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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킹대드 Working Dad Jan 02. 2022

취향 찾아 삼만리? 아니 법흥리!

취향저격 맞춤형 집짓기

꼭 비싼 브랜드가 아니더라도 나한테 잘 어울리고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옷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냥 그렇다고 하는데 유난히 내 입맛에 맞는 식당이 있고, 평점 최악의 영화를 보며 나 홀로 큰 감동을 느끼기도 합니다. 바로 취향 때문이지요. 사람은 저마다의 취향이 있고, 가능하면 내 취향을 저격하는 소비를 우선하게 됩니다.


그런데, 소비의 대상이 고관여 제품이 될수록, 가격이 비쌀수록 취향을 반영하기가 어렵습니다. 치약, 화장품, 옷과 같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소비재를 구매할 때는 얼마든지 내가 좋아하는 제품을 쉽게 선택할 수 있고, 새로 나온 제품을 사용해 보면서 취향 최적화를 시도해 볼 수도 있지만, 자동차를 구매할 때는 그러기가 어렵습니다. 취향보다는 가성비가 우선이 되는 경우가 많죠.


집은 더합니다. 워낙에 고가인데다, 출퇴근 및 학군을 고려한 위치, 대출 가능 여부, 투자 가치 등 다양한 가치 판단 기준이 더해지다 보니, 거기에 취향까지 추가하기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특히나, 부동산의 투자 가치가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는 아파트라는 형태가 갖는 주거 목적의 특성상,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주거형태가 획일화될 수 밖에 없고, 개인의 취향을 반영한 주거 공간을 갖는다는 개념은 상당히 낯설게 느껴집니다. 이러한 사회 시스템 속에서는 나에게 맞는 주거공간을 만드는 것보다는 만들어진 공간에 나를 끼워 맞추는 편이 훨씬 쉽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집을 짓는다는 결정은 단순히 생활의 편의성을 높이고 싶은 욕심을 넘어, 나와 우리 가족의 취향을 주거 공간에까지 반영하여 삶에 대한 주체성을 한층 더 높였을 때 삶에 대한 만족도와 행복감이 더 올라가지 않을까 하는 초대형 블록버스터급 테스트입니다. 테스트라는 단어는 완성된 결과가 아니라, 리스크를 동반한 과정을 의미합니다. 공사 중간에 도망가는 시공사, 준공 1년도 안 되어 발생하는 누수와 곰팡이, 대출 규제로 인한 자금 압박, 아파트에 비해 현저하게 저평가되는 주택의 부동산 가치 등등 집짓기의 과정과 결과에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는 다양하고, 발생했을 때 감내해야 하는 고통의 크기도 남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족이 집짓기라는 과감한 테스트를 진행해보기로 결정한 건 우리가 원하는 주거 형태를 담은 집이 완성되고, 이후 5년, 10년, 혹은 남은 여생을 그 집에서 보내는 상상을 했을 때 기대되는 행복감의 크기가 리스크보다 훨씬 크게 느껴졌기 때문인데요, 우리 가족이 상상하는 가까운 미래의 우리 집은 대체로 이런 모습이 될 것 같습니다. 




공방 품은 집

저는 직장인이고, 아내는 플라워 공방을 운영하는 자영업자입니다. 아내가 사업을 시작한지는 벌써 7년차에 접어들었고, 사무실을 임대해서 정식으로 공방을 오픈한건 만 4년이 되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상가에 좋은 자리를 얻어 출퇴근 부담을 줄이고, 육아와 가사를 사업과 병행할 수 있었지만, 다달이 나가는 임대료에 대한 부담이 꽤 컸습니다. 


그래서 법흥리에 지어 질 우리 집에는 아내를 위한 공방 공간을 만들기로 했는데, 앞으로는 월세 걱정 없이 편한 마음으로 예술혼을 불태울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공방 바닥은 카페 느낌이 나도록 에폭시로 시공할 계획인데, 타일이나 장판에 비해 오염도 덜하고 청소도 용이해서 여러모로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것 같습니다. 


