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별의 속삭임

《너의 모든 걸음은 빛나는 순간이었다》 2025 Re:Write

by 자스민주


지나온 글을 다시 꺼내어, 지금의 마음으로 다시 씁니다.






우리에게는 따라야 할 각자의 별이 있다. 그 별은 우리가 걸어가야 할 삶의 방향을 알려 준다. 아직 자신만의 별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도 걱정하지 말자. 그 별은 당신 안에서 항상 살아 숨 쉬고 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이면서.


고요함 속에서 들을 수 있는 그 작은 목소리는 『트랜서핑』에서 '새벽별의 속삭임'이라고 한다. 때로는 말 없는 목소리, 내면의 소리, 혹은 직관이라 불리기도 한다. 머리가 아닌 가슴에서 느껴지는 무언가다. 이성과 논리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그냥 알게 되는 것이다. 그 소리를 들었을 때, 우리는 영감이나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무의식적으로 어떤 행동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자신이 따라야 할 별, 즉 새벽별의 속삭임에는 신비롭고 귀한 보물이 숨겨져 있다. 그건 바로 고유한 자기 자신이다. 당신 안에는 당신이 걸어가야 할 삶이 이미 주어져 있다. 우리는 진정한 자아를 실현함으로써 이 보물의 가치를 비로소 깨닫게 된다.


『데일리 크리에이티브』의 저자 토드 헨리는 한 회의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땅이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자, 그는 "무덤"이라고 말했다. 무덤에는 미처 쓰지 못한 소설, 실현하지 못한 아이디어, 펼치지 못한 꿈들이 묻혀 있기 때문이다. 귀한 보물과 함께 묻혔으니, 무덤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땅일 수밖에. 그 보물은 땅속에 묻히면 우리와 함께 사라진다. 하지만 세상 밖으로 꺼내면 찬란한 빛을 발하게 된다.


새벽별의 속삭임은 외부의 소음을 멀리할 때 비로소 들려온다. 수줍은 소녀처럼 아주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때로는 불현듯 스치는 찰나의 순간, 우리에게 속삭인다. 그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홀로 있는 시간과 내면의 침묵이 필요하다. 마음이 쉴 새 없이 떠들고 있으면 들을 수 없다. 모든 소음을 차단하고 고요함 속에 머물러 보자. 그러면 소리 없는 진실한 목소리가 들릴 것이다. 그것은 자신을 되찾게 해주는 가장 강력한 속삭임이다.


삶에서 자기 자신을 되찾는 일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건 없다. 다른 누군가가 아닌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 이보다 멋진 일이 또 있을까. 난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고 싶지 않다. 자신이라는 존재로 살아가기에도 이번 생의 시간은 그리 넉넉하지 않으니까.


만약 지금 남의 인생을 기웃거리고 있다면,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보자. '나는 누군가를 흉내 낼만큼 그렇게 한가한가?' '유한한 생에서 그런 일에 애쓰며 시간을 낭비하고 싶은가?'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맞는 길 위에 서게 될 때, 더 이상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게 된다. 삶에 휘청거리지도 않는다. 인생은 즐거운 소풍이자 축제가 된다. 걸어가는 여정 자체가 기쁨이 되고 즐거움이 된다. 그 길이 바로 내 길이기에 쉽고 자연스럽다. 그뿐만 아니라 열정과 영감이 마구 솟아오른다.


『아티스트 웨이』의 줄리안 카메론은 예술의 부름에 순종했고,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운명이 자신을 작가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시인 잭 길버트는 노동자로 일하던 중, 어느 날 시를 쓰라는 내면의 부름을 받았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야구장에서 날아가는 공을 보고 갑작스레 "소설을 써야겠다"는 강렬한 직감을 느꼈다. 만약 우리도 그런 부름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인생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심리학자 칼 융은 이 부름에 답하고 자신을 맡길 때, '동시성'이 작동한다고 말했다. 동시성이란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사건이나 상황이 우연히 맞물리며 같은 시간에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신이 자기 이름으로 서명하기 싫을 때 사용하는 가명도 바로 '우연'이다. 신이든 우주든, 우리를 돕는 보이지 않는 커다란 힘은 분명 존재한다. 우리는 그 힘을 '우주'라 부르기로 하자.


우리가 자신만의 별을 따라갈 때, 우주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놀라운 선물을 미리 준비해 둔다. 그것은 우주가 계획한 우연, 예정된 운명인 것이다. 세상에 우연은 없다. 우리가 보지 못할 뿐 모든 것은 얽히고설킨 인과의 실로 연결되어 있다.


나 또한 그런 부름을 들은 적이 있다. 책을 쓰겠다고 결심했던 그날, 나는 처음으로 새벽별의 속삭임을 들었다. 이후 10년이 지나서야 책을 썼지만, 결국 나는 그 부름에 응답했다. 그날의 목소리와 10년 뒤의 목소리는 똑같았다. "글을 써. 책을 써."


삶이 먼저 준 과제들 탓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리고 외부의 소란과 내면의 잡음 때문에 새벽별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어쩌면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해 이토록 돌아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부산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살고, 서울로 온 것도. 예술성을 지닌 어린 시절의 내가 예술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다가 다시 예술로 되돌아온 것도. 그 모든 과정은 퍼즐처럼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기 위한 여정이었다.


