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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식대로 짓기로 했다

by 아키비스트J

새로운 도구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조건을 명확하게 세웠습니다. 흩어진 자료를 한 곳에 모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직접 분류하지 않아도 연결되어야 합니다. 특정 플랫폼에 종속되지 않아야 합니다. 욕심 같았지만 이 세 가지를 포기하면 또 같은 실패를 반복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 도구가 과연 있을까요?




왜 옵시디언이었나


여러 도구를 검토했습니다. 노션은 이미 실패한 경험이 있었고 에버노트는 구조가 비슷해서 같은 문제가 생길 것 같았습니다. 각각 장점이 있었지만 뭔가 부족했습니다.


결국 선택한 건 옵시디언(Obsidian)이었습니다.


가장 끌렸던 건 마크다운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옵시디언의 모든 노트는 .md 파일입니다. 단순한 텍스트 파일이라는 뜻입니다. 노션처럼 독자적인 포맷이 아니라서 설령 옵시디언이 망하더라도 제 자료는 그대로 남습니다. 어떤 에디터로 열어도 읽을 수 있습니다. 10년이든 20년이든 접근 가능합니다. 기록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이 '장기 보존 가능성'은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로컬 파일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노션은 모든 데이터가 서버에 있어서 인터넷이 끊기면 접근하기 어렵습니다. 옵시디언은 제 컴퓨터에 파일로 존재합니다. 클라우드 동기화는 필요하면 쓰고 아니면 안 써도 됩니다. 데이터 주권이 온전히 저한테 있다는 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이었던 건 확장 가능성이었습니다. 옵시디언은 플러그인 생태계가 활발해서 필요한 기능을 붙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파일이 로컬에 있으니 외부 도구와 연결하기 쉽다는 점이었습니다. 이게 나중에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낼 줄은 그때는 몰랐습니다.




AI와 연결될 수 있다는 깨달음


사실 옵시디언을 쓰기 시작한 건 2024년쯤이었습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노션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결국 링크를 연결하는 것도 제 몫이었고 태그를 다는 것도 제 몫이었습니다. 도구만 바뀌었을 뿐 '내가 직접 정리해야 한다'는 구조는 그대로였습니다.


전환점이 찾아온 건 2025년 여름이었습니다. 클로드 코드(Claude Code)와의 시너지를 알게 되면서였습니다.


클로드 코드는 지금은 엄청난 생산성을 자랑하고 또 계속 발전을 거듭하는 AI 에이전트지만, 당시에는 터미널에서 작동하는 AI 코딩 어시스턴트였습니다. 대화하듯 명령을 내리면 파일을 읽고 수정하고 생성합니다. 원래는 개발자들이 코드 작성에 쓰는 도구입니다. 저는 개발자가 아니기에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AI 커뮤니티에서 옵시디언과 클로드 코드의 시너지를 소개하는 스터디를 알게 됐습니다. 스터디장의 설명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환해졌습니다. 옵시디언의 노트도 결국 '파일'입니다. 마크다운이라는 텍스트 파일. 클로드 코드가 코드 파일을 다루듯이 내 노트 파일도 다룰 수 있다는 거였습니다. 코드든 노트든 AI 입장에서는 그냥 텍스트 파일이니까요.


오! 퍼즐 조각들이 맞춰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설계자의 관점으로


저는 기록학을 공부했고, 아카이브 시스템을 설계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분류 체계를 만들고 메타데이터를 정의하고 검색 구조를 설계하는 일을 해왔습니다.


그동안 문제가 이런 이력에서 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모든 설계를 '직접 실행'해야 한다는 것이 당연하다는 점 말입니다. 아무리 좋은 분류 체계를 만들어도 자료를 일일이 분류하는 건 제 몫이었습니다. 설계는 할 수 있는데 실행이 따라오지 못했습니다. 그 간극이 결국 시스템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런데 AI가 그 간극을 메워줄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가 설계하고 AI가 실행하고, 제가 구조를 정의하고 AI가 분류와 연결을 수행하며, 제가 규칙을 만들고 AI가 그걸 일관되게 적용하면, 개발자가 아니어도 '설계자'로서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내 방식대로 짓기로 했다


돌이켜보면 기존 도구들은 전부 '남이 만든 시스템'이었습니다. 노션의 데이터베이스 구조, 에버노트의 노트북 체계, 구글 드라이브의 폴더 시스템, 모두 누군가 설계한 틀에 제 자료를 끼워 맞춰야 했습니다. 그 틀이 제 사고방식과 맞지 않아도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이번에는 다르게 해보기로 했습니다.


남의 시스템을 쓰는 게 아니라 내 시스템을 만든다.
옵시디언이라는 빈 캔버스 위에
클로드 코드라는 도구를 들고 내 스타일을 적용한다.


물론 쉽지 않을 거라는 건 알았습니다. 개발 지식도 적었고 AI 도구도 처음이고 실패할 가능성도 높았습니다. 하지만 기존 방식은 이미 세 번이나 실패했습니다. 같은 방식을 반복하면 같은 결과가 나올 게 뻔했습니다.


다른 시도를 해볼 가치가 있었습니다. 사실 잃어봤자 제 개인 기록 카피본일 뿐인데 크게 손해볼 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과감히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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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에 관한 글을 씁니다. 솔로프러너이자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이며, 디지털 아카이브 컨설팅을 합니다. AI 시대 모두가 잠재력을 극대화하고 인지적 평등이 실현되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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