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R 직무로 커리어를 시작하고 싶다는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아빠레터]는 십여년 뒤에 사회생활을 시작할 두 아들에게 아빠가 먼저 도전하고 경험하며 배우고 깨달은 것들을 편지글로 적어 미래로 보내는 타임캡슐입니다.
아들아, 최근에 취업 준비를 하면서 여러 기업에 HR 직무로 지원을 했다는 말을 듣고 아빠는 내심 기분이 좋았단다. 아빠도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첫 직무가 HR이어서 아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을 것 같아서 말이야.
사람들마다 HR이라는 조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겠지만, 아빠는 지금도 'HR은 기업의 심장'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심장은 온 몸 구석구석에 신선한 산소를 머금은 혈액을 보내주는 역할을 하는데, 기업의 모든 조직에 필요한 인재를 제 때 보내주고, 또 그들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돕는 HR의 역할이 심장이 하는 일과 아주 비슷하다고 생각했거든.
다만, 심장이라고 다 같은 심장이 아니듯, HR이라고 다 같은 HR은 아닐거야. 심장이 제대로 작동해야 몸 속에 혈액이 제대로 공급될 수 있는 것처럼, HR이 제대로 일을 하지 않으면 그 기업은 금방 위태로워질 수 있지. 그런데, HR이 일을 잘 한다는 건 어떤 걸까?
물론, 회사마다 추구하는 사업 전략이 다르고, 그에 따라 HR의 운영 방향성도 차이가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HR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 응당 가지고 있어야 할 마음가짐과 기본 자세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빠가 예전에 HR을 하면서 경험하고 마음에 새겼던 몇 가지를 적어 봤으니 시간 날 때 가볍게 읽어 봐 주면 좋겠다.
맨 처음에 나온게 '개인 정보 보호'라니... 이게 왜 맨 앞에 나왔는지 의아하지? 아빠는 처음 HR 조직에 배치 받았을 때, 팀에서 받은 첫번째 교육이 임직원들 개인정보에 대한 철저한 보안이었어. 아빠도 처음에는 이게 따로 시간을 내서, 그것도 가장 먼저 교육을 받아야 할 정도로 중요한 건가...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말이야,
시간이 흐르고 연차가 쌓이면서 늘상 직원들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다루다 보면 어느샌가 내가 취급하는 개인정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이고, 잘못 관리 했을 때 얼마나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지 자꾸 잊어버리게 되더라고.
나중에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해 보니, 스타트업은 내부 교육 체계가 아직 잡혀 있지 않고, 사내외 보안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신입 HR 직원에게 개인 정보 보안에 대한 중요성을 언급조차 하지 않는 곳들도 많고 말이야.
그래서 아빠는 우리 아들이 HR에서 업무를 시작하게 된다면, 이것부터 분명히 알려주고 싶었어.
네가 매일같이 다루게 될 인사기록카드, 승진평가시트, 개편조직도,
이것들은 단순히 가벼운 종이 한 장이 아니라
그 회사 모든 구성원들의 미래가 담긴 무거운 책임감이라는 사실 말이야.
우리 아들이 앞으로 HR에서 다루게 될 개인정보의 중요함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다른 조직의 친한 동기나 선배가 적법한 절차 없이 누군가의 정보를 요청했을 때, 문제의식 없이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해 해준다거나, 바쁘다는 핑계로 임직원 평가 정보 출력본을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두고 퇴근하는 등의 무책임한 행동은 하지 않게 될거야.
회사에서 누군가 알려주든 그렇지 않든 직원들간 오해와 불신이 발생하지 않도록 아들이 다루게 될 임직원들의 개인 정보를 철저하게 관리하는 HR이 되길 바랄께.
1번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HR은 임직원들의 신상 정보, 평가 정보 등을 다루다 보니 다른 부서 사람들이 가까이 하는 걸 살짝 부담스러워 하는 경우가 종종 있고, 그러다 보면 일부 HR은 타 부서 사람들과 전혀 소통하지 않고 상아탑의 학자처럼 머리 속 그림으로만 업무를 진행하는 경우가 있는데 말이야, 그렇게 해서는 결코 회사의 성장과 발전에 도움이 되는 HR이 될 수 없어.
