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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acehost Dec 29. 2024

밤에 걷는 송정동: 욕망과 불안 사이

송정동_김환배


송정동의 좁다란 골목길을 걸었다. 벽돌 틈새로 새어 나오는 일상의 소음들이 새어 나온다. 정치적 논쟁으로 달아오른 한 가정의 저녁 식탁, OTT에서 흘러나오는 유퀴즈의 웃음소리. 4미터 도로에 차곡차곡 쌓인 주차된 차들은 어떤 순서일까? 출근 시간대로 세워 논걸까? 배달기사들은 네비게이션이 안내하는 최적경로 대신 돌아가야만 한다. 이곳 사람들은 배달 오토바이가 만들어내는 소음을 더 큰 소리와 더 많은 대화로 지워내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소리들은 다시 골목으로 흘러나온다.

송정동의 나름 메인 도로라 할수 있는 광나루로11길은 의외로 조용하다. 해가 지자 상가들은 문을 닫았고, 간간이 배달음식점과 구멍가게만이 불을 밝히고 있다. 이곳에서는 시간이 켜가 쌓여있다. '응답하라 1988'의 택이네를 연상시키는 1층 상가와 2층 붉은 벽돌 양옥집들이 여전히 건재하고, 새로 들어선 건물들은 옛 건물들과 조화를 이루려 붉은 벽돌과 하얀 페인트로 위장하거나, 혹은 홍진영과 고소영의 건물처럼 도발적인 현대성으로 뽐내고 있다.


이곳의 갑작스러운 관심은 오해와 우연으로 생겨 난듯 하다. 청담동의 한 미용실 원장(개인적인 지인)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었다. OOO과 OO의 투자는 그들의 헤어메이크업 원장이 성수동의 도시재생 성공신화(?)와 서울시의 ‘지천르네상스’라는 청사진을 곁들인 꽤나 전문적인(?) 추천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준공업지역의 지식산업센터와 강남 판교의 소비력 있는 IT 기업들의 유입과 이제는 명동처럼 세계적인 명소로 자리잡은 성수동과 달리, 일반주거지역이면서 인접한 지하철역도 하나 없는 송정동의 도시재생사업(이제는 종료된)과 그 이후의 운명은 다르게 쓰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마도 이곳의 미래는 이태원에서 외곽에서 이미 정점에 올랐다가 시들어간 경리단길이나, 홍대 상권에서 밀려난 이들의 정착지였던 망원동 정도가 될 것 같다. 어쩌면 창신숭인과 같이 재개발사업을 하려나? 어떤 것이 과연 이곳에 사는 이들이 원하는 미래인지는 잘 모르겠다.

밤이 깊어갈수록 그리고 이곳을 걸어볼수록 정체성은 더욱 모호해진다. 재개발을 갈망하는 어떤 주민들, 고요한 일상을 지키려는 이들, 임대료 상승에 떨고 있는 세입자들의 마음이 골목골목을 배회한다. 마치 지금 이 나라처럼, 송정동도 욕망과 불안, 익숙함과 낯섦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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