶의 바다 속에서 노인을 그리다.

천박함과 비열함에 맞선 당신에게…

노인은 상어의 머리통을 겨누었다.
그리고 두 눈 사이의 줄무늬와 코에서 뒤로 똑바로 올라간 줄무늬가 교차되는 지점에 작살을 꽂았다.
그때 상어의 가죽과 살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노인의 눈앞에는 그저 크고 날카로운 푸른 머리와, 커다란 눈과, 거친 이빨을 찰칵거리며 무엇이나 삼켜 버리는 툭 튀어나온 주둥이가 보일 뿐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곳이 상어의 골이 있는 위치였고, 노인은 있는 힘을 다해서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작살을 내리쳤다.
희망은 없었지만 무서운 결의와 철저한 증오심으로 작살을 꽂았다.

<노인과 바다> 중

노인과 바다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다.

어쩌면 수십 번째 읽고 있을지도 모르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이지만,

여기에서는 반복해서 읽고 곱씹을 수밖에 없다.

읽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여기에 멈추어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철없는 객기로 처음 읽었을 때 ‘노인과 바다’는 허탕을 친 느낌이었다.

대단한 작품이라고 읽었건만, 오랫동안 고기를 잡지 못한 어부 노인이 바다에 나가 고생하여 고기를 잡았지만 상어 떼에게 빼앗기고 돌아온다는 내용뿐이었다.

도무지 이것이 왜 감동을 주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 어느 날인가 책을 읽으면서 전율이라는 것을 경험했다.

단호하고 명료한 문장으로 삶을 저며내는 듯한 치열함은 내면 깊숙이 스며들었다.

노인의 낚시는 단순히 낚시가 아니었다.

삶이었다.


삶의 경험이 미천했던 시절, ‘노인과 바다’를 이해하기에는 밑천이 부족했던 것이다.

강한 상대에게 존경을 표하는 노인 -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대상에게 굴복하는 것이 아닌 자신을 시험할 수 있는 호적수로 바라보는 시선,

역경을 이겨내고 강한 상대를 극복해내고야 마는 근성,

삶을 고양시키기 위해 스스로 자신과 대등하거나 혹은 더 강한 상대와 투쟁하는 노인의 삶!

투쟁하고 이겨내는 우리의 삶, 그 자체였다.



소설을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어려운 삶의 시기를 지나, 고난을 극복하고 세상과 맞서 승리하는 순간은 고작 한두 페이지사이의 시간에 묻혀버린다.

존경하는 강한 물고기를 상대로 한 험난한 투쟁의 시간과 승리의 순간이 지나가고,

곧 비열하고 천박한 방법으로 승리의 역사를 강탈하려는 존재들과 투쟁이 다시 한번 시작된다.


그러한 비열하고 천박한 상어 무리에게 노인은 결의 찬 작살을 내던진다.

찢어진 손으로, 유일한 무기인 작살을 들고,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망망대해에서,

노인은 있는 힘을 다해서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작살을 내리친다.

희망은 없었지만 무서운 결의와 처절한 증오심으로 작살을 내리꽂는다.

이길 수 없을지라도 비열하고 천박하게 약한 자를 뜯어먹으려는 상어에게 작살을 던진다.


치열한 투쟁을 통해 얻어 낸 노력의 결과물을 뜯어먹기 위해 몰려드는 안이한 삶을 살아가는 무리들에게

노인은 작살을 내던진다.


 


삶이 쌓일수록

삶의 무게가 쌓여갈수록 상어와 같은 존재들이 삶의 곳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때로는 비열하고 천박한 삶을 살아가는 그들에게 노력과 투쟁의 결과를 허무하게 빼앗길 때도 있다는 것을 체험하기도 했다.

의 바다 위에서, 비열하고 천박한 무리를 만날 때마다 노인의 결의  목소리를 끄집어낸다.

이길 수 없을지라도.

“싸우는 거야.” “죽을 때까지 싸울 거야.”


그런데 만약 한밤중에 상어가 덤벼들면 어떻게 하지?
이제 어떻게 한단 말인가.
“싸우는 거야.”
노인은 말했다.
“죽을 때까지 싸울 거야.”
<노인과 바다> 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