채용, 평가, 보상, 교육 등 HR에서 기획하고 운영하는 모든 정책과 프로젝트는 결국 회사의 사업 전략과 발맞춰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제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실제 비즈니스 현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그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들어보지 않은 채,
본인의 상상력만으로 제대로된 HR 업무를 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야.
몇 달을 공들여 만든 새로운 인사 제도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 해서 임직원들에게 외면받는 일이 자주 발생하는 게 다 이러한 이유 때문이지.
그래서, 우리 아들은 회사의 비즈니스를 이해하기 위해 개발 / 생산 / 구매 / 마케팅 / 디자인 / PM 등등 우리 회사의 Business Value Chain을 구성하는 모든 조직과 자주 소통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려고 노력하는 HR이 되길 바랄께.
2번의 조언을 따라 다양한 부서의 사람들과 소통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말도 많이 하게 될텐데, HR은 기업 내 그 어느 조직보다도 말을 아껴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명심하렴. 아무래도 HR은 사업 방향성을 인사 전략에 반영시키는 곳이다 보니 경영진과 가깝게 소통하는 일이 많은데, 그래서 타 부서 사람들은 HR의 생각이 곧 경영진의 생각이 투영된 것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아.
어쩌면 아무 생각 없이 가볍게 내뱉은 너의 개인적인 생각과 의견이 타 부서에 잘 못 전달되어서 마치 경영진이 어떤 중대한 의사결정을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왜곡되기도 하고, 술김에 실수로 살짝 언급한 (아직 결정되지 않은) HR 내부 논의사항이 마치 이미 결정된 것처럼 외부에 공유되어서 아주 난감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 타 부서 사람을 만나는 자리에서는 항상 너의 말을 아끼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려고 노력하렴.
말뿐 아니라 행동 또한 각별히 조심할 필요가 있는데, 평소에 성실하지도, 진실되지도 않은 사람이 조직문화 개선을 위한 HR 정책을 만들어 발표했을 때, 과연 임직원들이 그 정책을 믿고 따를 마음이 생길까?
모든 일은 메세지도 중요하지만
그 메세지를 누가 전달하는지도 정말 중요하단다.
그러니, 아들이 전달하는 메세지가 모든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늘 성실하고 바르게 행동하는 HR이 되길 바랄께.
2번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HR은 전체 직원들의 중요한 인사정보를 다루다 보니 타 부서 사람들이 살짝 거리를 두는 경우가 많아. 아무래도 본인의 승진, 보상과 직결되는 의사결정의 근거를 다루는 사람들이니까 굳이 부정적인 인상을 남기지 않으려고 신경도 많이 쓰고 말이야. 그래서 대체로 많은 직장인들이 HR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앞에서는 애써 그런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다른 사람들보다는 조금 더 신경써서 친절하게 대하는 경우도 많다고 생각해.
그런데 그걸 마치 HR의 특권이라고 생각하거나,
너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어서 다른 사람들이 너에게 친절하다고 생각한다면
회사에서 너의 평판이 금방 안 좋아질 거야.
이건 아빠가 직접 경험한 일이기도 한데, 아빠는 HR 조직에서 5년 6개월 정도를 근무하고 해외영업으로 팀을 옮겼던 적이 있어. 인사 발령이 발표된 그날 엘레베이터에서 만난 어떤 부장님이 아주 무미건조하게 "김대리, 영업팀 갔던데 잘 해 봐요."하고 인사를 하시더라고. 그냥 들으면 별 일 아닌 것처럼 생각되겠지만 아빠에게는 상당히 놀라운 상황이었는데 왜냐면 그 분은 한 달 전만 해도 아빠가 한참 어린 후배인데도 불구하고 항상 "김대리님~ 김대리님~" 하면서 존칭으로 불러주고 늘 환하게 웃으면서 반갑게 인사를 하시던 분이었거든. 그 당시에는 내가 그 분에게 뭔가 실수한게 있나... 한참 생각하고 고민을 했었는데, 오래지 않아서 그건 단순히 나의 포지션이 바뀌었으니 그에 따라 그 분의 태도가 바뀐 것 뿐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지. 아빠를 대하는 말투와 태도가 바뀐게 그 부장님 뿐만이 아니었거든.