공방의 한쪽면은 마당에 접하게 하고, 폴딩도어를 설치하기로 했습니다. 날이 좋은 봄과 가을에 폴딩도어를 열어 놓으면 마치 자연 속에서 작업하는 기분이 들 것 같습니다. 겨울에는 마당에 소복히 쌓인 눈을 보며, 장마철에는 빗소리를 음악 삼아 일할 수 있으니 꽤 로맨틱한 공간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제가 일할 곳도 아닌데 자꾸만 설레입니다. 


2017.12 디뮤지엄에서 강의하는 아내 



마당이 있는 집

지난 가을, 대학 동기들과 1박 2일 캠핑을 다녀왔습니다. 평소, 귀찮고 번거로운 것은 딱 질색이라 캠핑 다니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 했는데요, 복잡한 머리를 비우려 잠시 일상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캠핑에 진심인 친구를 따라 다녀온 짧은 여행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연 속에서 보낸 그 하룻밤의 기억이 무척 좋았습니다. 차가운 밤공기를 데워주는 술 한 잔, 모닥불 만큼이나 환하게 빛나는 별들, 이목구비를 깨끗하게 정화시켜 주는 피톤치드. 기회가 된다면, 아내와 아이들에게도 꼭 한 번 이런 즐거움을 맛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캠핑장을 떠나기 위한 뒷정리였습니다. 캠핑장에 도착해서 텐트를 치고, 음식을 만들고, 술 마시고 놀 때는 좋았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쓰레기를 처리하고, 텐트와 캠핑 장비를 다시 정리하는 이 시간이 어찌나 불편하고 귀찮던지... 내 성격에 다시는 캠핑 올 일이 없겠구나 싶었습니다. 저보다 2배, 아니 3배는 귀찮고 번거로움을 싫어하는 아내는 두 말 할 나위 없을 거고요.


하지만, 우리 집 마당에서 하는 캠핑이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마당에 작은 텐트를 쳐놓고 모닥불을 피우고 고기를 구워먹고 놀다가 잠은 편하게 각자의 방에서, 씻고 설거지하는 것도 편하게 집에서, 뒷정리는 텐트만 다시 접으면 되니, 이 얼마나 편리하고 쾌적한 캠핑인가요? 옷에 배긴 모닥불 탄내를 귀신같이 맡은 큰 아들놈이 아빠만 캠핑 다녀왔다고 타박이 심했는데, 우리 집이 생기면 마당에서 원없이 캠핑 놀이를 즐길 참입니다.


이미지 출처 : country living magazine



함께와 따로가 동시에 가능한 집

결혼과 출산은 큰 기쁨이고 행복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하는 식사 시간, 놀이 시간은 저에게도 큰 즐거움이고, 삶을 지탱하는 기둥이자 더 열심히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의 원천입니다. 하지만, 가끔은(사실은 자주...)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조용히 책을 읽거나 사색에 잠기고, 좋아하는 TV쇼를 보다가 스르르 낮잠에 빠져들고 싶습니다. 


그런데, 모든 주거공간이 연결되어, 어디에 있든 가족의 시선과 소리가 공유되는 아파트에서는 (50평쯤 되는 대형 평수의 아파트가 아닌 이상) 집 안에서 오롯이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갖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법흥리에 자리할 우리 집은 온 가족이 함께하면서도 필요할 때는 각자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구조와 형태로 지어질 예정입니다. 


이미지 출처 : the daily mash


전체 층수는 2층인데, 1층에는 공방과 키친, 다이닝룸이 있고, 안방과 아이들방, 서재, 테라스 등의 나머지 공간은 모두 2층으로 올리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방과 서재를 아치형 게이트로 연결시킬 건데, 문을 열어 놓으면 넓직한 놀이 공간이 되고, 문을 닫으면 2개의 분리된 공간이 됩니다.


이렇게 하면 아이들이 2층 놀이공간에서 노는 동안, 아내와 저는 1층 다이닝룸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고, 아내와 아이들이 1층에서 시간을 보낼 때, 저는 2층 서재나 테라스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아내가 일을 하지 않는 날은 공방을 까페삼아 조용히 책을 읽을 수도 있고, 햇살이 좋은 날은 마당에서 휴식을 취하며 일광욕을 즐길 수도 있습니다. 


