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사마을_이관석
1. "맨땅에서 마을을 일군다"
설화의 시대 이야기 같지만 서울 어느 곳에선 당연하다는 듯 일어나고 있었다. 가서 살라고 해서 와봤더니 아무 것도 없어 직접 자재를 지고 날라 만든 집들이 모여 생긴 마을. 상계동 불암산 자락 104번지에 숨은 '백사'마을의 시작이었다.
2. 그간 주민들의 삶은 조금 더 나아지지 못했지만 불암산에는 둘레길이 생겼고 상계동은 서울과 수도권에서 손꼽히는 학원가로 탈바꿈했다. 못난 자식마냥 서울의 먼발치에 숨겨둔 백사마을 역시 개발의 광풍을 이기지 못하고 2024년엔 천지개벽 할 예정이라고 한다.
3. 긴 세월 마을을 일궜던 이들은 떠나고 길과 언덕을 따라 남은 집들만 우리와 마주한다. 조금 늦었지만 남은 작은 온기나마 담아갈 수 있을까 오늘도 무거운 발걸음을 시작한다. 낡은 건물과 함께 자란 푸른 잡초, 경계하며 다가오는 작은 맹수들, 그리고 추억 어린 뒷골목까지.
4. 그 산책의 끝에서 우리는 속 시원한 답을 찾았을까.
골목이 가진 세월의 무게만큼 무거운 숙제를 가득 안고
아파트 숲을 지나는 버스를 타고 아파트 숲을 지나는 전철을 타고 아파트 속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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