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콥터에서 뛰어내리는 그의 음악이란 무엇인가.
“지금의 음악가는 음악을 이성적 산물로 여기는 교육으로 인해 살아 있는 녹음테이프가 돼 버렸다”
칼하인츠 슈톡하우젠은 1928년 8월 22일에 쾰른 근처에 위치한 부르크뫼트라트에서 태어났다. 농촌의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쾰른 주립 음악학교를 졸업한 해인 1951년, 현대음악제에서 중요한 인물을 만나게 된다. 중요한 인물 중 루이지 노노, 구와베르와 함께 메시앙의 작품에 대하여 토론을 하며 합리적인 규칙에 따라 개개 음들이 변화하는 과정의 구조적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또 그는 공간적 차원의 음향을 연구하여 1957년에 그룹들(Gruppen)이라는 작품을 발표하고 일찍이 전자음악에 관심을 가졌다. 그의 대표작에는 ‘젊음이의 노래(Gesang der Jünglinge)’ 와 ‘그룹들’이 있다.
슈톡하우젠은 여러 나라를 방문하여 자신의 작품을 직접 연주하며 강연하였다. 그는 자신의 연주단(Stockhousen Group)을 만들어 자신의 음악을 연주하였으며 1970년 일본 오사카 만국 박람회에서는 아예 그의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특별 건물을 건설하였다.
괴상망측해 보이는 음악을 향한 실험적인 그의 정신은 소리 자체를 아예 공간적으로 재정의했으며 다소 도발적으로 보이는 그의 상상력은 우리에게 해방감을 주는 것 같기도 하다. 끝으로, 그는 2007년 12월 5일에 세상을 떠났다.
오늘은 그의 음악들 중에서도 다소 실험적으로 보이는 그의 음악적 상상력을 들여다볼 예정이다.
그전에 간단하게 그 당시 현대 음악의 흐름에 대하여 소개해보도록 하겠다.
‘Avant-garde(아방가르드 - 전위예술)’
프랑스어로 군대 중에서도 맨 앞에 서서 가는 ‘선발대’를 일컫는 말이다. 아방가르드는 예술, 문화 혹은 정치에서 다소 실험적인, 과격한, 비정통적인 새로운 경향이나 운동을 선보인 작품이나 사람을 칭하는 말로 당시 현대음악을 쉽게 설명하는 한 단어로 정의 내릴 수 있겠다.
우선 이들이 창조하고자 한 건 음악이 아니라 소리였다.
1945년, 20세기를 둘로 나누는 분기점이 된 해에 현대음악도 바뀌었다. 아버지 세대와의 단절을 경험하며 자연스럽게 음악의 주를 이루던 이성적 이해와 감정적 옹호가 달라진 것이다. 급진적인 음악을 주도하던 프랑스의 피에르 불레즈, 이탈리아의 루이지 노노 그리고 독일의 칼하인츠 슈톡하우젠 등이 전후 유럽에 등장한 대표적인 작곡가들이다. ‘현대음악의 삼위일체’나 ‘삼총사’로도 불리는 그들은 현대음악이 뿌리를 내린 독일의 다름슈타트에 모여 현대음악을 널리 알렸다.
이들 세대의 현대음악을 상징하는 인물이 바로 쇤베르크였는데, 2차 대전 이전의 쇤베르크는 난해하고 종잡을 수 없는 악명 높은 현대음악의 상징이었지만, 그 당시 현대음악을 공부하며 작곡하고 있던 학생들에게 쇤베르크는 넘어야 할 대상이었다. 듣기 좋은 음악보다는 지금까지 없었던 소리를 창조하기 위해 그들은 총렬 주의, 우연성, 그리고 전자음악까지 작곡을 빙자한 음악적 실험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다.
갑자기 현대음악에 대해서 논하는데 왜 비틀스의 사진을 가져왔냐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사람은 분명 슈톡하우젠의 음악에 영향을 받은 사람이다. 로큰롤 역사상 최고의 그룹을 담당하는 비틀스의 ‘A day in the life’를 들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https://youtu.be/usNsCeOV4GM?t=100
특히 슈톡하우젠의 ‘젊음이의 노래(Gesang der Jünglinge)’ 와 ‘찬가(Hymnen’ 등은 비틀스의 후기 음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 증거로 ‘페퍼 상사’의 음반 표지에서 슈톡하우젠이 턱을 괴고 심각한 표정으로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지금부터는 진보적인 록(Progressive Rock) 까지도 영향을 미친 그의 음악 두 가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슈톡하우젠의 1957년 문제작인 ‘그룹들(Gruppen)’은 소리 자체를 공간적으로 재해석한 그의 사례로 가장 유명하다.
그는 ‘그룹들’이라는 작품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소리를 움직일 수단을 지녔다는 점이 중요하다”
본래 이전까지의 소리는 무대에서 객석을 향해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것이었지만, 슈톡하우젠은 이 작품에서 3개의 오케스트라가 청중을 에워싸는 ‘역발상’을 시도했다. 관객 입장에서는 마치 오케스트라에 포위당한 듯한 독특한 경험을 한 셈이었다.
슈톡하우젠은 소리와 사람의 관계를 일방적이지 않고 공평하게 만들었으며 사이먼 래틀은 이 작품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이 작품은 마치 모빌과도 같습니다. 3명의 지휘자가 각각 하나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지만 각각 오케스트라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모빌에서 하나의 부속품만 움직여도 전체 모빌의 부품이 같이 움직이니까요.”
이 작품은 1970년 일본 오사카 만국 박람회의 원구 모양 독일관에서 10개의 스피커를 통해 전 세계 100만 명이 관람했다고 한다.
‘반드시 지상에서만 음악이 연주될까?’
이렇게 물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음… 그러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이 편견을 깨부순 사람이 악동 슈톡하우젠이었다. 1995년 슈톡하우젠은 현악 4중주단의 멤버 4명을 헬리콥터 4대에 각각 나눠서 태워 보낸 뒤, 이들이 하늘을 나는 헬기 안에서 연주하는 소리를 다시 전송받아서 지상에서 관객들이 듣도록 하는 실험을 벌였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음악 실험’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참고문헌
슈톡하우젠 그의 음악 세계 - 로빈 매코니
0년 - 이안 부루마
철학으로 현대음악 읽기 - 박영욱
음악 철학 - 웨인 D. 보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