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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안 Aug 25. 2021

이제 100번도 안 남았어!

배부른 개미의 세상살이

친구는 정말 열심히 산다.

‘아둥바둥’이라 표현되는 열심히가 아니라 삶을 알차게 꽉꽉 채워서 살고 있다.


친구는 매년 필리핀으로 다이빙 여행을 떠날 만큼 다이빙을 좋아했고,

고전 영화에 있어서는 어지간한 전문가 뺨칠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뿐이랴 취미로 배웠다는 프로그래밍 실력은 현직 개발자로 일하는 다른 친구가 혀를 내두를 수준이었다.

그 외에도 손대는 모든 일에 열정을 쏟아부었다.

지칠 만도 한데 점점 그 열정이 불타오르는 듯 보였다.




언젠가 그의 생일 다음 날이었다.

저녁을 함께 먹고,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대수롭지 않게 물어봤다.

왜 그렇게 열심히 사느냐고…


뜬금없이 핸드폰의 계산기를 보여주었다.

70에서 자기 나이를 빼더니 나를 보여주며,

아무런 변고가 없다는 가정하에 남은 생애 동안 필리핀으로 다이빙을 갈 수 있는 기회의 횟수라 했다.

머리가 띵했다.

그 숫자는 절대 큰 숫자가 아니었다.

남은 기회가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하자 갑자기 내 마음도 급해졌다.


뭔가를 계산을 하더니 다른 숫자를 보여주었다.

이번엔 숫자가 꽤 커졌다.

모든 일이 순탄하게 흘러갔을 때, 자신이 방에 편하게 앉아 영화를 볼 수 있는 횟수라 했다.

영화를 볼 수 있는 횟수가 저것밖에 안된다는 생각을 하니 더 이상 숫자가 크게 보이지 않았다.


언젠가 우연히 남은 생애 동안 평범한 일상을 몇 번이나 더 할 수 있는지 계산을 해봤다고 한다.

나와 같이 자신도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매주 한 번 할 수 있는 일은 아무런 변고가 없어도 1년에 52번,

한 달에 한 번 할 수 있는 일은 아무런 변고가 없어도 1년에 12번,

일 년에 한 번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1번 할 수 있었다.




나는 스키를 좋아한다.

한 때는 시즌권을 끊고 시즌버스를 타고 락커를 받아 출퇴근하듯 살았던 때도 있었다.

이제는 그때만큼 열심히는 못 타지만 그래도 1년에 한 번 정도는 가려고 한다.

1년에 한 번 간다고 했을 때 이제 내가 쓸 수 있는 기회는 30번 남짓이다.

벌써 코로나로 2번의 기회가 사라졌다.

스키장에서 느끼는 기쁨은 이제 내 생애 30번 남짓 남은 감정이란 의미다.


그렇게 대입하고 보니, 삶이 한 조각 한 조각이 모두 아깝게 느껴졌다.

이제 남은 생애 동안 읽을 수 있는 책은 한정적이고,

매년 명절에 겨우 얼굴을 보며 나이를 잊고 노는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만남은 몇 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의 생일 케익을 사러 가는 일, 어린이날 과자파티… 등등 모든 것이 몇 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대부분의 이벤트가 이제 100번도 채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그 경험을 하면서 느끼는 감정은 내 삶에서 100번 이상 경험을 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그날 이후 나도 조금 바뀌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100번도 남지 않은 일이었다.

내일 똑같이 계속해서 반복될 거 같은 하루였지만, 내게 주어진 기회는 사실 얼마 남지 않았다.

왜 그렇게 믿고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내일도 오늘과 같이 반복되리라 믿고 살아왔었다.


100번도 채 남지 않은 기회를 제대로 만끽하고 싶다.

100번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더라도 후회 없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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