결국 나는 나를 찾아온 부름에 따라 『너는 꽃처럼 아름답다』를 출간했고, 많은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출간 두 달 후 코로나 팬더민이 시작되었고, 오프라인 활동은 모두 중단되었다. 온라인에서 새로운 시도를 했지만 실패가 쌓여갔다. 어느 순간 글이 써지지 않았고, 작가의 길이 내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후 3년. 나는 글쓰기를 대신할 수 있는 다른 자리를 찾지 못했다. 결국 나는 깨달았다. 내게 글쓰기는 생의 마지막 날까지 사랑하는 일이 될 거라는 걸. 다시, 새벽별의 속삭임이 내 마음을 두드리고 있었다.


나는 막혀 있던 창조성을 되살리기 위해 나만의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내 심장을 울리는 책을 읽고, 창조성을 깨우는 영화와 음악을 찾아들었다. 짧은 문장이라도 떠오르면 적어두었고, 나와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예술의 샘물은 다시 차오르기 시작했고, 지금 나는 두 번째 책의 원고를 쓰고 있다. 이 모든 것이 포기하지 않고 속삭여준 새벽별 덕분이었다.


예술은 내 존재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 내 영혼의 성장을 이끌어 주고, 멈춰 있는 나를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힘을 준다. 배우 윤여정 선생님의 말처럼 예술은 때론 잔인하다. 삶 또한 그렇다. 예술은 신의 언어이며, 우리는 신의 메시지를 전하는 도구일지도 모른다.


예술은 글쓰기나 음악, 그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열정(enthusiasm)'이라는 단어는 '내면(iasm)'의 신(entheos)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우리가 열정을 느끼는 순간, 그곳엔 언제나 내면의 신이 함께한다. 우리는 모두 자기 삶을 창조하는 예술가다. 나에게 글이 그 열정이었다. 당신에게는 어떤 예술이 숨겨져 있는가?


자신의 운명이 숨어 있는 별을,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대신 찾아줄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오직 새벽별의 속삭임—그 조용하고 미세한 진동 같은 내면의 부름 속에서만 우리는 그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 별을 찾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침묵해야 한다. 세상의 소음, 마음의 소음, 욕망의 소음을 잠재우고 진정한 침묵 속에 머물러야 한다. 흥미롭게도 '침묵(silent)'이라는 단어를 재배치하면, '경청(listen)'이 된다. 진실로 듣고자 한다면 침묵해야만 한다. 그래야 들린다. 내 안의 가장 진실한 목소리가.


자신의 별을 찾는 데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서두르지 말고, 충분한 시간을 자신에게 허락하자. 다양한 가능성과 선택의 여지를 주자. 서두른 탓에 잘못된 길로 들어서면, 애써 쌓아 온 시간과 노력이 무너지기도 하니까. 지금 필요한 건 서두름이 아닌 선명함이다.


이때 주의할 점이 있다. 반짝이는 타인의 별에 눈이 멀어 자신만의 별을 잊지 않도록 하자. 군중심리에 휩쓸려 누군가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자신에게 진짜 의미 있는 길을 놓치게 된다. 잘못된 욕망은 흥분으로, 흥분은 혼란으로 이어진다. 마음이 요동칠 때는 잠시 멈춰 서자. 영혼이 놀라 숨지 않도록 부드럽게 달래야 한다. 그래야 길을 잃지 않는다.


혹시 어딘가 마음이 찝찝하고 불편한 기분이 든다면, 그건 바로 'No'라고 말하는 새벽별의 속삭임일지도 모른다. 그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자. 그것은 우리를 보호하려는, 사랑의 경고다.


그렇다고 해서, 실수할까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우리는 실수와 실패에 대해 조금 더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다. 실수했다고, 자신을 벌주고 괴롭히는 일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자신에게 실수와 실패를 허락하자. 마음속의 두려움과 긴장이 누그러지고, 다시 모험에 나서게 될 것이다.


우리가 저지른 모든 실수와 실패는 결국, 꿈과 목표로 가는 길 위에 놓인 하나의 이정표다. 때로는 그것이 오히려 더 바른 길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실수와 실패로 포장된 이정표에조차 감사할 수 있다. 안내가 끝난 이정표가 있다면, 붙잡고 있지 말자. 계속 쥐고 있다 보면 자신 앞에 놓인 새로운 길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나의 길이 끝났다는 건 다른 길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때로 이정표조차 없는 사막 위를 걸어야 할 때도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우주가 보내는 작은 메시지와 직관을 나침반 삼아 걸어야 한다. 자신의 별을 찾는 여정은 힘들고 지치는 지난한 과정일 수 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운명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니까.


우리가 진심으로 자신의 운명에 기꺼이 책임지고, 그 길을 걷고자 하는 의지를 내보인다면, 우주는 반드시 길을 열어줄 것이다. 삶은 그렇게 신비롭게 우리를 이끌어간다. 눈부신 운명이 우리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자, 이제 자신만의 별을 찾아 나서자. 실망뿐이던 사막은, 곧 희망으로 가득 찬 오아시스로 바뀔 것이다.



새벽별은 오늘도 나지막이 속삭인다.

'나는 네 안에 있어.

이번에도 나와 함께

새로운 여정을 걸어갈 용기가 있어?'


나는 웃으며 답했다.

'그럼. 너와 함께라면, 기꺼이!'




이 글은 《너의 모든 걸음은 빛나는 순간이었다 – 2025 Re:Write》의 여덟 번째 이야기입니다. 퇴고된 문장으로 다시 꺼내는 10개의 반짝임, 매주 토요일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