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 세대를 초월한 브랜드 전략
진정한 브랜드의 힘은
경쟁을 초월한 순간 시작된다.
처음 레고를 만난 건 언제였을까. 아마도 대부분은 어린 시절, 바닥에 무질서하게 흩어진 알록달록한 블록들 앞에서였을 것이다. 때로는 설명서를 보며 한 블록 한 블록 조심스레 조립하고, 때로는 마음 가는 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무언가를 만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지금.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와 콜라보 한 레고 피규어를 조립하며 그때의 설렘을 다시 느끼곤 한다. 이처럼 세대를 넘어 우리 곁에 자연스레 스며든 브랜드 레고(LEGO).
지난 글들에서 노벨상과 미슐랭 가이드를 통해 경쟁자가 없는 독보적인 브랜드의 세계를 들여다보았다. 이번엔 그 세 번째 이야기다. 단순한 장난감을 넘어 하나의 문화가 된 레고. 9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아온 이 브랜드의 특별함을 함께 살펴보자.
시대는 변해도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본질에 충실한 브랜드만이 영원할 수 있다.
브랜드 관리자라면 늘 이런 고민을 한다.
"어떻게 하면 우리 브랜드를 더 특별하게 만들 수 있을까?"
"경쟁사와 어떻게 차별화할 수 있을까?"
하지만 레고는 조금 다르다.
그들은 남들과 다른 길을 걷기 위해 애쓰지 않았다.
대신 자신들만의 본질에 충실했다.
1932년, 덴마크의 목수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안센이 처음 레고를 만들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9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레고가 지켜온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창의적 놀이 경험'이라는 본질이다.
오랜 시간 한 자리를 지켜온 고목나무처럼, 디지털 시대가 되어도 수많은 새로운 장난감이 쏟아져 나와도 레고의 자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진정한 브랜드는 제품을 팔지 않는다. 경험과 추억을 만든다"
AFOL(Adult Fan of LEGO)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성인 레고 팬을 뜻하는 이 용어의 존재만으로도, 레고가 얼마나 특별한 브랜드인지 알 수 있다.
어떻게 장난감 브랜드가 성인들의 열렬한 팬덤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비결은 간단하다. 레고는 블록을 팔지 않는다. 가능성을 판다. 상상력을 실현하는 도구를 제공하는 브랜드다. 그래서 레고는 '블록'이 아닌 '경험'을 판다.
LEGO Ideas 플랫폼을 통해 팬들의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주고, 레고랜드에서는 브랜드의 세계관을 직접 체험하게 하며, 다양한 커뮤니티에서는 팬들과 끊임없이 소통한다.
이것은 단순한 마케팅이 아니다. 브랜드와 고객이 함께 만들어가는 문화다.
*AFOL: Adult Fan of LEGO의 약자. 성인 레고 팬을 일컫는 용어
*LEGO Ideas: 레고의 크라우드소싱 플랫폼. 팬들의 아이디어를 실제 제품으로 개발
변화하되 변질되지 않는다.
레고가 90년간 지켜온 브랜딩의 비밀
레고는 시대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변화 속에서도 자신들만의 정체성은 결코 잃지 않았다.
마인크래프트처럼 디지털 게임으로 확장하고, 건축가들을 위한 아키텍처 시리즈를 만들고, 영화와 테마파크로 세계관을 넓혀갔다.
그러면서도 레고는 늘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이것이 우리의 본질과 맞닿아 있는가?"
"창의적 놀이 경험이라는 가치를 전달하고 있는가?"
이것이 바로 레고식 혁신이다.
트렌드를 좇지 않고 트렌드를 자신들의 방식으로 해석했다.
변화하되 변질되지 않는, 그것이 레고의 방식이다.
90년의 시간이 만든 브랜드의 얼굴,
그들은 어떤 모습일까
브랜드를 한 사람의 인격체로 표현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레고라는 브랜드를 한 사람으로 상상해 보자.
전문가이면서도 괴짜 같고 어린이 같은 호기심과 상상력을 지닌 인물. 알록달록한 양말을 즐겨 신는 그의 책상에는 피규어들이 즐비하고, 작업공간은 장난감과 첨단 기기가 공존하는 느낌이다. 진지한 작업을 하면서도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 아이들과 눈을 맞추며 대화하다가도, 건축가들과 진지한 토론을 나누고, 예술가들과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한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새로운 발견의 기회니까요."
"상상력은 무한하답니다. 우리 함께 만들어볼까요?"
이런 말을 자주 하는 사람.
완벽한 결과물보다 창의적인 과정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
이것이 바로 레고라는 브랜드가 가진 퍼스널리티일 것이다.
레고는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함께 즐기는 이례적인 브랜드다. 그러므로 30대라는 나이에 국한한 페르소나 이미지보다는 20대, 10대, 어린이 모든 연령대의 버전이 나와야 맞는 것이라고 판단, 추가로 생성해 보았다.
열정적인 콘텐츠 크리에이터이자 창작자. 디지털 세상에서 자라나 테크놀로지를 자유자재로 다루면서도, 아날로그적 감성을 놓치지 않는다. 그의 작업실에는 최신 디지털 장비와 함께 레고 피규어들이 가득하다. 유튜브에서 창작 과정을 공유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레고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로봇공학을 꿈꾸는 15살. 후드 주머니에는 늘 새로운 아이디어를 끄적인 스케치북이 들어있다. 3D 프린터와 레고 마인드스톰을 활용해 자신만의 발명품을 만드는 것이 취미다.
상상력이 넘치는 초등학생. 매일 새로운 세계를 레고로 만들어낸다. 공룡과 우주선이 공존하는 세계를 만들기
도 하고, 친구들과 함께 미래 도시를 설계하기도 한다. 어른들의 "불가능해"라는 말에 "왜 안 돼요?"라고 되묻는 호기심 가득한 아이.
경쟁을 초월한 브랜드는
시장을 지배하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문화를 만들 뿐이다.
레고의 브랜드 전략의 핵심을 간단히 정리했다.
트렌드는 변한다.
하지만 본질적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레고는 블록을 팔지 않는다.
창의적 경험을 판다.
브랜드는 더 이상 일방적인 메시지 전달자가 아니다. 고객과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고민하라.
노벨상, 미슐랭 가이드, 그리고 레고.
이 세 브랜드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공통된 메시지가 있다. 바로 "진정한 브랜드의 가치는 경쟁을 초월한 곳에 있다"는 것.
어쩌면 우리는 브랜딩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더 새로운 것, 더 특별한 것을 찾아 헤매느라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진 않은가. 기본으로 돌아가 다시 생각해 보면 의외로 단순하게 답이 풀리는 경우가 있다.
레고는 90년 동안 한 가지 질문만 했다. "이것이 창의적 놀이 경험이라는 우리의 본질에 부합하는가?"
그리고 그 단순한 질문이 만든 결과는? 전 세계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어른들의 호기심을 깨우는 브랜드. 시대와 세대를 초월한 문화적 아이콘.
당신의 브랜드는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가? 어떤 가치를 지키고 싶은가? 그리고 그 가치를 통해 어떤 문화를 만들고 싶은가?
경쟁을 신경 쓰지 않는 순간, 브랜드는 비로소 자신만의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