이처럼, 직무 특성상 HR은 타 부서에게 직접적으로 싫은 소리를 듣기 어려운 조직이고, 오히려 많은 이들이 유난히 친절하게 대해줄 수 있는 조직이기 때문에 그러한 분위기에 휩쓸려 다른 사람을 무시한다거나 가볍게 대하지 말고 늘 겸손한 말과 행동으로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는 HR이 되길 바랄께.
Human Resource, 언제부터인가 인사팀을 HR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영어 단어를 그대로 직역해 보면 인간 자원이라는 말인데, 여기에는 임직원들을 회사의 비즈니스를 위해 사용하는 '자원' 다시 말해 '재료'로 보는 시각이 있어서 아빠는 그다지 좋아하는 표현은 아니야.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HR이라고 부르는데 나만 다른 표현을 쓴다면 서로 대화가 통화기 어렵기 때문에 HR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이견이 없지만 말이야.
다만, 명칭과는 무관하게 HR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임직원들을
'사용하고 소비하는 [자원]의 관점'이 아니라
'아끼고 가꿔서 더 큰 Value를 창출할 수 있는 [자산]'으로
바라봐 주면 어떨까 싶어.
아빠가 일했던 첫번째 회사에는 Growth of People, Growth of Business라는 슬로건이 있었는데 '사람의 성장을 통해 사업의 성장을 추구한다'는 의미로 1)사람을 성장 가능한 존재로 보고, 2)사람을 사업 성장의 근간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아빠는 이러한 슬로건을 만들어 사업과 인사 전략에 반영한 회사의 일원이라는 게 큰 자부심이었단다.
한 편, 아빠가 함께 일한 HR 동료 중에는 신입 공채 지원자들 수를 세며 혼잣말로 '한 놈', '두 놈'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런 사람의 머리 속에는 미래의 동료가 될 지원자들이 그저 본인 업무의 재료쯤으로 자리잡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 부디 우리 아들은 임직원들뿐만 아니라 우리 회사에 관심을 갖고 지원해 준 미래의 동료들까지 귀한 자산으로 여기는 HR이 되길 바랄께.
직장인들은 대부분 승진과 연봉, 조직개편에 매우 민감하지. 그래서 그걸 다루는 HR이라는 직무는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 경영진이 원하는 이상적인 조직문화와 직원들이 느끼는 현실적인 조직문화 사이에서 모두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적정선을 찾는 것도 정말 어려운 일이고 말이야.
더 나은 기업을 만들기 위해 만든 새로운 인사 정책은 누군가에게는 당연하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욕 먹는 일이 되어서 'HR은 잘 해야 본전이다.'는 말이 있기도 해. HR 또한 똑같이 월급받고 일하는 직장인일 뿐인데도 경영진의 의지를 전사에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하다 보니 동기 모임에 나가면 '사측'이라고 농담과 진담이 반반 섞인 불편한 핀잔을 듣기도 하고 말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HR은 제대로만 한다면 사람과 사업을 동시에 배울 수 있는 아주 귀한 직무인 만큼, 우리 아들이 앞으로 커리어를 성장시키고 직무 역량을 개발해 나가는데 큰 도움이 될 거라서 기회가 주어진다면 HR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것도 아주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늘 그렇듯, 아들 스스로 본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깊게 고민해 보고 가장 마음이 가는 방향으로 선택을 하면 좋겠다. 아빠는 아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아들의 결정을 존중하고, 그 결정이 좋은 결실로 이어지도록 열심히 응원할 거라는 걸 기억해 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