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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acehost Dec 31. 2023

빈 마을 어귀에서

백사마을_정창윤

백사마을의 입구는 한적했다. 아니 비어 있었다. 아직은 사람이 오고 가는 집이 남아있다는 걸 증명하듯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었고 몇몇 집에서는 보일러 증기가 나오고 있었지만, 조금 더 골목 위로 올라가니 그 마저도 사라졌다. 빈집들을 돌담길 사이에는 이름 모를 풀꽃이 생명력을 뽐내고 있었고 열린 대문 사이로는 덩굴식물들이 마루까지 뻗쳐 살아가고 있었다. 식물들은 경이롭다. 인간들이 방해하지 않는다면 온 도시를 몇 년도 되지 않아 온통 덮어 버리겠지. 난 그 모습이 보고 싶다. 


여기저기 뒤덮은 식물들과 난데없이 튀어나오는 생활쓰레기들 아래의 백사마을의 모습은 예뻤다. 지금은 비어있지만 슈퍼, 세탁소, 철물점 같이 마을이 생활하기 위한 여러 가게들이 남긴 간판들을 보면서 이곳이 굉장히 매일매일 분주하면서도 정겹게 살아가던 곳이라는 것을 상상할 수 있었다. 가파른 언덕에 적응하며 들어선 특이한 구조의 집들도 많았고 무엇보다 불암산의 경치가 한눈에 보여서 걷는 이의 마음을 풍요롭게 했다. 부동산, 재산, 돈…이곳 주민들에게는 쓸데없는 소리겠지만 과연 마을 하나를 갈아엎을 정도로 이곳은 그리 가치 없는 곳일까? 재개발과 함께 따라다니는 단어 중 하나가 ‘사업성’이다. 그놈의 사업성에 맞지 않으면 그 어떤 것이라도 존재가 허락되지 지금의 세상은 과연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걸까. 집과 마을이 없이 사람은 살아갈 수 없기에 기를 쓰고 사고팔아야 잘살고 있다 인정받는 현실 안에 백사마을은 사람이 비어갔다.

  


이제 이곳에도 ‘사업성’에 맞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정치가와 건설사들은 역사성 보존과 현재의 주거기술이 공존하는 보존형 개발을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한국에서 그런 개발은 성공한 사례가 없다. 길 몇 골목, 건물 한 두 개 남기고는 보존했다고 생색내기 바쁘겠지. 불암산 근처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마음에 고향과도 같은 백사마을은 곧 영원히 사라진다. 마을을 떠나기 위해 내려가는 골목길에는 집집마다 고양이들이 살고 있었다. 먹이를 챙겨주는 사람이 있는지 사람을 보고도 겁을 내지 않는다. 이제 이들도 곧 뿔뿔이 흩어져서 떠돌이 신세가 될 것이다. 그 뒤에도 이 생명들은 지금처럼 사람을 좋아해 줄까? 곧 만나게 될 파괴를 아는지 모르는지 고양이들은 골목 곳곳에서 나른하게 누워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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