가족공동체의 온기를 품고서도 고독의 희열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집, 저뿐만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꿈꾸는 공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시간의 흐름을 담아내는 집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은 변화합니다. 지금은 초등학생이라 매일같이 엉겨붙어 있는 두 아들이 몇 년만 지나면 청소년이 되어 각자의 프라이버시를 원하겠지요. 2층의 아이들방과 서재를 연결시켜 놓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아직 어린 지금은 두 아들이 함께, 때로는 저와 아내도 같이 생활할 수 있는 넓은 공간으로 활용하고, 나중에 각자의 공간을 필요로 하는 때가 되면, 서재를 아이방으로 만들어 각자 자신만의 공간을 가질 수 있게 하려고요.


아내가 나이를 먹어서, 혹은 커리어에 변화가 생겨서, 지금의 공방을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공방 공간을 가족 전용 스터디카페 공간으로 이용할 수도 있겠고, 먼 미래에 아이들이 장성해서 집을 떠나는 시기가 되면, 공방을 에어비앤비 공간으로 활용해서 아이들의 빈 자리를 여행객들로 채우고, 낯선 이들과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따뜻한 노후를 보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마당에는 나무를 몇 그루 심을 생각입니다. 계절마다 옷을 바꿔입고 해마다 키가 자라는 걸 보고 만지면서 세월의 흐름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아이들이 사회 생활을 위해 우리 부부 곁을 떠날때 쯤이면 지금 심는 나무들의 키가 꽤나 커져 있을 것 같은데요, 부모 그늘 없이 치열하고 각박한 현실 세계를 살아가고 있을 아이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나무를 돌보다 보면 하루하루가 즐겁고 힘이 날 것 같습니다. 



To be continued 




집짓기 Lessons Learned_참고 도서 목록


토지 매입 계약을 하고, 설계사무소와 함께 주택 설계를 진행하는데 큰 참고가 되었던 참고 도서 3권의 정보를 남깁니다. 


1. 집짓기 바이블

이 책은 단순히 집짓기에 필요한 정보만을 제공하는 책이 아니라, 집짓기가 건축주에게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건축주가 집을 지을 때 어떤 위험에 노출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건축주의 마음가짐을 다질 수 있는 아주 좋은 책입니다. 2012년에 초판을 발행하여 2021년에 3판 4쇄를 발행할 정도로 꾸준히 인기있는 집짓기 책인데요, 그러다 보니 사례로 언급되는 주택의 인테리어나 구조가 요즘의 최신 트렌드에는 맞지 않는 부분도 더러 있지만, 개정판을 내면서 추가된 듯한 사례들은 충분히 좋은 참고 자료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 후회없는 집짓기를 위한 설계 A to Z

집짓기 바이블과 비교하면 훨씬 더 실용적입니다. 다양한 사례와 구체적인 이미지 자료를 통해 일반인들도 쉽게 주택의 구조와 형태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정보 나열식 도서의 특성상, 목차를 보고 나에게 필요한 정보만 쏙쏙 찾아볼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읽을 만한 책으로서의 가치는 덜 합니다. 


3. 최고의 주택 평면

주택 평면 설계도를 일반인들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귀여운 이미지로 그려서 다양한 주택 구조를 설명한 책입니다. 사례는 많지만, 실제 이미지가 부족해서 구체적으로 머리 속에 집의 구조를 그려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권하는 이유는 주택 구조를 설계할 때 참고가 될 만한 몇 가지 중요한 포인트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같은 경우에는 공동드레스룸이 그것인데요, 방마다 옷장을 둘 필요 없이 가족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드레스룸을 만들면 공간을 절약할 수 있고, 또 공동드레스룸 옆에 세탁실을 두면, 세탁 후 방마다 옷을 가져다 둘 필요가 없기 때문에 가사 노동의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조언이 있었습니다. 이 부분은 저와 아내 모두 깊게 공감한 부분이라 우리 집 설계에도 반영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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