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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엔 Dec 11. 2020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어떻게 홍콩에 왔더라

글을 조각조각 쓰다가 결국 끝내지 못해, 홍콩에서의 내 소중한 나날들도 브런치에 담지 못했다. 최근 우연히 핸드폰 용량을 정리하다 발견한 음성 녹음을 들은 후 2-3일 간의 악몽을 시달리고 나서야 이 글은 한 10년쯤 지나 일하는 나의 자아가 확실해지고, 커리어우먼으로의 내 입지가 확실해져야 객관적으로 마무리지을 수 있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래 뒤죽박죽인 글은 내 정리되지 않은 마음을 그래도 기록으로 남겨두어야 한다는 의무감의 산물이다.


가끔 생각을 글로 남겨보면서 나는 왜 이걸 브런치에 남기고 싶어 했을까 한 번씩 되돌아봤다. 처음은 너무 억울한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나는데 정작 우리가 '가해자'라 칭하는 그 사람에게는 아무런 영향이 없었던 것에 대한 분노였다. 내 상황을 알지만 선뜻 해결책을 줄 수 없는 주변인에게 하소연하는 것 말고, 그냥 내가 누군지도, 또 그가 누군지도 모르는 곳에 불만을 토로하고 싶었다.


또, 어쨌든 나는 퇴사를 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고민과 방황을 하였으니 누군가에게는 조금이나마 힘이 되거나 새로운 결정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가스 라이팅'이 뭔지도 잘 모르던 때에 나 역시도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사례와 댓글을 보며 이게 정상적인 구조는 아니라는 걸 어렴풋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정말 많은 비난의 목소리를 그에게 들어왔는데, 맘 속에 자리 잡은 '너네는 이렇게 일하면 다른 데 가지도 못해. 누가 너네를 뽑아주겠니?', '초등학생을 앉혀놔도 이것보단 잘하겠다.', '잘 모르겠으면 그냥 생각을 하지 마. 하라는 대로 해.'와 같은 비난은 어느새 '내가 하는 건 잘못된 선택'이라는 결론을 만들었고, '진짜 다른 데서 날 안 받아주는 거 아냐?'라는 의심은 나 자신에게 향했다.


생각보다 쉽게 한 사람을 특정하는 세상이라 세세하게 기록하지 못한 것들이 많았는데, 오늘은 그냥 조금은 더 세세하게 기록하고 싶어 졌다. 그에게 상처 받아 팀을 떠나거나 회사를 떠난 이가 곧 10명을 채운다. 그럼에도 여전히 피해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결정보다 보직자를 비보직자로 변경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더 크게 느낀다. 그래서 여전히 그는 그 어떤 것도 피해 입지 않았다. 징계가 나중에 내려진다 한들 그 징계는 표면적일 뿐 그에게 어떤 해도 입히지 못할 것이다. (자존심에 스크래치? 정도면 모를까)


빠르게 진급한 '팀장'이자 연말마다 2-3개의 팀을 골머리 앓게 하고, 어떤 사람에겐 연필을 집어던지고, 많은 사람에게 윽박지르고, '가만 안 둬', '맞으면 정신 차려', '똑바로 안 해?'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 그를 보며 '녹음한 자료 없어요?', '여자 사회 초년생이라서 그런 반응인 거 아냐?', '정말 그랬니?'라는 윗사람들의 반응은 모든 게 의미 없다는 걸 깨닫게 했고, 더 기가 막힌 건 '진짜로 녹음 파일을 갖고 왔다면 너한테 실망했을 거야.'라는 말도 안 되는 태도였다.   


결국 잘못을 고하는 일은 의미가 없으니 시작하지도 말았어야 했다는 뜻일까? 이 모든 건 공공기관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래서 아주 낱낱이 고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그래도 나는 피해자인 한 개인이기에 그냥 모른 척,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어 다른 회사로 이직한 척, 아무 일도 없었던 척만 하기는 너무 억울하다. 모든 것을 '우리 애들이 아직 뭘 몰라서 너무 힘들어요'라며 직원의 탓으로 돌리는 그 팀장은 정말 그 모든 표현이 결국 자신의 리더십 부족을 까발릴 뿐이라는 걸 몰랐을까.

그는 알까, 얼마 전 현아에게도 나타났다던 '미주 신경성 실신'이 2년 넘게 병원을 드나들고 홍콩에서 3번이나 실신을 한 이후에나 발견한 내 병명이라는 걸. 나는 그 기사를 보고서야 내가 앞에 겪은 증상들이 공황장애인가 의심해보기 시작했다. 단지 어지럼증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그저 내 몸 상태에 무뎠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제 아예 떠나왔고 그 회사에서의 정의 구현 같은 건 믿지도 않으니, 딱 올해까지만 고생하고 내년부터는 기적처럼 그 회사를 입사하기 전 건강한 내 모습을 되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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