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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년필 May 08. 2022

초록색 눈동자

시험이 끝나고 돌아왔습니다. 한동안 못올려서 죄송합니다!

 초록색 눈동자는 여름에 불어닥치는 숲의 살인적인 동요를 담고 있다. 가지들 위에 몰아치는 짙은 회색 구름들, 그 위를 필사적으로 달리며 비는 바늘 같은 은빛 비를 흩뿌린다. 폭풍우가 몰려오는 숲의 아래에서 들리는 소리는 하늘을 할퀴어대는 가지들의 비명과 짙어가는 초록이 만들어내는 공명이다. 천둥이 풍경을 두 갈래로 찢어내면 그 틈으로 세어 나온 빗물과 숲의 향내가 바다를 이루어 여름을 펼치고 펼친다. 불안한 계절이다. 균열과 그 틈 사이로 흘러가는 것들이 용솟음치고 달려 나가 괴성을 지른다. 잎사귀들이 속삭이는 소리가 길고 낮게 웅성거리고 가지가 바람에 흔들려 둥글게 그리는 타원의 움직임은 언뜻 보았을 때 죽어가는 사람의 마지막 손짓처럼 보인다. 그러면 뒤를 돌아 달려서 그 형상으로부터 도망칠 수밖에 없다.

 죽어가는 사람의 얼굴 위에는 녹빛이 돈다. 생명이 빠져나가 우리가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면 그 녹빛은 흙이 피워냈던 나무의 얼굴이 엿보이는 것일까 궁금했다. 죽어가는 사람 앞에 가까이 마주 보니 그 눈동자가 짙은 초록색이었다. 여름의 광기 어린 움직임들과 소리가 흘러나와 우리 곁의 어둠을 몰아내고 낮은 웅성임과 높은 비명을 질러댈 것 같지만 지금 순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으며 어둠은 줄곧 그 자리를 지켰다. 죽어가는 사람의 눈동자만 소리 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 속에 감춰져 있던 침묵이 요동하지 않고 소리치지 않으면서 가장 크게 펼쳐나가 어둠 위를 달려갔다. 도로 밖에는 차들이 도로에 떨군 빛들이 긴 그림자를 사선으로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 어둠과 빛의 선이 발을 구르며 달렸다. 서로 만나고 합쳐지다가도 갈라졌고 그 길게 뻗은 선이 밤의 손에 소멸하기까지 그 빛과 옅은 회색의 그림자들은 달려 나갔다. 그러다가 호수 위에 빠져 죽은 불꽃처럼 연기를 내며 사그라들었다. 그날 하늘이 연기의 일렁임으로 가득 차 뿌옇게 흐려져 있었다. 마치 아침을 고대하며 피워낸 안개처럼.

 초록색 눈동자가 펼쳐낸 침묵이 빛과 어둠의 사선들을 가로질러 나아갔다. 그가 지나가자 빛과 어둠의 올곧았던 선들이 부서져 파편이 되었다. 그 파편들이 비처럼 내렸고 침묵은 계속해서 달렸다. 모퉁이를 돌아 바람을 따라잡고 달렸다. 벽들이, 건물들이, 그들의 그림자가 침묵의 발목을 잡아당겼지만 침묵은 가뿐히 벽들을 뛰어넘고 짧은 걸음만 남겨놓았다. 그리고 흙길에 들어섰다. 나는 그가 어디로 향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눈으로 그의 뒷모습을 좇았다. 그는 도로를 가로지르고 풀숲으로 들어섰다. 그제야 알아챘다. 그가 다시 그때 모든 것의 시작이었던 폭풍 어린 여름으로 돌아갔다는 것을. 나는 숲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렇다면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니까. 나는 풀숲 속에 서서 뛰어가는 침묵의 마지막 걸음을 보았다. 그는 이윽고 나무들이 빚어놓은 그림자 속에 녹아들었다. 짙은 풀향기, 비 냄새처럼 시고 강렬하지만 바람의 냄새처럼 높게 나는 향기가 어금니 안쪽에 맴돌았다. 그리고 멀리서 숲의 소리가 들려왔다. 높게 치솟으면서 하늘을 기어오르려는 가지들의 외침과 낮게 웅성거리는 잎사귀의 소리, 여름 새들의 합창소리가 땅과 하늘 사이를 오르내리며 메아리쳤다. 무엇을 노래하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 초록색과 누군가의 죽음과 여름의 광기를 노래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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